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비상경보」(1982)와 「버스 정류장」(1985)으로 가오싱젠이 자신의 초기 연극 경력을 시작했을 때, 그의 존재는 중국의 리얼리즘 연극에 현대적인 충격(부조리극적 요소)을 더하는 이색적인 작가로만 알려졌다. 특히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이 북경에서 초연되었을 때 중국의 비평가들은 “대단한 프랑스 작가 앙토넹 아르토를 비롯한 수많은 부조리극 극작가들 및 이론가들의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작품을 소개하고, 신문에서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현대 중국의 도시 사회를 성공적으로 해부했다”고 썼다. 서양의 비평가 역시 이 작품이 “중국 관객들에게 부조리극의 요소들을 소개한 최초의 연극”(샤오메이 천, 『옥시덴탈리즘』, 강, 2001, 158쪽)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민음사에서 나온 『버스 정류장』(2002)에 함께 실린 「독백」과 「야인」은 그를 베케트류의 부조리극과는 다른 지평에 올려놓는다. 실제로 그의 세 번째 작품인 「야인」(1985)이 공연되자 중국 비평가들은 가오싱젠의 관심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지적하면서 그가 “중국 연극 전통의 풍부한 자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옥시덴탈리즘』, 159쪽)고 논평했다.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원산의 총체극(아르토)과 부조리극(베케트)으로 극작 경력을 시작했던 가오싱젠이 고작 몇 년 사이에 보여준 변화는 너무 가팔라서, 당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1) 그의 초기작은 박래품 내지 습작인가, 그리하여 2) 그의 작품 목록에서 초기작을 제외해야 할 것인가?
「버스 정류장」은 확실히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시킨다. 두 작품의 유사성은 우선 등장인물들이 ‘기다린다’는 강력한 수동태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은 단 한 발자국도 자신의 근거지를 떠날 수 없다. 두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먼저 「고도를 기다리며」:
에스트라곤 그럼! 가볼까?
블라디미르 바지나 추켜올려.
에스트라곤 뭐라구?
블라디미르 바지나 추켜올리라니까.
에스트라곤 넌 내가 바지를 벗어버리는 걸 원하나?
블라디미르 바지를 추켜올리래두 그래.
에스트라곤 (자기 바지가 내려가 있는 걸 깨닫고) 참 그렇군. (그는 바지를 추켜올린다. 침묵)
다음은 「버스 정류장」:
안경잡이 (아가씨를 바라보고) 우리 갈까요?
아가씨 (끄떡이며) 음.
아이 엄마 어머, 내 가방?
청년 (경쾌하게) 제가 메고 있어요.
아이 엄마 (노인에게) 발밑을 조심하세요. (가서 노인을 부축한다)
노인 고마워요.
사람들 서로 끌어주고 부축하며, 함께 떠나려 한다.
마 주임 어이, 어이… 기다려요, 기다려. 신발 끈 좀 묶고!
가오싱젠의 등장인물들은 베케트의 주인공들과 달리, 자신들의 상황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더 강해 보인다. 하지만 “기다려요, 기다려”라는 마 주임의 대사는, 이들이 다시 ‘기다리게’ 될 것이며, 이 상황을 영영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고도를 기다리며」와 「버스 정류장」을 함께 읽히면, 대개의 학생들은 분개한다. ‘이렇게 베껴서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느냐?’면서! 두 작품은, 기다리는 행위의 가없고, 기다리는 대상이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할 뿐 아니라, 완전히 개방된 추상적인 장소를 무대로 설정한 데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구체적인 지명이 명시되지 않는다는 뜻). 미세한 차이점을 찾는다면, 「고도를 기다리며」가 「버스 정류장」보다 더 추상적인 공간이며, 「고도를 기다리며」와 달리 「버스 정류장」의 여러 일화는 주인공들이 중국이라는 구체적 장소에 있다는 것을 환기해 준다(장기, 대학, 대전문, 실용주의). 이런 미세한 차이는, 베케트의 주인공들을 초역사적인 시간에 위치시키고 가오싱젠의 주인공들을 문화혁명 직후의 중국이라는 구체적 역사 가운데 위치시킨다.
