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벤자민 프랭클린의 『프랭클린 자서전 - 덕에 이르는 길』(예림미디어, 2004)을 읽다. - 원제가 『The Autobiography of Benjamin Franklin』인 이 자서전은 미국 산문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세계의 여러 자서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고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네댓 종의 판본이 나와 있다. 예림미디어판에서는 부제로 ‘덕에 이르는 길’이라고 떡하니 붙여 놓았는데, 이 부제에 해당하는 원서는 『Benjamin Franklin's The Art of Virtue: His Formula for Successful Living』이라는 제목을 가진 별도의 책이다. 자서전보다 먼저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의 번역본 또한 여러 가지 형태의 편집으로 나와 있는데, 가장 원제에 근접한 『덕의 기술』(21세기북스, 2004)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아메리카의 르네상스인’이었던 프랭클린은 정치·사회·과학·문학 등 여러 방면에서 다재다능한 경력을 과시했다. 특히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그가 전기의 양극과 음극을 발견하고 피뢰침의 원리를 실험한 것이라든지, 미국 독립선언서의 초안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도 익히 아는 바다. 하지만 그가 물려준 가장 큰 영향력 있는 유산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자기계발의 의지’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자서전과 『덕의 기술』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자기계발서의 원형을 제공한다.
프랭클린은 자서전 안에, 자신의 자서전이 어서 완성되기를 바라는 두 추종자의 간곡한 서신을 삽입해 놓았다. 아벨 제임스와 벤자민 보간이 쓴 두 편지는, 『프랭클린 자서전』의 ‘자기계발서’적 핵심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다음은 아벨 제임스와 벤자민 보간이 따로 보냈던 두 통의 서신이다: “귀하가 쓰신 것이 발표되었을 때(저는 꼭 발표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은 그것을 읽고 귀하의 청소년기의 부지런함과 절제를 본받게 될 것입니다. 현존하는 사람들, 아니 현존하는 여러 사람들을 합쳐도 당신만큼 아메리카 청년들에게 젊어서부터 일에 열중하는 근면, 검소, 그리고 절제의 정신을 더욱 크게 고양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인물을 나는 달리 알지 못합니다.” “귀하의 자서전은 먼 훗날 위대한 인간 형성에 영향을 줄 것이며, 『덕에 이르는 길』과 함께 개인 성격의 특징들을 향상시키고 결과적으로 공사를 막론하고 모든 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말한 두 가지 작용은 독학의 훌륭한 법칙과 사례를 제시해 줄 것입니다. 학교 교육이나 그 밖의 다른 교육은 언제나 잘못된 방침으로 시행되어 왔으며 열악한 조직으로 잘못된 목표를 추구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사용하신 방법들은 간단하고 목표가 명확합니다. 그뿐 아니라 부모들이나 젊은이들이 인생의 적절한 행로를 판단하여 결정하고 그것에 대한 준비를 갖추는데 필요한 올바른 방법을 갖지 못하고 있을 때 문제의 열쇠는 대체로 개인의 손에 쥐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의 발견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입니다. (…) 선생님의 자서전은 자신의 출신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시겠지만 이 점이 한층 더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떠한 출신 성분도 행복, 덕행, 또는 위대성에 대해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자서전은 두 추종자들의 열화와 같은 희망을 충족시켰다. 이 책은 열중·근면·검소·절제의 미덕과 함께, 성공의 열쇠는 출신 성분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모두들 알다시피, 프랭클린의 자서전이 강조하는 미덕들은, 근 몇 년간 베스트셀러 순위를 독점하며 기승을 부렸던 허다한 자기계발서의 내용과 별 차이가 없다. 크게 다른 게 있다면, 프랭클린은 요즘 나오는 자기계발서의 저자들과 달리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양초와 비누 제조업자의 14번째 아이로 태어난 그는 열 살 때 2년간의 정규교육을 중단하고, 집에서 아버지의 일손을 도왔다. 그리고 열두 살 때부터는 인쇄업을 하던 맏형 밑에서 도제 생활을 시작했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이 누대를 이어가며 읽혀 온 것은, 자수성가했던 지은이의 삶이 후광과 같은 설득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자기계발적인 특성은 앞서 말한 열정·근면·독학에 집약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프랭클린과 하느님(종교)과의 관계다. 