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최인호의 『타인의 방』(민음사, 1996, 오늘의 작가총서11)을 읽다. - 최인호에게는 단편 소설 「타인의 방」을 단편집의 제목으로 삼은 세 종류의 『타인의 방』이 있다. 그것들은 차례대로 예문관(1972), 민음사(1983), 문학동네(2002)에서 나왔다. 예문관판은 최인호의 첫 번째 책이고, 나머지 두 권은 단편선집이다. 나는 1970년대 말에 예문관판 『타인의 방』을 읽었으나, 기억에 없다. 대신 예문관판을 읽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또 다른 주제로, 긴 얘기를 할 수 있다(그러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오늘 읽은 민음사판은 1996년 출간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983년판의 개정판이다. 단편집 제목으로 중복사용 될 만큼, 「타인의 방」이 최인호의 작품 세계에서 차지하는 몫은 크다.
민음사판 『타인의 방』에는 10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어제 읽은 문학동네판과 겹치는 것은 「타인의 방」·「술꾼」·「미개인」·「영가靈歌」다. 이 선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두 편의 「황진이」 연작과 「무서운 복수複數」·「가면무도회」와 같은 중편이다.
어제와 오늘 사이 내가 읽었던 20편의 중·단편은, 작가가 쓴 많은 중·단편 가운데 적은 일부이다. 그래서 분류하는 게 무리이지만, 이왕 읽은 것만 가지고 작품 경향의 대강을 분류해 놓고 싶다. 20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한 덩어리로 묶을 수 있는 것은 ①윤리적 화자가 나서는 사회비판적 작품이다. 「미개인」·「가면무도회」·「뭘 잃은 게 없으십니까」·「다시 만날 때까지」가 여기 속한다. 윤리적 화자가 등장하는 사회비판적 작품을 제일 먼저 가려내게 된 것은, 이 경향의 작품들이 최인호의 본령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낯선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작품들 가운데 어느 것도, 최인호의 대표작이 되지 못한다.
②는 우화적이면서 원형적인 모티프를 추구한 「영가」와 「방생」 같은 작품이다. 두 작품은 우주의 순환이라는 우화적이고 원형적인 모티프를 뼈대로 하면서, 외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극히 사적인 기억이 녹아 있다. 「황진이」 연작과 「순례자」는 각기 전자와 후자의 특징이 강조된 것으로, 당연히 이 경향에 넣어야 한다.
③은 아이의 눈에 포착된 부조리 탐구.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 주인공인 「술꾼」·「모범동화」·「처세술개론」이 여기 속하는데, 이 작품들은 최인호의 악동소설Picaresque novel로 불리기도 한다. 이어지는 ④는 이 악동들이 청년으로 자라고 장년이 되어서의 이야기들이다. 「견습환자」·「2와 2분의 1」·「무너지지 않는 집」·「예행연습」·「침묵의 소리」·「무서운 복수」가 청년편編이라면, 「타인의 방」과 「사행」은 장년편이다. 이런 분류가 더 신빙하게 되려면, 더 많은 추가 독서가 필요하다.
최인호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흔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인 도시적 감수성’의 탄생이라거나, ‘전통 사회와 분리된, 완벽한 청년 문화’의 대두라는 평자들의 합의된 평가가 나와 있다. 그런데 이번에 두 권의 중·단편선집을 읽고서 내가 느낀 것은, ‘아버지의 부재’다. 20편의 작품 가운데서 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은 「처세술개론」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무능력자에 술주정꾼이다. 이외의 작품에서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아예 거론도 되지 않는다. 이렇듯 최인호를 한국문학사에 등재시킨 ‘도시적 감수성’과 ‘청년 문화’는 아버지 부재(살해) 위에서 건축된 것이다. 이런 특징은 여성을 과도하게 신성시하거나 악마화하는 이면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서사를 빈곤하게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미개인」에서 ‘문둥이 자식’들의 아버지가 끝내 등장하는 않는 것이 그렇다. 물론 최 선생이 사회적 약자인 그들 대신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상이용사인 최 선생이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 상징적이다.
