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안느-실비 슈프렌거 『아귀』(열림원, 2008)를 읽다. - 스물일곱 살의 여주인공 클라라는 폭식증이고, 그녀의 동갑내기 애인인 프레데릭은 거식증이다. 이 작품은 이런 이항구조로 가득 차 있다.
몸, 언제나 결국엔 몸이다. 나는 끊임없이 몸의 문제로 돌아온다. 그리고 도망치고 싶은 욕구와 즐기고 싶은 욕망, 혐오감과 쾌감 사이에서 방황한다. 내가 육체의 부름을 그토록 경계하는 이유는, 내가 그것에 결코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거역할 수 없는 두 개의 힘에 시달린다. 그 하나는 몸을 팔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당의 성체를 마구 집어삼켜 나 자신을 정화하려는 욕구다.
클라라는 거동조차 불편할 정도로 뚱뚱하다. 그녀의 폭식증은 열두 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는데, 모든 폭식증과 거식증이 그렇듯이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아버지가 없었다는 것(가끔씩 만난 아버지는, 그녀에게 아무런 위안이나 안정을 주지 못했다), 그녀가 태어나기 3년 전에 언니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다섯 살에서 여덟 살 사이에 여러 차례 강간을 당했다는 것(아버지인지도 모른다). 좀 빤하다.
“내 몸은 여기저기 무수하게 구멍이 뚫린 체이다. 다섯 살 나이에 내 영혼은 사방으로 갈라진 틈을 통해 남김없이 흘러가버렸다. (…) 내 몸은 움푹 파여 있고 텅 비어 있다. 모든 것이 이토록 빨리 새어나가 버리는 이 몸을 대체 어떻게 채운단 말인가.”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너무나도 일찍 나쁜 어른들의 세계로 불려 갔다. (…)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방황했고, 마구 음식을 먹었고, 그 마구 먹은 음식들을 토해냈다.” “내가 이렇게 폭식과 구토를 일삼게 된 것도 성기의 그 움직임을 스스로에게 감추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옷장문을 닫아버리기 위해, 시큼한 토사물 속에 내 기억을 희석해버리기 위해…” 같은 고백을 보면, 나열된 원인 가운데 마지막 것이 가장 결정적이다.
여주인공이 어려서 당했던 강간이 그녀를 폭식증으로 인도했다면, 그것은 자신을 지키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처단이면서,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체험에 대한 방어다. 뚱뚱해지면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간의 기억은 몸에 대한 태도만 바꾸어 놓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강간한다면? 오,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일일 게다. 애정이나 마음의 고백? 그런 건 이제 다 끝난 일이다”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그것은 사랑과 성에 대한 전도된 의식마저 남겨놓았다. 그녀는 창녀가 되었다.
그녀의 폭식증은 처음부터 “얼룩진 어린 시절”에 대한 “단죄”였고, 창녀가 되고 나서는 그것을 속죄하려는 추가 행동이 따랐다. 그녀는 자신의 손님에게 “구타”를 요청하곤 했는데, 속죄 요청이기도 했던 그것에는 또 다른 설명도 있을 수 있다. 윌리 파시니의 『에로스와 가스테레아』(동심원, 1996)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뚱뚱한 여자는 몸매가 뚱뚱한데도 불구하고 남자에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고마워하면서 감사의 마음으로 남자의 요구에 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는 사람을 속이라면 속이고 어떤 비난이든 감수하라면 감수하며 시시콜콜한 사도마조키스트적 희롱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 여자들에게 접근할 때 아주 예쁜 여자들은 친구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살이 뚱뚱하게 찐 여자를 고르는 데 그런 여자들은 여간해서 거절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바로 그것이 ‘뚱보 창녀’의 경쟁력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비열한 것일까? 거식증이나 폭식증은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지만 정작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거나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내보이는 몸짓 언어다.
오 맙소사, 주님, 제 살로부터 저를 정화시켜주세요. 저의 내면으로부터 씻겨주세요. 이렇게 엎드려 기도합니다. 전 너무나 추해요.
나는 구원을 찾아 홀로 사막을 헤맨다. 이 사막에서는 죄인 노릇을 하는 것도, 속죄양 노릇을 하는 것도 모두 내 몫이다.
프레데릭이 갑작스럽게 죽자, 클라라는 그의 골분을 먹는다. 에로티시즘과 식인은 원래 잘 어울리는 공식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클라라가 프레데릭의 골분을 먹어야 될 만큼 설득력 있는 에로티시즘이 느껴지지 않는다. 식상한 소재, 단순한 구성, 자동인형 같은 인물… 행주를 짜낸 물로 만든 가짜 커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