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루이스 세풀베다의 『감상적인 킬러의 고백』(열린책들, 2001)을 읽다. - 헌책방에 가면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을 늘 만날 수 있다. 그만큼 많이 팔렸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 읽은 『감상적인 킬러의 고백』도 그만큼 한국인들이 좋아했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감상적인 킬러의 고백』 속에는 표제작과 「악어」라는 제목의 또 다른 중편이 실려 있다. 두 작품 모두, 언젠가 읽었던 같은 작가의 『핫 라인』처럼, 필름 누아르film noir나 하드 보일드 소설hard-boiled fiction의 장르적 관습을 이용해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예컨대 「감상적인 킬러의 고백」에 나오는 멕시코 마약상은, 너무 싼값으로 미국의 마약 시장을 어지럽히는 이유를 이렇게 강변한다: “이유가 뭐냐고? 난 그놈들을 증오하니까… 그놈들은 마약을 원하고 있어… 그래서 주는 거지… 그것도 거의 공짜 가격으로… 그놈들은 죄다 속이 썩어 문드러져야 해… 그것만이 우리 라틴아메리카가 그놈들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대안이니까.”
한편 「악어」는, 유럽의 피혁업자들이 악어가죽을 쉽게 얻기 위해 아마존 유역의 아나레 족 인디오를 몰살시키고, 거기서 살아남은 두 생존자가 바르셀로나와 밀라노에서 유럽의 피혁업자들을 살해하는 이야기다.
두 소설의 비현실적인 환상성은 자세한 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의 마약 산업은 미국을 망하게 하기보다, 라틴아메리카를 거대한 마약 생산지로 만들면서 거대한 ‘조폭 사회’로 만들었다. 또 문명사회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두 인디오가 독화살로 무장하고 복수하러 나서는 이야기는, 만화에 가깝다.
뛰어난 이야기꾼인 세풀베다가 이런 비현실적인 환상성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날의 세계가 ‘지구촌’으로 대변되지만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비문명 지역이나 저개발 지역을 배제하는 지구촌이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며, 그것은 단지 정보통신을 장악하고 소유한 국가나 개인 또는 그것이 관심을 가진 자들만을 위한 거짓 구호라고 질타”해 온 그로서는, 소위 라틴아메리카의 대중소설 장르인 ‘흑색 소설’이 대중에게 접근하는 당의정과 같은 역할을 한다.
1990년에 미국과 유럽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했다는 흑색 소설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나 범죄물과 매우 흡사하다. 이 장르는 “범죄, 갱, 섹스, 폭력, 마약 등을 소재”로 삼으며 “사회 질서나 규범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덕적인 의식조차 없는 범죄자들을 통해 그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여과 없이 투영”한다.
「감상적인 킬러의 고백」과 「악어」가 스페인의 유력 일간지에 인기리에 연재됐다는 사실은, 흑색 소설이 철저히 대중적인 장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두 작품에서 폭로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은, 소외된 자들의 억압된 목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작가가 흑색 소설의 대중성을 전략적으로 차용한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해 준다. 그래서 역자는 여기 실린 두 중편을 라틴아메리카 스타일의 흑색 소설로 분류하기보다 “리얼리즘 계열의 폭로 소설로 보는 게 더욱 타당할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남성과 관능적인 요부가 나오는 세풀베다의 두 중편은, 남자와 여자의 성역할 경계가 뚜렷하다. 이런 특징은 ‘흑색 소설’로 분류되는 두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 세풀베다의 전형성이다. 이런 전형성 역시 정치적 전언을 포장하기 위한 대중적인 당의정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라틴문화의 특징인 남성 우월주의machoism의 자연스러운 표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