분명 자서전 서두에는 “나는 가난하고 이름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며 부유함과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명성을 얻었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상당히 행복하게 살았다”, “나의 행복한 지난 일생이 하나님의 인자하신 가호 덕분이며 그 가호가 내가 사용한 방법마다 성공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겸허한 마음으로 고백하고 싶다. (…) 하나님의 은총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의 프랭클린의 삶이나 신념은 하나님의 가호나 은총에 기대지 않았다. “겨우 15세가 되었을 때는 성서 자체에 의구심까지 생겼다”고 말하는 프랭클린은 자연신교도自然神敎徒였다: “무한한 지혜, 자비심, 그리고 능력을 하나님의 속성에서 생각해본다면 이 세상에 악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미덕과 악덕은 구분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 나는 어떤 종류의 행위가 성서에서 금하고 있기 때문에 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성서에서 명령하고 있기 때문에 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그런 행위는 모든 환경을 고려한 후에 본디부터 우리에게 해롭기 때문에 금지된 것이고, 유익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국교도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프랭클린의 아버지는 그에게 꽤 엄격한 종교 교육을 시켰다(“나는 장로교회파 신자로서 종교적 교육을 받아왔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죄를 지으면 현세나 내세에서 반드시 천벌을 받고, 선을 행하면 영혼이 불멸하는 것은 기독교의 특성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본질”이며, “모든 종교들 속에서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나는 모든 종파를 존경했다.” 또 여든네 살까지 장수했던 그는, 교회의 설교가 “선량한 시민을 만든다는 것보다 장로파의 교인을 만드는 것에 있는 것” 같다면서, 예순두 살 이후로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가호와 은총에 감사했던 자서전 서두와 달리 프랭클린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고 지금도 강건한 체격을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은 절제의 덕이다. 또한 젊은 시절부터 궁핍한 생활은 하지 않았고 재산도 얼마간 쌓았으며, 여러 가지 지식도 얻고 유용한 시민이 되어 학식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근면과 절약 덕이다. 국민의 신망을 얻고 영광스러운 나라의 임무까지 맡게 된 것은 오로지 정직과 정 덕분이다. 나는 언제나 평온한 심정이고 타인과의 대화에서 늘 명쾌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친교를 맺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젊은 친구들의 귀한 사랑을 받게 된 데에는 모두가 덕의 종합적인 힘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자손이라면 이것을 본받아서 그와 같은 이점을 얻을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자긍심 속에 어디 하나님이 끼어들 자리가 있으랴?
예림미디어판 『프랭클린 자서전』에 잘못 붙여진 부제인 ‘덕에 이르는 길’, 곧 『덕의 기술』은 프랭클린이 위에서 말했던 ‘덕의 종합적인 힘’을 별도로 정리한 책이다. 그는 스스로 ‘덕의 종합적인 힘’이라고 부른 13개조의 덕을 통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자서전에 나오는 13개조가, 『덕의 기술』에서는 한 가지 줄어들어, 12가지 삶의 원칙으로 나온다). 첫째. 그의 13개조는 입을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어디서 어떻게 옷과 음식을 얻을 것인가는 가르쳐 주지는 않으면서 ‘착한 사람이 되라’는 식의 훈계를 늘어놓는 기독교와 달리, 밥과 옷을 얻는 수단을 가르쳐 주고자 했다. 둘째. 그는 13개조를 통해 기성 종교의 본질을 포함하고 있으면서 계시 종교와는 다른, ‘덕을 닦는 연합체(결사)’를 만들고자 했다.
J. 브로노프스키·브루스 매즐리슈가 함께 쓴 『서양의 지적 전통』(홍성사, 1980)에는 프랭클린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칸트·헤겔에 이르는 서양의 기라성 같은 지식인들 틈에 당당하게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이름만 보고서는 ‘급’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장을 읽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프랭클린은 18세기의 산업 발흥과 결부된 새로운 인간형, 즉 “기술적 숙련에 의해서 인생의 출발점을 내디”딘 “엔지니어의 새 세대”를 뜻한다. 프랭클린은 마흔두 살 때 인쇄업에서 손을 뗐지만, 죽기 두 해 전에 유언을 쓰게 되었을 때 “나, 필라델피아의 인쇄업자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또 그의 묘비에는 간단하게 ‘인쇄인 프랭클린B. Franklin, Printer’이라고만 새겨져 있다. 자신이 감당한 삶을 어떤 신분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이런 에토스는 ①소박하고 ②어떤 원리도 나의 자유로운 승인에서만 추인되며 ③과학적이고 공리적인 신대륙 고유의 감각을 보여준다.
사족이지만, 혹시 이 글을 읽고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으려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읽지 마시라.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 자서전은 독립선언과 독립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이전인, 1757년 무렵에 맥없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