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밀턴 멜저의 『랭스턴 휴즈』를 읽으면서 같은 책 속에 언급된 흑인 시인들의 작품을, 마침 갖고 있는 『세계흑인문학전집(5)』(휘문출판사, 1965)에서 찾아보았다. 거기서 읽은 작품과 『랭스턴 휴즈』 말미에 번역자가 ‘흑인시인 대표시선’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해 놓은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짧은 인상기를 쓴다.
『랭스턴 휴즈』에 씌어져 있듯이, 그가 막 시인으로 이름을 떨칠 무렵은, 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못 믿는 것만큼이나 흑인시인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문학에 재능이 있는 흑인들은 백인 문학을 통해서만 문학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 생기는 문제는,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백인 언어에 위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런 교육과 문학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런 모순을 문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사회에서 안정된 신분을 갖고 높은 교육을 받은 흑인일수록, 백인의 생활양식과 문화에 동화되기를 원했다. 먼저 『세계흑인문학전집(5)』에 실려 있는 M. 카알 폴만의 「Mr. Z」를 읽어보자.
그의 어머니의 검은 피부는 죄과의 표시라고 어릴 적부터 배운 그는
옷을 입을 때나 말할 때 있는 체모體貌를 다 갖추었다.
장학금으로 일류 학교를 다니었고
재즈와 흑인 성가는 싫어하고
매사에 흑인답지 않게 신중하며
말다툼에서 딜레마에 빠지면
언제나 단호히 고집을 부리고
무엇이든 앵글로색슨 적인 것은 모두 택하였다.
역시 식성에 있어서도 그의 습관은 특이하였다.
쌍스런 돼지고기를 꺼려하고
포도주, 소오스, 샐러드의 애호가며
옥수수빵, 고구마, 채소즙은 그의 미각을 잃게 하였다.
그가 키스할 사람을 택하는 데도 조심하였다.
그의 신부는 어떻게 보면 유대인 티는 없었지만
그녀의 눈은 늘 푸른색이었다.
어느 감독교회 목사는 그들을 어울리는 카멜레온이라 하였다.
국내외 어디서나 좋은 곳에 거주하였고
그들을 적대하는 장소는 늘 피하였다.
그의 산뜻한 말투나 검은 살결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의
식사 초대는 아예 바라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인종적인 중압의 장애를 안 받은 그는
뿌리 없이 무성하는 허공에 뜬 초본草本과도 같았다.
남의 비위를 거스르는 단 하나의 일도 한 적 없이 죽을 때까지.
미묘하게 슬퍼하는 그의 미망인은 사망고시자死亡告示者들을
혹평할 수 있었으리라 - 졸렬한 말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어구 변경을 주장하면서
“그는 그의 인종의 가장 저명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고.
다음은, ‘흑인시인 대표시선’에 나오는 르로이 존스의 「흑인 부르주아지」(이 시의 제목은, 곧바로 본문과 연결되는 본문의 일부다).
라는 자는 금이빨을 하고 있고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돈 생각만 하고 있다.
밀실에다가 하얀 실을 가진 사람 불러들여
기분을 내기 위한 기분을 샅샅이 음미한다
링컨(들)에 관한 꿈을 꾸고
그의 딸년의 머리칼을 쥐어뜯고
새끼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느라
열심히 일하며
레스토랑에서는 예의를 갖추어 이빨을 드러내고
하기 좋은 말만 지껄이되
세상사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그 대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흑인임에 대해 증오한다
교육받은 흑인 중산층은 백인의 일상과 언어를 습득하고자 했다. 그런 끝에 피부색은 어쩔 수 없지만, 영혼만은 백인이 되고자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시는 곧 백인의 언어와 문학적 관습을 잘 터득하는 것이었다. 『랭스턴 휴즈』에서 ‘정통적’이라고 불린 카운티 컬렌 같은 시인이 그런 경우로 짐작된다. 이런 풍조에 반기를 든 것이 최초의 흑인 시인이 폴 로렌스 던바다. 그는 무식쟁이 흑인의 말투와 재즈의 스윙과 같은 비관습적 운율을 시 속에 도입했고, 랭스턴 휴즈는 그의 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시를 원어로 읽을 수는 없지만, 번역만으로도 랭스턴 휴즈의 구술성이나 파격적인 운율을 느낄 수 있다.
