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피에르 레비-수쌍의 『비밀의 심리학』(말글빛냄, 2007)을 읽다. - 서문을 뺀 이 책의 1장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한 가지 의문에서 출발했다. 오늘날 비밀이라는 단어는 왜 불길한 뉘앙스를 띠게 되었을까? 왜 비밀은 침묵과 같은 의미로 간주되며, 심지어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기능장애와 같은 의미로 여겨지게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떻게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말이나 정보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의생하게 되더라도 대중이나 가까운 사람, 혹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좀 길었지만, 애써 인용한 까닭은, 이 책이 위의 의문에 정확하게 반대되는 주장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인 지은이는 많은 동료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말문을 어린아이의 사례로부터 끌어온다. 갓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와 일체감을 누리기 때문에, 자아를 갖지 못한다. 어머니의 자아와 혼재된 아이의 이중적 자아가 분리되는 것은, 자신만의 비밀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이 사태는 아이의 자아에 젖을 먹여온 어머니를 놀라게 하는데, 부모는 처음으로 아이가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를 상실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린아이의 거짓말은 그의 성장과 연관된다. 전지전능하다고 믿어왔던 부모가 아이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때, 아이는 스스로 자부심을 품게 된다(많은 경우 부모는 아이의 거짓말에 일부러 속아 넘어가 준다). 이때부터 아이는 “자기 자신만의 생각을 찾아내고, 자신의 자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과 다른 내면을 가꾸고 있을 “타인 혹은 타인의 차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의 거짓말에 부모가 일부러 속아 넘어가 주는 것은 이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 강박적으로 ‘정직’을 강요하면서 한 치의 거짓말도 허용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이의 거짓말 혹은 아이가 가꾼 비밀은 거의 다 환상이나 상상의 산물이면서, 나름의 현실 변용 능력이다. 하므로 그것을 방해하고 낱낱이 고백하게 강제하면, 아이는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신념”을 일찌감치 거세하게 된다: “[그런 아이이게] 현실은 늘 있는 그대로 경험될 위험이 있다. 불가능하고, 견딜 수 없고, 쓸모없는 것으로 말이다. 때로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아이의 능력이 전혀 인정받지 못할 때, 아이는 현실에서 영원히 극복할 수 없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부모와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때부터 공격성은 파괴적이고 가해적인 현실의 폭력에 맞서기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더 이상 어떤 비밀도 감추고 있지 않은 현실은 어떤 환상도, 어떤 미래도 담고 있지 않다.”
거짓말이 아이에게 미치는 건전한 영향은, 부모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동화)의 필요성과 흡사하다. 거짓말은 아이 쪽에서 어른에게, 동화는 부모 쪽에서 아이에게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거짓말과 동화는 아이가 당면한 현실에 완충막 역할을 해준다. 그 완충막의 도움으로 “아이는 서서히 객관적인 현실을 알아가게 되고, 현실이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지은이는 아이에게 비밀을 빼앗으면 안 되는 극단적인 사례로, 근친상간을 꼽고 있다(4~5장). 흔히 비밀을 드러내는 과정을 재생과 연관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극단적인 사례 연구를 보면, 근친상간의 피해자에게 비밀을 토로하도록 강제된(인도된) 수사나 치료는, 아이의 내면을 파괴하여 다시는 자신의 내면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분야의 관계자들이 읽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비밀의 심리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는 이상의 시구를 빌려 와야 한다. 우연히도 이 책에는 어제 읽은 『불륜, 오리발 그리고 니체』에 언급되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나온다. 지은이는 나흘간의 불륜을 평생토록 숨긴 프란체스카에 대해, 그녀의 행동은 자아분열이나 병적인 이중성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보호하여 더욱 풍요롭고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옹호한다. 또 자신의 비밀을 무덤으로 가져가지 않고 아이들에게 공개한 것은,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의 비밀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부연한다. 여기에 내 말을 덧붙이자면, 불륜은 숨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과, 햇볕 속에 드러내고 싶은 욕망의 시소게임이다. 프란체스카는 살아생전 전자의 상황에 충실했고, 눈을 감으면서 후자의 욕망을 만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