정리하자면, 베케트의 작품이 추상적 공간/초역사적 시간을 상정하고 있다면, 가오싱젠의 작품은 미세하나마 주인공들이 놓인 공간과 시간이 ‘문혁 직후의(시간)/중국(공간)’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미세’라고 말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 그 미세한 차이를 무화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세 대째 버스가 지나가고(26쪽), 네 번째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에, 등장인물들이 찬 시계가 멎거나 제멋대로인 상황이 벌어지고, 시간은 갑작스레 1년이 흘러 버린다(31~33쪽). 그리고 네 대째 버스가 지나가고(48쪽), 연이어 여러 대의 차가 줄지어 지나간 뒤(49쪽), 시간은 초秒·분分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아예 월月·년年으로 흐른다(50~51쪽). 이런 비현실적 시간 설정은, 우리를 현실이 아닌 부조리하고도 초역사적인 시간으로 인도한다.
작가는 우리를 현실에 비끌어 매 주었던 최소한의 명시적 시간을 넘어, 공간마저도 그렇게 무화시킨다. 가오싱젠은 장소를 지시하는 지문을 통해 “무대 중앙엔 버스 정류장 팻말 하나가 세워져 있다. 정류장 팻말은 오랫동안 비바람에 지워져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명기했다. 버스 팻말이 비바람에 지워지긴 했지만, 극이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여기가 중국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월·년으로 마구 흐른 뒤, 등장인물들은 ‘버스 팻말’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72쪽). 버스 팻말이 아예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이 작품을 중국이라는 공간 속에 국한해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부조리의 선언과 같다. 가오싱젠은 이런 식으로 애초에 설정했던 ‘문혁 직후의(시간)/중국(공간)’이라는 작품 내의 시공간을, 초역사화하고 탈공간화 한다.
현실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부정하는 부조리극과 달리,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고스란히 복제하면서도, 중국의 관료주의 실상을 비판한다. 그래서 앞서 했던 질문에 다음의 질문을 더 얹게 된다. 3) 그는 부조리 연극에 불철저했던 게 아닐까? 다시 말해 모든 박래품이 그렇듯, 부조리라는 외관을 흉내 내기에 급급하다보니, 그것의 정신사에는 도달하지 못한 게 아닐까?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부조리를 지향했으면서도, 중국의 관료주의 실상을 함께 비판한 「버스 정류장」을 부조리극의 영역 확대라고 보면 어떨까? 그런 해석이 무리라면, 정치색이나 사회 비판의 의도가 소거된 서양의 부조리극이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문화접변을 일으킨 정도로 생각하면 또 어떨까? 이와 비슷한 일례는 이미 우리나라 연극이 먼저 선을 보인 바 있는데, 서양의 부조리극이 한국에 수용되는 양상은 ‘사회 비판’ 의식을 배면에 깔거나 동반한 형태였다. 그것의 가장 적확한 실례가 박조열의 「모가지가 긴 두 사람의 대화」(1966)다.
B 우리가 첨 만난 날은 언젠가?
A 아아, 언제부터 기다리기 시작했는가?
B 마찬가지 뜻 아냐?
A 그럴까?
B 그럼. (C에게) 반세기…
A (B에게) 정확하게!
B 도, 더 됩니다. 밤은 낮 같은… 변함없는 나날들, 그러니까 오늘이 어제 같고. 재작년이 재재작년.
A 모든 날은 하루다. 오늘이다. (침묵)
(중략)
B (C에게) 우린 늙지 않습니다.
A 죽지도 않습니다.
B 얼마든지
A 기다립니다.
‘모가지가 긴 두 사람’이 기다린 것은 다름 아닌 ‘통일’이었다.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 역시 희망에 목말라하는 또는 항상 충족되지 못하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중국의 관료사회와 부실한 사회 환경을 함께 고발하고 있다.
