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무라카미 류의 『자살보다 Sex』(이룸, 2003)를 읽다. - 번역서의 제목이 자극적이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원제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무라카미 류의 연애와 여성론’이라는 부제는 출처를 알 수 없지만, 번역 판권란에 나온 원제는 번역 제목과 같은 ‘JISATSU YORY WA SEX'.
옮긴이는 이 책이 류가 24세부터 51세까지, 여러 잡지에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모로 보나 여기 실린 글들은 30대 이후에 쓴 글들이 주종이다. 이 책 말미에는 국내의 한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호사카 유지라는 낯선 필자가 쓴 해설이 붙어 있다. 주로 여성지나 주간지에 썼던 가벼운 ‘읽을거리’에 무슨 해설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책을 아주 잘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는데다가, 류의 작품을 읽는 안내글로도 적합하다.
헌책방에서 산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되고, 또 한국어로 번역된 해는 2003년이다. 일본은 거품 경제가 꺼진 1990년부터 매일 100명이 자살을 했고, 한 해의 자살자는 3만 명을 웃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자살보다 Sex』라는 제목은, 말초적이라기보다는 슬프다. “극단적인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자살하는 것보다는 미팅에 나가서 남자를 찾는 것이 낫고, 아이를 학대하는 것보다 전화방에서 남자를 찾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류는 여기저기 흩어진 글 속에서, 일본은 거품 경제의 몰락이 시작된 90년대보다 훨씬 더 이전인 1970년대부터 발전의 동력을 잃고 제자리걸음에 빠져들었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는 가치관의 변동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후만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회가 되었다. 그것이 터무니없는 이상 현상을 낳았지만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죽음과 위험에 대한 상상력이 없어지고 특히 남자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었다. (53쪽)
다만 지금 내 생각을 이루는 기본은 이렇다. ‘이미 오래전에 이 나라 일본의 근대화는 끝났다. 근대화라는 국가적인 목표가 달성되어 현재는 국가적인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117~118쪽)
필사적으로 일을 해도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다.
왜 칭찬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산업계에서 필사적으로 일을 해보아도 이제 국가적인 목표가 없어졌음을 누구나가 침묵 속에서도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241쪽)
원조교제에서부터 자살자의 증가에 이르기까지, 류가 진단하는 온갖 일본 문제의 원인과 해결은 간단하다. 서구 산업화를 뜻하는 일본식 근대화는 ‘국가/기업/공동체’의 결속과 안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국가 차원의 근대화가 완수된 데다가 더 이상의 경제 발전이 가능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일본인을 옥죄어 온 공동체는 오히려 국가와 개인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때문에 거품 경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일본은, 또다시 ‘국가/기업/공동체’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립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항상 류의 소설에서 ‘개인의 자립’과 ‘일본의 갱생’은 병렬적인 목표로 제시되곤 했다.
결국은 ‘세상을 위해서’든 ‘남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모두가 평행선을 이루는 거야. ‘세상을 위해서’라고 해서, 그 때문에 자신이 희생되는 일은 없다고 봐. (…) 자신을 위해서만 어떤 일을 했다고 해도, 사회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고.
류가 이토록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고 여기는 독자들에게, 이런 대목은 또 어떨까?
파리의 센 강가는 키스하는 젊은 남녀들로 가득하다.
센 강이니까 용납된다.
도쿄의 아라카와 강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무리 어리석고 바보 같은 젊은이라 해도 쾌락을 향해 상승해갈 가능성은 있다.
젊다는 건 이처럼 ‘센 강’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키스를 하거나 섹스 같은 행위를 무조건 참으라는 게 아니다.
그런 행위는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아파트 같은 데서 말끔히 끝내길 바라며, 사람들 앞에서 내보이고 싶다면 ‘센 강’을 목표로 삼는 것이 훨씬 더 능률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불꽃놀이 같은 행사를 제외하면 당연히 아라카와 강보다 센 강이 훨씬 근사하다.
그러한 진실에 모른 척 눈감지 않길 바란다. 그 비좁은 전철 한구석에서 혀를 빨고 있으니까 바보로 불리는 것이다. (303~3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