「무서운 복수」에는 작가의 이름과 흡사한 최준호가 주인공이다. 작가의 분신인 그는 “황진이를 써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외면적인 이유는, 당시의 문화적 우세종이었던 민중문학에 대한 대항의식이다. 거기엔 “그야말로 탐미적”인 작품으로 시대정신을 거슬러 보겠다는 작가적 욕망이 충만하다. 그러나 내면적인 이유는 아버지 부재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이, 거기에 대한 일종의 석명서釋明書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두 편의 「황진이」 연작에서 김지하로 대표되는 70년대 지식인의 상징인 지족선사는 여성의 관능 앞에 파계하고(외면적 이유의 충족), 황진이는 인간만 아니라 죽음과 통정하는 대지모신으로 승격된다(내면적 이유의 충족). 작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잃어버린 왕국』류의 역사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에서 밑동까지 거세되었던 아버지 이야기를 보충해왔다. 하지만 그가 길을 내어 놓은 ‘아버지 부재’의 서사는 한국문학, 특히 젊은 작가들의 모범이 되고 원형이 됐다.
민음사판 『타인의 방』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중편 「가면무도회」다. 윤리적 화자가 나서는 사회비판적 요소를 갖고 있는 이 작품은 앞서 분류한 ①에 속하는 작품으로, 최인호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은 특종을 위해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가리지 않는 언론계의 치부를 보여주면서, 한국 언론의 황색화와 뉴스의 오락화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비판으로부터 그것을 소비하는 독자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작가가 이 소설을 썼던 1977년에, 이미 “요즈음 독자들은 춘천호에 버스가 굴렀다는 기사보다는 배우가 간통을 했다는 기사에 더 흥미가 있어 하였으며 스포츠와 일반 레저 기사에 관심이 있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작가는 한국 언론의 황색화와 뉴스의 오락화가 시작된 때를, 1971년 12월 25일에 있었던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의 텔레비전 생중계로 본다: “수년 전 일어났던 대연각 화재사건 이후에 고층빌딩의 화재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그때 크리스마스날 황금 프로를 제치고 마치 스포츠 중계나 하듯 텔레비전이다, 라디오다, 신문사다 모두 총동원되어 사람이 우수수 낙엽 지듯 떨어져 죽는 것을 본 뒤로는 지금 시민들은 황금 프로인 가수들의 노래라든가, 춤 따위보다는 현장감 있고 자극적인 것을 보기 좋아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21층짜리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을 생중계로 보았던 나는 지금도, 침대 매트리스를 안고 창문에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떨어지는 무수한 추락자를 생생하게 기억한다(163명의 사상자 가운데 38명이 그렇게 죽었다). 그것을 실시간으로 보았던 한국인 가운데, 그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광경이라고는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가해진 테러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다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을 떠올리게 될 때마다 드는 의문은, 어떻게 저 참혹한 현장이 아무런 여과 없이 몇 시간씩이나 생중계되었을까, 라는 것이다: “그것은 엄중히 몇 시간 동안 텔레비전 카메라를 들이댈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큰 사건이긴 하지만 저녁 뉴스에 상세히 보도해 주어야 할 것이지, 사람이 죽는 현장을 보여준다는 것은 대중의 맹목적인 사디즘 자학취미에 매스컴이 단순히 놀아난 결과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사형장을 중계한 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대연각 화재’를 검색하면, 그 사건을 보도한 극장판 ‘대한뉴스’를 볼 수 있다. 나만의 상상이지만, 그 보도의 마지막 대사는,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이 생중계될 수 있었던 정치적 맥락을 짐작게 해 준다: “한 건물에 있어서 이와 같은 불행한 화재가 일어나기 이전에 잘 대비하고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은, 더 크게 보면 나라의 일에도 비교됩니다. 적의 침공을 받아 우리의 도시가 불타기 전에 미리 대비하고 국가는 국방 태세를 갖춘다는 것, 이것은 언제나 우리들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의 박정희는, 해가 바뀌자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쇼’를 연출해야 했을 만큼 위기에 몰려 있었고, 대연각 화재가 벌어진 지 1년 후인 1972년 12월 27일, 10월유신을 선포했다. 대연각 화재도 사건이지만, 그것을 ‘생중계’ 한 것도 사건이다. 어떤 경로로 생중계가 결정되고, 그것이 가진 정치적 맥락과, 이후의 언론 관행과 변화에 대해서는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