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이제하의 『풍경의 내부』(작가정신, 2000, 작가정신 소설향12)를 읽다. - 이 책은 출간됐을 무렵 읽은 게 분명한데, 어디에 독후감을 남겼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독후감을 새로 쓰는 게 신경 쓰인다. 예전의 독후감과 너무 다른 말을 하면 어떻게 되나? 그런 일이,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짓말쟁이 행각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똑같은 오솔길을 걸으며 새로운 감회를 표명하는 당연한 반응인가?
작가는 이 작품의 모티프가 서정주의 시 「신부新婦」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작가의 말’에 밝혀놓았다. 「신부」는 뭇 남성들의 신부 처녀성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성적 능력에 대한 불안을 담은 징후적인 시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일부종사하는 한국 여성의 정절을 웅변하는 작품으로 읽히고 있다. 서정주의 시에서 ‘기다리는 자/갇힌 자’가 여성인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기다리는 자/갇힌 자’가 남성으로 역전된다.
고시를 준비 중이던 주인공 ‘나’는 5년 전인 스무 살 중반 무렵 결혼했으나, 신혼 초야에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곧바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주인공은 서른한 살 때에, 야바위판의 바람잡이인 서례를 만나 동거에 들어간다. 이 작품은 주인공 ‘나’가 “스물여섯 살을 먹고, 방언 같은 소리들을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때로는 현자의 의젓한 표정이다가도 젓가락 하나 쥘 줄 몰라 번번이 손으로 반찬을 집고, 이상한 꿈을 곧잘 꾸고, 맨발을 좋아하던 한 가냘픈 여자와의 기억”을 되새긴 작품이다.
방금 인용된 서례에 관한 묘사는 이제하의 전형적인 여성 주인공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유자약전」의 유자가 그렇고, 『자매일기』(고려원, 1987, 고려원소설문고029)의 자매들이 그렇듯이, 이제하의 여자 주인공은 다들 어디서 ‘호되게 한 방 맞은’ 모습이다. 관계망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경력이 있는 서례는 초등학생과 같은 천진성으로 ‘나’의 고통을 간취하고, ‘나’를 껴안는다. 그 때문에 야바위꾼에게 롤렉스시계를 빼앗긴 ‘나’를 삐죽삐죽 따라왔던 것이다(야바위꾼 상환이는 서례가 정신병원에서 만났던 또 다른 환자. 그녀가 왜 그의 야바위질에 동참했는지는, 이제 누구라도 짐작이 갈 것이다).
‘나’의 자취방으로 옮겨올 때 서례의 짐은 간단했다. 아주 무거운 가방 하나. 그 속에는 네모반듯하고 길죽한 입방체의 검은 돌 하나가 들어 있었다. 서례가 “내 마스코트”라고 말한 오석烏石은 동강 난 비석으로, 거기엔 도중에 끊어진 “육군 소위 최陸軍 少尉 崔”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정신병원을 갓 퇴원한 여자가 동강 난 비석을 마스코트라며 들고 다닌다? 이제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독자들은 이런 초현실적인 이미지에, 어디서 호되게 한 방 맞은 것처럼, 어리둥절하게 된다.
주인공 ‘나’는 서례와 동거한 지 보름이 되도록 발기불능인 채, 제대로 된 성행위를 하지 못한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서례의 마스코트와 ‘나’의 임포텐츠Impotenz는 등가고 동질의 것이어야겠지만, 어디서 주워왔는지 알 수 없는 서례의 마스코트는, 상처 입은 것들에 대한 그녀의 포용력을 상징할 뿐, ‘육군 소위 최’는 그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 비석과 그 비석에 적힌 ‘육군 소위 최’를 무의식중에 서례와 관련짓는다. 이게 ‘나’를 음위陰?로 몰아넣는다(신부의 부정(?)을 알고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뒤부터 줄곧 음위 상태였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저 비석은 죽음의 상태(음위)에 빠진 ‘나’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무거운 비석을 지고 있는 것은, 서례가 아니라 ‘나’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그 짐을 ‘나’가 아닌, 서례가 대신 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치료는, 옛 환우를 만나러 가는 서례를 따라 정신병원을 갔을 때 이루어졌다. 그날 밤, ‘나’는 방구석에 놓여 있는 돌을 집 앞의 하천에 버리게 되고(“해방되라구…껍데기를 벗어버려…자신을 내던져…지금 그러지 못하면 너는 일생 불구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벗어 던지라니까…”), 서례와 온전히 몸을 섞게 되며, 5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서례에게 말하게 된다. 드디어 ‘나’는 자기 치료의 과정으로 신부의 가족들에게 사과하러 고향인 J시를 방문하게 된다. 고향에 내려가 장인에게 사과 전화를 하고(장인은 만나기를 주저했고), 혹시나 싶어 두 사람이 살게 되었을 신혼집을 방문했을 때, 담 너머로 재혼한 아내의 흐릿한 웃음소리를 듣게 된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나’는 불현듯 서정주의 시를 떠올리게 되고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방을 뛰쳐나가도록 환경과 조건이 그렇게 주어졌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의 결말은 「신부」 모티프의 역전이다. 하루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서례는 집에 없었다. ‘나’를 고향으로 보내놓고 안절부절못하던 서례를 개도수꾼 박 선생이 건드린 것이다. 내 생각에 서례는 박 선생마저 남성이라는 비석을 짐처럼 지고 있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았던 것일까? 이제 방 속에 갇혀 기다리는 사람은,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