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유순하의 『참된 페미니즘을 위한 성찰』(문이당, 1996)을 읽다. - 개인사정으로 1996년부터 몇 해 동안은, 신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헌책방이 아니었다면 이런 책이 있는 줄, 영영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유순하는 한때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신작 발표가 뜸해진 작가다.
1968년 <사상계> 신인상에 희곡을 처음 발표하고부터 소설과 동화로 글쓰기의 영역을 넓혀갔던 지은이의 이력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몽상가’라고 자칭하며 쓴 몇 권의 문화론집이다. 『한 몽상가의 여자론』(문예출판사, 1994)을 시작으로 『삼성, 신화는 없다』(고려원 1995)·『한국 정치판의 시계는 지금 몇시인가』(문이당, 1995)·『한국문화에 대한 체험적 의문 99』(한울아카데미, 1998)로 지속되었던 그의 시사적 글쓰기는, 활발한 작품 활동과 나란히 쏟아진 것이라서 더욱 이채롭다.
『참된 페미니즘을 위한 성찰』은 지은이가 일전에 쓴 『한 몽상가의 여자론』의 속편 격이다. 나는 『한 몽상가의 여자론』을 미처 읽어 보지 못한데다가, 그 책이 당대의 페미니즘 진영에 던진 파문과 지은이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성토가 얼마만큼 격렬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참된 페미니즘을 위한 성찰』에는 그 전말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책이 사건 당사자의 책이라서, 그 전말이 얼마만큼 객관적인 보고인지는 독자가 가려서 읽을 일이다.
지은이가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 부패와 타락현상을 더 촉진”(29쪽)시키며, 대안보다는 “분노”(52쪽)를 앞세우고,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욕망”(53쪽)에 속수무책인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은이는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하는 남녀불평등이나 여성차별의 제도적·관습적인 층위를 살피지 않고, 이혼율의 증가나 성 해방 물결을 페미니스트들의 고유한 주장으로 간주한 채, 그들을 인륜과 도덕 파괴의 선동자로 몬다. 이런 사고 위에서, 낙태율이 높은 것도 페미니스트의 책임이요, 매춘 종사자가 늘어나는 것도 페미니스트 탓이다.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차이가 문화적·사회적으로 남녀를 차별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페미니스트의 기본 입장이라면, 지은이는 그 차이를 “인위적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연의 절대적 질서”며 “인간은 이 질서에 승복, 순명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36쪽)고 주장한다. 이 지점을 놓치고서는 『한 몽상가의 여자론』에서 비롯된 페미니스트 진영과 유순하의 반목을 조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가 있느니 없느니’, 또는 그 ‘차이가 문화적·사회적 분업(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느니 마느니’ 하는 지점보다, 더 중요한 지점이 유순하에게 있다고 본다. 조금 길지만,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인간은 행복을 소망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행복의 추구다. 그러나 인간이 현실에서 감내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사실 불행이다. 행복에 대한 꿈이나마 꾸어보기에는 실존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세태 따라 그 무게는 차츰 더 무거워져 간다. 더러 행복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목 타는 사막을 헤매는 자의 눈에 비친 신기루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신기루는 곧 사라지고, 시야에는 팍팍한 사막이 다시 막막하게 펼쳐진다. 인간은 한 마리 고독한 낙타가 되어 그 사막을 걸어간다.
태어남을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이 현세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행복은 죽음이어야 할 듯하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인간은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여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한 마리 자벌레가 배밀이를 하며 황야를 기어가듯, 대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처연스러운 모습을 지어 보여 가며, 죽을 힘을 다해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모든 인간에 대해―사실은 모든 생명체와 심지어는 생명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까지―연민을 느낀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물론 그렇다. 행복이란, 사랑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관념에 의해 빚어진 허구 같은 것일 수 있다. (35~36쪽)
위의 인용에서 유순하가 주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행복은 그 자체로 망상(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 행복을 위한 어떤 시도도 인간의 실존(불행)을 거스르는 망동이라는 것, 행복은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몫)에 충실함으로써 얻어진다는 것. 이런 세계관의 정치적 표현이 보수주의일 것이다. 지은이의 책에서 이문열과 복거일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독자는,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