흑인의 역사와 사회적 정체성을 흑인의 언어로 표현했던 던바류의 시들은 발표되자마자 ‘실험적’이라고 평가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흑인 문학의 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랭스턴 휴즈는 물론이고, 1920년대의 흑인 문화운동을 일컫는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 1917~1935. 대체로 1920년대 미국 뉴욕의 흑인지구 할렘에서 퍼진 민족적 각성과 흑인예술문화의 부흥을 가리킴)’에 참여한 흑인 시인들을, 앞서 나온 흑인 중산층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시낭송이 끝났을 때] 어떤 흑인병사는 당신은 왜 문법적으로 틀린 말이며 엉터리 영어, 은어를 시어로 쓰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곳에 있는 흑인병사들은 대부분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당신의 시는 마치 무식한 흑인이 모든 흑인의 대명사처럼 생각하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랭스턴 휴즈』, 193쪽)
흑인 대중이 할렘 르네상스로 대변되는 새로운 흑인 문학을 반기지 않은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흑인은 당대의 통속 소설이나 만화 속에서 늘 조롱거리의 대상이었다. 신문이나 방송은 흑인이 저질렀거나 혹은 저질렀다고 전해지는 모든 범죄들을 물고 늘어져 화제를 만들었다. 또 많은 소설이 흑인을 야만적인 모습으로 희화화했고, 영화나 연극 또한 흑인을 광대나 혹은 무능하고 무식한 인물로 정형화했다. 때문에 흑인 중산층은 할렘 르네상스가 쏟아내는 실험적 시들이, 잊고자 하는 자신들의 상처를 헤집어 놓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반응은 일반적인 흑인 대중만 아니라, 당대의 흑인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에게 더 심했다. 그들은 흑인의 형상이 어떤 모습으로 활자화되는가에 대해 대단히 민감했고, 특히 흑인 비평가들은 흑인의 밝은 면과 성공을 거둔 중산층 흑인의 생활상만 내보여지기를 원했다. 이 대열의 선두엔,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랭스턴 휴즈가 어린 시절부터 흑인 지도자로 존경해 온 듀 보이스 박사가 있었다. 기성의 흑인지식인들이 새로운 흑인 문학에 찬물을 끼얹자, 랭스턴 휴즈는 흑인 문학의 ‘독립선언서’나 같은 글을 <네이션>과 <피츠버그 쿠리에>에 기고했다.
흑인청년 예술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무엇인가? 내 생각으로는 문제가 복잡할 게 없다. ‘백인이었으면’ 하고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소리에 굴종하는 예술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자는 것이다. ‘왜 내가 백인이기를 원하는가?’ 나는 흑인이며, 그것도 위대한 흑인이다’라고 외치고 싶어하는 흑인민중들의 열망을 예술로 되돌려놓자.
