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김서령의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실천문학사, 2007)를 읽다. - 도합 아홉 편의 단편을 묶은 이 창작집의 맨 앞에 있는 「고양이와 나」는 이상의 「날개」를 연상시킨다. 주인공 ‘나’는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시나리오를 쓴답시고 영화판을 기웃거렸지만, 점점 불러주는 사람이 없는 백수로 전락한다. 그를 구제해 준 것은, 한때 여배우를 꿈꾸었으나 현재는 케이블 방송의 홈쇼핑 프로그램에서 쇼 호스트를 하고 있는 현재의 아내다. 그녀는 여배우 시절 무명의 설움을 씻어줄 사람으로 나를 선택하고,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조력에도 불구하고 2년째 아무런 작품도 쓰지 못했고, 아내 몰래 용돈 벌이 삼아 ‘야설’을 쓰며, 옛 애인을 만나고 있다.
그는 신혼 초에 길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주워 왔다. 아내는 처음에 고양이를 귀여워했으나,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를 귀찮아할 뿐 아니라, 내버릴 궁리마저 하고 있다. 나는 아내의 고양이에 대한 푸대접이 자신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관문을 열어두어도 집을 나가지 않는 고양이처럼, 그 자신도 결코 이 집을 자기 발로 나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닷새 동안 일본 출장을 간다고 나갔던 아내가 방송국 근처의 비즈니스호텔에 홀로 묵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모르는 체했던 게 그 증거다.
「고양이와 나」와 「날개」의 연관성은 경제력 없고 무기력한 남자가 여자에게 얹혀살고 있는 설정에서 가장 두드러지지만, 그보다는 두 소설이, 공히 ‘이들은 과연 가족이었을까?’라는 질문을 자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는 모두 ‘의사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창작집에 실린 차례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 애인을 만나러 가다」의 오유리는 부모 없이 친척 집을 전전하다가 열여섯 살 때 독립하게 되는데, 자취방에서 만난 같은 나이의 윤지와 윤지의 남자 친구인 진하와 의사 가족을 이룬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은 4년 동안 “더없이 다정한 남매”였다.
표제작인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의 주인공 자매에게도 부모는 없다. 언니가 낙태 수술을 받다가 죽자, 그녀의 여동생(‘나’)을 위로해준 사람은 그녀가 학교에서 사귄 태원의 엄마와 그 가족들이다.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나는 태원이 엄마의 젖가슴에 얼굴을 댔다. 다보록한 가슴에 코를 묻자 뺨을 묻고 싶어졌고 또 귀를 묻고 싶었다. 나는 자꾸만 파고들었다.
“아이고, 불쌍한 토끼 같으니. 살아봐라, 세상이 다 그렇게 아린 게니라.”
토닥토닥. 태원이 엄마가 내 엉덩이를 두들겼다. 나는 더 깊이 태원이 엄마의 가슴에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어느샌가 태원이 아버지가 아기처럼 기어나와 이불 발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아보니 태원이도 방문을 열어놓고 있다. 작은 토끼야, 잘 자. 어두운 방 안에서 태원이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긴 귀에,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무화과잼 한 숟갈」의 여주인공 역시 결손가정에서 자랐다. 주인공 ‘나’는 이혼녀이자 두 살배기 아들을 언니에게 맡긴 채, “기억상실”을 위해 선택한 호주에서 우연히 만난 동년 한국 여성과 자매가 된다. 또 「연가」의 주인공 ‘리’는 카드빚 때문에 필리핀으로 도망와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필리핀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끝내,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던 리와 그의 아내 아야 그리고 그들의 예닐곱 살짜리 아들 에밀은 가족이었을까? 이어지는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의 여주인공에게는 딱히 의사 가족이라 할 만한 게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 있지도 않다.
이제 남은 작품은 「쌍둥이들의 방」, 「역전다방」, 「사과와 적포도주가 있는 테이블」이다. 제목 그대로 「역전다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마담 언니, 장 양, 조 양은 친자매들이 아니지만, 생일이면 서로 미역국을 챙겨주는 사이다. 이들에게는 동료애가 가족을 대체하고 있는데, 특히 마담 언니는 결혼도 하지 않은 애인의 병수발을 위해 모든 재산을 바칠 각오다. 조 양이 답답해서 언니를 다그친다. “퍼다 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막말로 언니가 그 인간허구 살림을 차렸어, 결혼을 했어?”
주류가 되지 못한 주변부 인생들의 끈끈한 정은 가족보다 더 나은 의사 가족의 모습을 왕왕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역전다방」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면, 「쌍둥이들의 방」이나 「사과와 적포도주가 있는 테이블」은 좀 복잡하고 섬뜩하다. 「쌍둥이들의 방」의 명주는 천만 원을 벌기 위해, 남편의 허락 아래 대리모(씨받이)가 된다.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쌍둥이는 그들의 가족일까 아닐까? 이 작품은 언제부터인가 가족 안에 이미 가족 아닌 것이 들어와 있다는 섬뜩한 ‘시대 선언’처럼 보인다. 반면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하면서 사과와 적포도주에 대한 알레르기를 키워왔던 여주인공이 소설의 끝에 이르러 “알레르기 따위는 애초에 없었는지도 몰랐다”며, 사과를 베어 물고 포도주를 마시는 「사과와 적포도주가 있는 테이블」은 우리들에게 가족 없이도 살 수 있는 내성을 키우라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