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중앙대학교 한일문화연구원 편 『일본의 요괴문화』(한누리미디어, 2005)와 모리세 료의 『도해 크툴루 신화』(AK 커뮤니케이션즈, 2010)를 읽다. - 두 권 다 헌책방에서 사왔다. 『일본의 요괴문화』는 14명의 필자들이 일본의 ‘요괴 문화’에 대해 한 꼭지씩 품앗이를 한 책이다. 주로 중앙대학교의 일본문화(문학) 전공자들과 민속학 전공자들로 짜여 있는 필진 가운데, 고마쓰 가즈히코와 다치바나 시게요 같은 일본 필자와 중국문학 전공자인 정재서도 끼어 있다(이 책은 거의 정재서의 이름을 보고 산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기 실린 그의 글은 실망에 가까웠다).
영화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일본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일본 소설에는 요괴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자주 거론된다. 최근에 읽은 무라카미 류의 『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이가서, 2003) 같은 소설도 사도-마조히즘이라는 외양 때문에 간과되어 그렇지, 일본문화에 그들먹한 요괴들을 떠나서는 이해되기 힘들다.
일본의 요괴에 대응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도깨비다. 그런데 도깨비는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기도 하거니와, 많지 않은 숫자만큼 성격도 단순하다. 도깨비는 ‘사람을 놀려 먹는’ 유쾌한 귀신이다. 반면, 일본의 요괴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가짓수로 한국의 도깨비를 간단히 제압한다. 그런 탓에서인지,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후반에 이미 요괴학이라는 학문 용어와 전문 연구자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두 나라 문화의 차이를 한 필자는 이렇게 짚고 있다: “한국은 오랫동안 유교적 이념과 도덕의 규율 속에 갇혀 있었다. 다분히 미신을 배척하고 무절제한 상상을 구속했던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다양한 귀신과 요괴의 패턴이 생겨날 토양이 마련되지 못했거나, 생겨났다고 해도 기록으로까지 남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이재성)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불가사의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귀신 이야기’로 구전되는 게 보통이다. 예컨대 에도시대부터 민간에 전승된 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가 그렇다. 이 놀이는 밤에 친구들이 촛불을 하나씩 켜들고 각자가 미리 준비해 온 귀신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이야기를 마치면 자신의 촛불을 끄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밤은 깊어지고 촛불이 하나씩 꺼지면서 주변이 어두워지는 게 이 놀이의 묘미로, 여기서는 무서운 이야기와 공포를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욕구가 혼합되어 있다.
햐쿠모노가타리와 같은 이름이 없을 뿐, 우리나라에서도 무서운 이야기와 공포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귀신 이야기를 조르는 어린아이들의 여름밤 풍경에 새겨져 있다. 강조하자면, ‘귀신’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요괴 문화는 이야기/구전만 아니라 갖가지 이미지와 전통문화로 표현된다는 게 한국과 다르다. 예를 들어 일본에는 ‘요괴 그림책’과 같은 시각 예술이 흔해서, 아예 미녀 귀신을 그리는 ‘유령화’라는 미술 장르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리고 요괴 이야기를 극화한 가면극과 가부키도 풍성하다(일본 전후 연극계의 재산목록 1호로 일컬어지는 기노시타 준지의 희곡 「유즈루」를 떠올려 볼 것). 두 나라 사이의 이런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 어느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전통문화 유산에는 이미지 자료가 풍부하다. 한국, 중국과 비교해 보았을 때 우리는 한눈에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이미지와 상상력을 억압했던 유교전통이 강한 한국에 비해 불교와 민간신앙의 전통이 강한 일본에는 이미지 자료가 차고 넘친다.”(정재서)
일본 문화에서 요괴가 비중을 띠기 시작한 것은, 헤이안 시대(794~1191) 말기부터라고 한다. 그렇게 된 까닭을 한 일본 학자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뭔가 스케일 크게 부조리한 사건들을 설명해 주는 존재로서, 혹은 자신들의 바람을 들어줄 존재로서 요괴를 만들어내고 마음의 위안으로 삼아 괴로운 시대를 버티어 나가려고 했을 것”(이와이 하로사네)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은 거품 경제가 붕괴하고 대불황이 시작되면서 ‘캐릭터 비즈니스’가 유행한 1990년대에 대한 어느 일본 경제 전문가의 설명과도 겹치는 데가 있다. 그는 “1990년대 들어 일본은 거품붕괴와 함께 철저히 무너졌다. 불황은 지금도 끝이 안 보이고 종신고용도 없어지고 철도사고, 옴진리교 사건, 고베 지지 등으로 우울한 세월을 보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일본은 캐릭터라는 독특한 문화적 기호를 확산시킴으로써 이런 혼란을 완화시켰다((미야시타 마코토)고 주장한다. 거기에 덧붙여야 할 사항은, 대부분의 일본의 캐릭터가 불상이나 부적, 요괴전설, 마네키 네코(고양이 장식물) 등등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요괴 문화의 범람은 사회적 현상이고, 정치와 경제의 불안 요소가 그것을 거들고 있다는 것은 앞의 인용들이 충분히 증거하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부연하자면, 요괴 문화의 범람과 도시(근대화)의 발달이 밀접한 연관을 띤다는 점이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전깃불의 등장과 함께 귀신 이야기는 사라져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예측가능하고 계산적인 도시생활은 반대급부로 권태를 가져왔다. 그래서 요괴 문화가 크게 융성한 에도시대(1603~1867)의 사람들이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심심함이다’라고 말한 것은 여간 예사롭지 않다. 도시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에도시대와 요괴 문화의 동반 성장은, 가장 미국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전설urban legend’의 어원을 새삼 뜯어보게 만든다. 귀신 이야기는 더 이상 전통사회를 바탕으로 하거나 그 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산업화된 도시의 오락물이자 산업화된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거나 은폐하는 징후가 된다.
일본의 요괴 문화는 과거를 보존하거나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본은 전통적인 요괴 문화에 새로운 사회적 요소를 반영하면서 게임 산업, 캐릭터 산업, 관광 산업과의 연계를 꾀한다. 『일본의 요괴문화』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본받고자 기획된 책으로,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글을 쓴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괴를 적극적으로 담론하며 유형적인 표현방식을 개발하던 일본인의 요괴문화는, 요괴학이라는 학문을 성립시킴으로써 차원을 높여가고 있다. 나아가 이를 관광의 자원으로 승화시키며, 요괴를 문화상품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지혜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박전열)
전래되어 온 귀신 이야기는 한 사람의 창작이기보다는 집단 창작에 더 가깝다. 그런데 모리세 료의 『도해 크툴루 신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된 H. P. 러브크래프트와 그의 작품은 한 사람의 창조력만으로 거뜬히 가상의 ‘요괴 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도해 크툴루 신화』를 꼼꼼히 읽고 나면, 러브크래프트의 요괴담(판타지)이 전래되어 온 요괴담의 철저한 인용과 변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신 이야기는 창조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키치kitsch에 대한 많은 설명이 있지만, 독창성을 가장한 모방술이야말로 거기에 가장 잘 맞는 풀이일 것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비롯한 숱한 판타지물들은 그런 혐의를 벗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