그래서 나는 니그로 시인이 흑인의 세계에 관심을 갖는 것을 두려워할 뿐 아니라, 시인이 되더라도 ‘흑인적인 것은 싫다’라고 말할 때 수치를 느낀다. 또한 나는 흑인화가가 니그로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백인들의 화풍을 거역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아카데믹한 수법으로 일몰풍경이나 그리는 것을 볼 때 수치를 느낀다. 예술가는 그의 예술과 관련하여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하고, 그리고 그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아무런 두려움도 가져서는 안 된다. (상동, 122~123쪽)
내 유일한 두려움은 우리 흑인비평가들이 나에게 가한 적대적인 비평 태도가 혹시나 다른 젊은 흑인시인?소설가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에 관해 쓰지 못하도록 위협을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될 것이다. 한 예술가가 창조해낼 수 있는 최상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지속성을 갖는 예술은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에 기초를 둘 때 이루어진다. 만약 내가 뉴욕사회 중에서도 상류층이 사는 밴더빌이나 굴드, 또는 파크 애비뉴의 사교계에 관해 쓴다면 그것은 확실히 내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지역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흑인생활의 비참한 실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방식대로 써왔다. 적어도 흑인의 3분의 2는 하층계급에 속해 있고 나 역시 그들과 같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이들에 관해서 쓰면 안 된단 말인가? 상류계급에 관해 알고 있는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상류계급에 관해 쓰게 하라. 나는 이 책에서 내가 흑인생활의 어떠한 측면들을 그려내고자 하는가를 분명히 밝혔다. 내가 흑인생활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따위의 비판은 어이없는 일이다. 흑인생활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정당한 비평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내게는 내가 원하는 흑인생활을 그려낼 권리가 있다. (상동, 124~125쪽)
흑인 문학사의 흐름은 결국 할렘 르네상스 기간에 뿌려진, ‘흑인성 회복’으로 결말이 났지만, 할렘 르네상스 초기의 새로운 흑인 문학운동은 흑인 엘리트 지식인보다 오히려 백인 독자들과 후원자의 지지를 받았다. 일례로 랭스턴 휴즈의 청년기는 삶과 문학 양면에서 백인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았다(하지만 백인의 지원이 모두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었다. 1928년에 만났던 돈 많은 백인 미망인 러퍼스 오스굿 메이슨은 거의 ‘검열관’처럼 굴면서, 랭스턴이 흑인성에 입각한 저항적 시를 쓰기보다 ‘천진난만한 시’를 계속해서 쓰기를 원했다. 백인에게 흑인은 ‘본능적이기만 한 어린애’여야 했다).
흑인성이란 자신의 역사와 사회적 정체성 그리고 자신의 언어를 자각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흑인사는 물론이고, 흑인 문학은 자신에 대한 존중만 아니라, 미국인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수긍해야 한다. 미국인이면서 흑인이라는 두 개의 영혼, 두 개의 사고방식, 화해할 길이 없는 두 개의 생존방식. 흑인 시인들의 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연?노동?신앙?국토에 대한 예찬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흑인문학전집(5)』에 실려 있는 D. W. 컨논의 「나의 영혼에 깃들인 자유」는 ‘미국인이기는 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중성의 찢어진 틈을 보여준다.
나에게 주어진 오직 마흔 에이커의 토지!
그리고 나의 영혼에 깃들인 자유!
하늘을 핥는 큰 소나무들,
그 위에 호두나무와 치솟는 참나무들!
그리고 나의 영혼에 깃들인 자유!
그 모든 것이 지금 막 끝난 것처럼
나는 그것들을 다만 소박한 것으로 볼 뿐.
마흔 에이커의 토지와 노새 그리고 쟁기-
네 식구에 알맞은 크기의 오두막,
나의 집 문 앞을 수놓는 화원,
그리고 나의 영혼에 깃들인 자유!
그리곤 우물을 깊게 파야겠다
시원한 물이 넘쳐 흐르게,
이번엔 교회를 세우고
다음엔 학교를 지으련다.
주여, 이런 일들이 보람 있는 일이 못 된다면
저희들을 곧장 하늘나라로 인도하옵소서,
나의 영혼에 깃들인 자유의 나라로.
