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강용준의 『강용준 작품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0503)을 읽다. - 이 작품집에는 딱 두 편의 중편만 실려 있다. 앞에 실린 「철조망」은 1960년에 발표된 작가의 등단작으로, <사상계>가 공모했던 제1회 신인문학상 당선작이기도 하다. 또 뒤에 실린 「광인일기狂人日記」는 1970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발표된 뒤, 1972년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세계 10대 소설’로 선정되어 화제를 낳았다.
「철조망」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다가, 유엔군 포로가 되어 만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던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작가가 겪었을 압도적인 체험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자전기록이나 실화소설의 범주를 가뿐히 넘어서는데, 그 범주에 대한 설명을 조남현의 『한국 현대문학사상 탐구』(문학동네, 2001)의 일절로 대신하면 이렇다: “해방 이후 실존주의는 번역 해설 연구 등과 같은 여러 방식으로 활발하게 소개되었다. 1950년대에 실존주의가 적극적으로 수용된 원인의 하나로 전후 상황이 제시되는 것은 이제 상식이나 다름없다.”(61쪽)
인용문의 출처인 「실존주의 수용과 내면화 양상」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말 사이에 나온 실제 비평을 집중 분석한 것으로, 그 시기에 활약했던 거의 모든 시인·소설가들이 실존주의라는 자장 속에 분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는 뭇 작가들이 실존주의란 평가를 감투나 세례로 여겼고, 비평가들도 실존주의를 작품을 해석하는 만능열쇠로 알았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프랑스의 사르트르나 까뮈 같은 지하 항독작가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외적 저항이라고 하면서 청록파가 시 창작에 전념하는 태도를 내적 저항”(87쪽)이라고 미화하기도 했는데, 까닭은 이 논문의 결론이 강조하는바, “1960년대 전후 우리나라에서 실존주의는 앙가주망 문학으로 대치”(91쪽)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960년대 전후의 실존주의 논쟁은 실존주의을 둘러싼 철학적 논의나 문학적 정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냐, 순수냐?’라는 이분법적 논쟁의 예시적 성격이 짙었던 것이다.
어두운 현실, 실의의 인물, 패배감, 무력감, 피로, 실망, 자살, 허무의식, 방향도 의지도 없는 순간에 대한 집착, 타성적인 생활에 대한 절망감, 시대와 사회를 향한 불신과 부정, 반항… 이런 시늉만 나와도 마구잡이로 실존적 고뇌를 다룬 작가로 떠받들었던 시기에, 강용준만 제외된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다. 특히 다른 작품은 모르겠지만, 실존주의 논의가 한창일 때 발표된 「철조망」에 대한 홀대는 비평 지대의 수수께끼다. 평론가들이 거론하기 좋도록 “이제 신의 얘기는 집어치우자. 벌써 산 송장이 된 신”(90쪽)이라고, 귀띔까지 해주었는데도 말이다!
「철조망」은 반공 포로 결사대의 대장 민수가 포로수용소 안의 공산주의 포로 막사를 습격하러 갔다가, 도리어 공산주의 포로들에게 생포되어 고문을 받는 단순한 얘기다.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고문이 중편 소설의 주제가 되고, 또 그 과정이 고스란히 줄거리를 이루는 소설은 이 작품이 가장 앞설 것으로, 이 작품이 나온 훨씬 뒤에 임철우의 「붉은 방」이 나왔다.
반공 포로 결사대의 대장이라면, 대단한 이데올로기의 화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민수에게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대의에 헌신한다는 숭고한 생각도, 열렬한 반공 투사로서의 투철한 이념도 없었다. 그가 반공 포로대의 결사대가 되어 공산주의 포로들의 막사를 기습하기로 한 것은, 공산주의 포로들의 테러 앞에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기습에 실패하고 공산주의 포로들에게 생포된 민수는 ‘목적’과 ‘동조자’를 대라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한다: “불안했다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리고 할 얘기가 있다면 단지 지금은 피로해서 모두다 다 데데해 뵌다는 것뿐입니다. 애초에 목적 같은 건 없었습니다.”(55쪽)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세상에 ‘던져져 있는’ 자가 느끼는 불안의 감정은 실존주의자의 감각이지만, ‘불안해서’ 일을 저질렀다는 민수의 대답에는 약간의 부연이 필요하다. 월남한 부농 집안의 자식인데다가 9·28 수복 당시 치안대장을 했던 그는, 전력이 밝혀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되어 거름통의 거름이 될 처지였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강용준이 허락한 이념의 상한선이다. 고문을 당하는 민수는, 정의나 이념 따위란 인간 실존의 부수물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나는 정의를 위하여 피를 바쳤다. 시시한 얘깁니다. 결국은 종이 한 장의 차이지요. 오히려 그런 수작이 자기를 배반하는 수가 많습니다. 저두 가끔 스스로―본연의 자기를 벗어날 때는 주책없이도 그따위 망념에 빠지군 합니다만… 바루 그날[공산주의 포로 막사를 습격한 날]입니다. 뭐 큰일을 한다구 참 볼품없이 흥분하고 있었으니까요. 뭐 다 시시한 얘깁니다. 우리 솔직합시다. 얘기하겠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개죽음을 할 수는 없었다는 것뿐입니다.”(62~63쪽)
민수는 고문을 당하면서 자신의 실존을 파악하는 데 거추장스러운 언어·이념·신을 하나씩 내버린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고문당하는 동안, 외간 남자와 육체의 향연을 벌일 수도 있는 아내의 육체를 생각한다. 이념(신념)을 신문 받는 곳에서 여자의 육체를 생각하는 이런 실존주의적 기상wit은, 전후에 발표된 실존주의 문학의 전매특허다. 실존주의적 기상의 핵심이 바로 ‘이념보다 실존’이기 때문이다.
실존의 위기 앞에서 비로소 무엇인가를 선택하게 되는 민수처럼, ‘모범 전사’와 기영 역시 실존의 충격에 따라 행동하는 반反 이념형 인물들이다. 소위 반공 포로에 대해 아무런 증오도 갖고 있지 못했던 ‘모범 전사’는 철조망 밖을 구경하다가, 동란 때 헤어진 아내가 양공주가 되어 흑인 병사의 팔에 매달려 가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고 “반동을 열둘”이나 잡는 모범 전사가 됐다. 또 반공 포로 결사대의 일원으로 공산주의 포로들의 막사를 기습하기로 했던 기영은 거사 전날, 철조망 밖으로 지나가는 총 멘 헌병을 보고 갑자기 죽어가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고 공산주의 포로들에게 밀고를 결심하게 된다. 기영의 아버지는 9·28 수복 후, 치안대원의 거짓말로 헌병에게 즉결 처분됐었다.
이 작품집에 함께 실린 「광인일기」는 화랑무공훈장을 두 개씩이나 받은 혁혁한 전공자戰功者인 조순덕 대위와 그의 동료였던 ‘나(최대위)’의 제대 후 삶을 비교하면서, 군대와 사회가 억압적인 사회 구조의 양면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신이상으로 제대한 조대위는 결혼/이혼→간첩→정신병원행→자살이라는 행로를, ‘나’는 제대 후 미국 연수를 거쳐 결혼(젊은 아내와 두 아이)과 직장 생활(미국계 회사의 지배인)에 성공한다. 그러나 광인의 삶을 살았던 조대위나 ‘미국식 엔조이’를 터득한 ‘나’나, 푸코의 ‘규율 권력’(작가는 “도덕道德사디즘”이라고 명명)에 포섭된 똑같은 죄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