5월 4일
엔도 슈사쿠의 『바다와 독약』(가톨릭출판사, 2001)을 읽다. - 옮긴이는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1958년에 발표되어 신쵸사 문학상과 마이니치이 출판 문화상을 수상한 이 작품이 “아직 번역 소개되지 않은 것은 애석한 일이다. 왜냐하면, 엔도 슈사쿠의 문학사文學史에 있어서 『침묵』과 『깊은 강』만큼 문제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 작품은 네 명의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묶은 『춘금초/ 갓 쓰고 박치기도 제멋/ 바다와 독약/ 타인의 얼굴』(한길사, 1981, 한길세계문학6 · 일본문학선1’)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규슈九州 대학 의학부에서 실제로 행해진 미군 포로의 생체해부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작중 설명에 따르면, 규수의 F시에 소재한 F대학의 의학부가 같은 F시에 주둔하고 있는 서부군의 위탁을 받아 실시한 미군포로 생체해부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혈액에 어느 정도의 생리 식염수를 주임하면 죽는가.
2. 어느 정도의 공기를 혈관에 주입하면 죽는가.
3. 양쪽 폐를 어느 정도 절단해 내면 죽는가.
작중에 따르면, 생체해부에 참여하고 말고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이 실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사람을 산 채로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 알았고, “평생 괴로워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운명”으로 치부하거나, 어차피 “서부군에서는 총살형으로 결정”난 포로라는 합리화와 “그 포로 덕에 몇 천 명의 결핵 환자의 치료법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죽인 게 아니고 살린 거야”라는 도착된 논리로 실험에 임한다.
이들이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금지된 생체 실험에 뛰어들게 된 배경은 따로 있다. 미군 포로 생체 실험을 하기 직전, F대학의 의학부 부장인 오오스기 교수가 뇌일혈로 죽었다. 그러자 제1외과 과장인 하시모토 교수와 제2외과의 부장인 곤도 교수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시모토는 입원중인 오오스기의 친척인 다베 부인을 수술대에서 죽게 만든다. 오오스기의 문하생인 내과계 교수들의 표를 얻기 위해, 무리하게 수술을 감행하다가 더 살 수 있는 환자를 죽인 것이다. 신망이 떨어진 하시모토는 서부군의 위세를 빌려 자신을 압박하는 곤도에게 더 이상 밀리지 않기 위해, 곤도측이 참여하고 있는 생체 실험에 자진해서 합세하게 된다. 하시모토가 과장으로 있는 제1외과에 속한 조교수와 연구원들은, 교수 임명권을 쥐고 있는 그의 권유를 물리치지 못하고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의과 대학이나 종합병원이 거대한 ‘권력 암투’의 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방의 인기를 모았던 <종합병원>이나 <하얀거탑>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익히 보았다. 그런 뜻에서 『바다와 독약』에 나오는 인물들이 생체 해부라는 반인륜적 범죄로 치달아가는 이야기 전개는 그리 낯선 게 아니다.
이 작품에는 생체 해부에 참여하는 두 명의 연구원이 나온다. 동기생인 스구로와 도다가 그들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스구로와 달리 의사의 아들이면서 대학의 교수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도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함께 생체해부에 참여했던 동료와 자신의 돌아보며 “벌 받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이나 사회의 벌일 뿐, 자신의 양심은 아냐”라면서, 타락한 자신의 양심을 위무한다. 다시 말해, ‘누가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외부에서 오는 처벌이 아니라면, 양심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라는 태도이다. 이런 태도는 루스 베네딕트의 논란 많은 『국화와 칼』이 지적했던 사항으로, 그 책은 ‘내면의 죄의식을 모르는 대신, 외향적인 수치’에 민감한 게 일본 문화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가톨릭 신자였던 엔도 슈사쿠는, 루스 베네딕트의 ‘죄의식 없는 일본인관’에 상당히 근접한다. 이 책 앞머리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 보면, 엔도 슈사쿠가 했다는 이런 말이 인용되어 있다: “나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고, 기독교의 전통도 문화도 역사도 전혀 없는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신神(唯一神)’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본인은 죄의식에 대해서도 기독교와 상반된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일본인에게 죄의식이 없다고는 결코 단정하지 않지만, 죄에 대한 반응은 기독교를 믿고 있는 서구인과 우리 일본인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엔도 슈사쿠는 죄의식 없는 일본 문화를, 일본에 없는 ‘원죄 의식’ 탓으로 여긴다. 이 독후감에서 생략된 도다의 청소년기는,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도 알지 못하는 ‘범죄 성향(원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수긍하고, 되풀이 내면화 하면 죄의식이 되는 데, 애초부터 그것(원죄 의식)이 없는 문화에서는 체면치례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내 머리는 아사이나 도다처럼 대학에 남을 머리가 아냐”라고 체념하면서 “산 속 요양원 같은 데서 결핵의로 일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자족해온 스구로는, 거절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왜 생체해부에 참여했을까? 먼저 “나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세상사인 것이다”라는 순응적인 운명론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평범이 첫째가는 행복”이라는 소시민적 행복론도 원인이 된다(이 작품이 발표된 몇 년 뒤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의 참관기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하지만 엔도 슈사쿠가 가장 두려워한 대죄는 “나로서는 신이 있든 없든, 상관없어”라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이 태도에 비하면, F대학 외과 의사들을 생체해부로 내몰았던 내부 상황은 물론, 앞의 두 태도마저, 얼마든지 용서될 수 있는 것이다(그런데 도대체, ‘바다’는 무엇이고, ‘독약’은 또 무엇일까?).
사족: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어렵지만, 미모의 여의사가 범죄를 탐닉하는 『모래꽃』(고려원, 1995)은 『바다와 독약』에 나오는 도다의 청소년기를 연장한 작품으로, 작가의 원죄관을 되풀이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