“네 식구”가 있고, 곧 “교회”와 “학교”를 짓는다고는 하지만, 그런 다짐은 신에게 올리는 기도 속에만 있을 뿐, 이 시에는 아무런 사회관계가 없다. 시적 화자의 자유가 가치로 드러나야 할 장소는 원래 사회이지만, 이 시에는 처음부터 사회가 없다. “마흔 에이커”와 “나의 집 문 앞”을 벗어나 보지 못한 그는 한번도 부자유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자유라는 개념을 얻어올 수 있었고, 그것이 “영혼”의 대체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을까? 시의 마지막 행 “나의 영혼에 깃들인 자유의 나라로”가 확연히 보여주듯이 흑인의 자유는 그것이 꼭 필요한 사회에는 없고, 영혼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추상성과 선험성에로의 도피는, 미국인과 흑인이라는 봉합되지 않는 이중적 자아에 짓눌린 흑인 시인의 처지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랭스턴 휴즈』 속에 ‘정통적’인 시인으로 불린 카운티 컬렌에 대한 부연이 있어야 한다. 랭스턴 보다 한 살 아래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이미 명성을 얻었고, 할렘의 시낭송회장에서 랭스턴과 만났을 때는 뉴욕대학교 학생이었다. 밀턴 멜저는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휴즈가 실험적이라면 컬렌은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기질과 스타일 면에서 서로 대조적이었으나 둘의 이름은 이미 새로운 시인들 중에서도 쌍둥이별처럼 함께 빛을 발하고 있었다”(96쪽)고 쓰고 있다. 그런데 『랭스턴 휴즈』 말미의 ‘흑인시인 대표시선’에 실린 그의 시 「어떤 비평에 대하여」를 보면, 실험적 시들이 기성의 흑인 지식인들로부터 비난을 당했던 만큼, 그 역시 흑인성을 표나게 들고 나온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모양이다.
꼭 그래야 하겠거든 배신자라고 부르거라
모반을 꾀하고 딴짓을 했다고 외치거라
이 세상에 대해 모른 체하며 한눈을 팔고
신성한 약속을 어겼다고 말하거라
너희들이 떠드는 것과는 유를 달리하는
내가 부르는 이러한 노래의 창법을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리라
인종이 다르다는 것을 떠들어 슬픔이 줄어드는가
고통을 읊는 것이 무슨 성스러운 일인가
슬픔을 노래했자 답답하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하느니만 못한 노릇이다
눈이 먼 양羊들이 언덕마다
괴상한 것만 찾아 날뛸 적에
목동인들 어찌 특별히 마음을 쓸 것인가
오직 검정 양 새끼에 대해서만
위의 시에서 카운티 컬렌은,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흑인의 시’가 “검정 양”(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작은 더 많은 “눈이 먼 양”(보편성)에 대해서는 놓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어떤 비평에 대하여」만 보면 그가 흑인성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계흑인문학전집(5)』에 실린 「조그만 사건」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찌기 그 옛날 발티모어에서 차를 타고
기쁨에 가슴이 넘치고 머리도 넘쳐
내 보았느니, 한 발티모어 사람이
나를 오래 정시正視하는 것을.
그때는 내 나이 여덟, 아주 작았었다.
또 그 역시 별로 크지 않았다
그래 내 미소를 띠웠더니 그는
혀를 내밀며 나를 불러 ‘검둥이’라 하였네.
나는 발티모어를 두루 살펴보았네.
오월서부터 섣달까지
거기서 내 당한 일 중에는
내 기억에 남은 것은 그것뿐.
시인 자신일 게 분명한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여덟’ 살 때 발티모어를 여행했던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백인 소년을 향해 “미소를 띠웠더니” 돌아온 것은 “검둥이”라는 놀림이었다는 것. 시인은 그때 겪었던 사건을 ‘조그만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여덟 살 때 겪었던 저 사건이 제목처럼 조그맣지 않다는 것은, 가장 마지막 구절 “내 기억에 남은 것은 그것뿐”이, 아프게 역설하고 있다. 그에게 붙은 정통적이라는 꼬리는 흑인성을 표내거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을 표나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일 뿐, 흑인으로서의 자각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정통적’이라고 해서, 펜으로 백인의 비위를 맞추어주는 줏대 없고 비굴한 또 한 명의 ‘엉클 톰’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사족이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들춰 본 김남조의 『그래도 못다 한 말』(상아출판사, 1966)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흑인 시집은 그 시정이 처참하고 아픈 맥박으로 숨 가빠 있긴 했지만 시기법詩技法은 확실히 뒤떨어져 있었다.”(101쪽) 아마 그 시집이 『세계흑인문학전집(5)』일듯한데, 소위 그 시절의 문협 정통파 수준에 비추어, 거기에 실린 흑인 시인들의 시가 뒤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