흔히 모든 예술 사조는 ‘장소’를 가진다고 한다. 표현주의 연극은 베를린에, 부조리 연극은 파리에 귀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버스 정류장」과 「모가지가 긴 두 사람의 대화」의 예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예술 사조나 정신은 항상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조건 내부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는 그 나라 작가들의 ‘창조적 변용’ 과정을 거친다는 상식적인 진실을 재확인해 준다. 정치색이 옅었던 파리의 부조리극이, 파리 이외에서는 정치색을 띨 수 있는 것이다.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은 중국 연극계에서 리얼리즘을 물리치고 모더니즘을 도입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현대연극은 부조리극의 수용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비슷한 평가가 있다). 하지만 가오싱젠은 그런 평가를 거부했고, 세 번째 작품 「야인」이 발표되면서야 비로소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가오싱젠의 항변을 납득하게 됐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브레히트와 아르토로부터 커다란 영감을 받긴 했으나(『버스 정류장』, 210쪽), 실은 중국 전통 연극을 복원하는 데 관심이 있으며(214쪽), 반연극(부조리극)에는 크게 동감하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211쪽). 그는 「버스 정류장」에 대해서도 “나의 「버스 정류장」은 한 편의 연극이지, 반연극은 아니다”(211~212쪽)고 밝혔다.
재미난 것은, 「버스 정류장」이나 「야인」이 브레히트·아르토적이면서 동시에 중국 전통 연극과 겹친다는 점이다. 작품 경향이 완전히 바뀐 「야인」은 말할 것도 없고, 베케트를 베낀 듯한 「버스 정류장」마저도 곳곳에 중국 전통 연극의 흔적을 드러낸다. 등장인물들이 관객을 행해 말하는 것(43, 45, 54쪽), 또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극적’으로 보여주거나 자신의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연기술은(다성부를 연기하는 장면, 노골적으로는 “모두 자신의 역할로부터 빠져나온다”는 74쪽의 지문), 중국 전통의 연극 기법이자 연기술이면서, 연기자와 관객의 극중 몰입을 방해하는 브레히트의 소외 기법을 연상시킨다.
위의 사실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가오싱젠이 ‘아르토나 브레히트와 같은 서구의 반연극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중국 전통 연극의 뿌리는 동류다’라는 가정을 세울 수 있으며, 샤오메이 천이 쓴 『옥시덴탈리즘』의 논문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앙토냉 아르토는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연극으로부터 자신의 총체극 이론을 구상했다. 아르토는 언어를 재료로 ‘진리’를 찾는 서양의 연극은 이미 문명에 구속되어 인간의 진실한 삶을 표현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언어/진리가 아닌 춤·노래·무용(몸짓) 같은 비언어적인 수단과, 환상이나 꿈을 파고드는 제의적 방법을 통해 관객을 원시 시대의 제의에 접목시키고, 그런 신성함을 통해 삶이 정화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가오싱젠이 아르토로부터 받은 영향은, 세모의 꿈속에 출현한 야인이 세모를 인도하여, 춤추며 숲 속으로 사라지는 「야인」의 결말에서 볼 수 있다(202~204쪽).
그런데 가오싱젠이 서구 연극으로부터 받았다는 영향은 ‘수입’이 아니라 중국적인 것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한다. 재현보다는 암시, 모방보다는 표현이 앞서는 중국의 전통 연극은 아르토나 총체극(신성극·잔혹극)과 흡사한 점이 많으며, 앞서 거론했던 것처럼 「버스 정류장」의 연극 기법과 연기술은 원래가 서양 연극이 중국으로부터 빌려 간 것이었다.
『옥시덴탈리즘』에서 샤오메이 천은 손튼 와일러와 브레히트가 중국 연극으로부터 착안해서, 서양 연극을 개혁하고, 그것이 ‘서구의 현대극’이란 이름으로 중국에 재수입된 경위를 밝힌다. 가오싱젠이 “자신의 문화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은, 서양이 일찍이 매료되었던 그리고 창조적 오독을 ‘오독’을 통해 전유했던 ‘중국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뒷세대 작가인 가오싱젠의 경우에서, ‘원래는’ 자신의 문화인 외국 문화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느끼는 ‘뒤늦음’의 실례를 발견한다.”(181쪽)
여기서 우리는 ‘동양의 슬픔’을 목도한다. 동양은 스스로 자기 가치를 발견할 수 없으며, 동양은 항상 서양에 의해 발견된다는 것, 이게 ‘동양의 슬픔’이라면, 자신의 자산이 서구를 한번 경유해 들어오면서 ‘현대적인 것’으로 숭앙된다는 것은 ‘동양의 코미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