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조지 마이어슨의 『하이데거, 하버마스, 그리고 이동전화』(이제이북스, 2003, ICON BOOKS 202)를 읽다. - 이동전화Mobile Phone는 무제한적이고 즉각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뜻에서, 유토피아의 도래를 가져오는 듯하다. 유사 이래 말은 항상 권력자의 것이었으며,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가격이 낮아지기 전에는 전화기가 신분의 상징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권위주의 국가나 언론이 탄압받는 나라에서, 동영상 기능까지 탑재된 이동전화는 인터넷과 함께 전자민주주의의 총아가 되었다: “이 새로운 전화는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가! 이동전화는 한순간에는 새로운 경제의 상징이었다가 바로 다음 순간에는 새로운 혁명의 표상이 되었다.”
하지만 『도너 해러웨이의 유전자 변형 식품』을 통해 순수한 자연이란 없다면서 유전자 변형 식품을 옹호하고, 『생태학과 포스트모더니티의 종말』에서는 생태학을 ‘전체주의적 서사’로 규정했던 조지 마이어슨은 다르게 말한다. 이동전화의 사용으로 생긴 ‘이동전화화Mobilisation 현상’이 전통적인 대화와 말의 용법을 파괴함으로써 의사소통 자체를 변형하고,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했으며, 나아가 인간 존재를 침탈했다는 것이다. 제목에 나온 것처럼, 지은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이데거와 하버마스의 도움을 받았다.
하이데거에게 대화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기 보다,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과의 공감대 형성과 이해가 관건이다. 상호 “공존” 경험을 표현하는 인간의 근본적 활동으로 “이야기하기”를 꼽았던 하이데거에게는, 개인이 ‘의사소통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없었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대화는 ①‘나’를 표현하지 않는다. ②의미를 찾는 목적을 가진다. ③이해를 공유하는 목적을 가진다. ④‘세계-내-존재’를 표현한다(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한다)로 요약된다.
한편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진정한 의사소통의 핵심을 “이해”라고 말한다. 하이데거의 이상적 의사소통과 일치하는 점이 많은 하버마스는, 나의 욕망을 즉각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한 말이나 토론의 가능성이 거세된 말은 신호와 신호가 오가는 “신호의 대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대화는 ①자기의 목적과 이익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②성공의 ‘전략’을 궁리하는 게 아니다. ③언어와 다른 의사소통수단을 통해 이해를 공유하는 데 도달하는 것이다. ④비판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며 자신의 신념, 결정, 행위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로 요약되며, 이와 같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반대편에, 성공적인 자기 이익이나 목표의 효과적인 추구와 연관된 ‘도구적 합리성’이 자리한다.
지은이의 이동전화 비판은, 하이데거와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의 이상적인 조건으로 들었던 여러 사항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동전화화된 의사소통의 근본 원칙은 “궁극적으로 혼자만의 행위”이며 이동전화는 “각자의 욕망을 개별적으로 추구”하는 체계라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들의 일상세계가 이동전화와 같이, 욕구 충족을 위한 “체계”에 의해서만 지탱될 때, “우리의 삶은 점점 인간적 의미를 지니지 않은 유형들을 따르게” 되고 “경험의 의미를 공유하지 못한 채 임무를 수행하고, 각자 홀로 살게 될 것이다.”
이동전화라는 독자적인 영역은 돈과 권력에 흡수되어갈 공산이 크다. 기업의 판촉과 서비스가 이동전화로 집중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경제적 의미를 갖지 않거나 경제적 의미와 유사하지 않은 의사소통의 공간”은 점점 좁아져서 “더 이상 상거래라는 개념과 구분되는 의사소통 개념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뿐 아니라, “이동전화 모델(이동전화화)에 근거해, 시민들에게 정책을 일방적으로 알리는 국가는 비판과 새로운 합의를 위한 열린 공간을 유지해 온 국가들과는 매우 다른 선거를 치를 것이다. 선거전은 점점 ‘정보’를 ‘겨냥’할 것으로 보인다. 즉 우리는 의사소통 방식의 정치 생활이라는 이상을 접고 ‘이동전화 정치M-politics'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기술결정론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철학이 오랫동안 발전시켜온 전통적인 의사소통 형식을 이동전화가 일거에 파괴해 버렸다는 식으로 읽게 된다. 하지만 ‘이동전화’가 아니라 ‘이동전화화’라는 조심스러운 개념이 제시하듯이, 이동전화화는 “기술적인 과정이 아니라 문화적인 과정”이다. 예컨대 이동전화화란 인간이나 의사소통이 이동전화기에 종속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지식을 얻는 방법, 가치를 분류하는 방법 등, 후기 자본주의 생활양식의 전반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지은이는 의사소통 방식이 바뀌면 인간 존재도 따라 바뀐다면서, 이동전화 기술이 진화 중이듯, 미래는 하이데거와 하버마스가 공을 들인 “진정한 의사소통 철학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