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나카지마 아쓰시·유아사 가쓰에의 『식민지 조선의 풍경』(고려대학교출판부, 2007, 일본명작총서03)을 읽다. - 일제 강점기가 ‘강점기强占期’만이 아니라 자발적인 ‘협력기協力期’였다고 주장하는, 좀 보기 안 된 치들이 있다. 목숨을 부지하고 번식에 애쓰는 것은, 모든 생물의 목표다. 하므로 그치들 논리대로, 협력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게 어찌 자율적이기만 했을까?
혹세무민하는 그치들의 말이 맞다면, 일제 협력기에 나온 소설 가운데 자발적인 협력의 진풍경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읽었던 염상섭과 채만식의 두 단편집에서, 그런 진풍경은 보지 못했다. 다만 나는 거기서 강점기를 사는 식민지 주민들의 곤궁과 실업失業을 보았을 뿐으로, 그것은 일제의 탄압과 차별에 기인하는 거였다. 그런 강제와 정책을 계산하지 않고 자발적 협력만 이야기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식민지 조선의 풍경』에는 일제 강점기와 연관을 맺었던 세 사람의 일본 소설가가, 강점기의 조선을 무대로 쓴 4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세 사람의 작가 가운데 나카지마 아쓰시·유아사 가쓰에는 각기 1909년과 1910년생으로, 교사와 경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조선에서 자랐으며, 경성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급생이다. 편역자에 따르면, 출신 배경과 성장 내력은 비슷하지만, 조선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은 매우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단 1편의 작품만 실린 유아사 가쓰에의 경우, 분명한 시각을 알기가 어렵다.
먼저 「호랑이 사냥」과 「순사가 있는 풍경」을 쓴 나카지마 아쓰시는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병탄 논리 가운데 하나인 일조동근一祖同根·내선일체內鮮一體 논리가 허구라는 것을 간파한다. 「호랑이 사냥」의 ‘나’는 용산소학교와 경성중학교에 다닐 때, 구한말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조대환을 친구로 사귀게 된다. 조는 조숙하고 명민했던 만큼, 내지인과 반도인의 차별에 대해서도 민감했다. 그는 전학년의 학생들이 야외로 군사 훈련을 가서 야영을 하던 날 밤, 건방진 태도를 꼬투리 잡은 일본인 상급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다. 조는 그를 위로하러 온 ‘나’에게 대성통곡을 하며 묻는다: “도대체 뭘까. 강하다든가, 약하다든가, 하는 것은.”
‘나’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으나, 곧 조가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 수면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때, 문득 그가 아까 했던 말을 생각하며, 그 숨은 뜻을 발견한 것 같아 깜짝 놀랐다. ‘강하다든가 약하다든가 하는 게 도대체 뭘까’라는 조의 말을, 그때, 갑자기 알아차린 것이다. - 단순히 현재 그라는 한 개인에 대한 감개만은 아니지 않을까, 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호랑이 사냥」은 그렇게 길지 않은 단편이지만, 내용이나 구성이 조밀한 편이다. 앞서 나온 ‘나’와 조의 중학교 생활이 첫 번째 일화라면, 조의 제안에 따라 조의 아버지가 매년 겨울에 떠나는 호랑이 사냥에 동행하게 된 게 두 번째 일화다. ‘나’는 호랑이 사냥이라는 모험의 맨 앞에 가로막힌 가장 큰 장애물이 “늘 일선융화日鮮融和”를 입에 담는 아버지일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시집간 사촌누이의 집에 놀러 간다고 집을 나온다. 이 사냥 현장에서 조는 호랑이를 보고 기절한 몰이꾼을 거칠게 발로 찬다. ‘나’는 그 모습에서, 조선 호족의 기개(?) 같은 것을 보게 된다.
시간상으로는 호랑이 사냥이 야외 군사 훈련보다 앞서므로, 조가 내지인 출신의 상급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대성통곡하는 일이 ‘나’에게 더 인상 깊게 느껴진다. 바로 이 대목에서 조는 사냥을 당한 ‘호랑이’다. 조는 그 사건 직후 학교에서 자취를 감춘다. ‘나’는 조의 집을 방문하는데, “중국 쪽에 잠시 갔다”는 불명확한 대답만 할 뿐, 그의 부친도 아들의 정확한 행방을 모른다. 자연히 세 번째 일화는, 조와 다시 만나게 된 후일담이다. ‘나’는 동경대학교 앞의 헌책방가를 헤매고 다니다가, 낭인이나 마찬가지 행색의 조를 15,6년 만에 만난다. 이 독후감에서는 생략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이중언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약점을 통찰하고 있다. 관심 있는 독자의 일독을 권한다.
같은 작가의 「순사가 있는 풍경」은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이 허울이라는 것을 다시금 문제 삼는다. 제목이 드러내 주는 것처럼 이 작품은, 조선인 순사 조교영의 내면에 비친 식민지의 풍경이 의식의 흐름처럼 펼쳐지는 작품이다. 주인공 조교영은 4,5일 전에 있었던 휘문고등학교 학생과 K중학교 학생들 간의 패싸움 처리를 놓고, 일본인 과장과 언쟁을 벌였다(작중에는 자세하지 않지만, 휘문고등학교는 조선인 중심의 학교고 K중학교는 작가가 다녔던 일본인 중심의 경성중학교인 듯하다). 그 일로 파면된 조교영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갈보집’을 찾는다.
그는 거기서 김동연이라는 어린 매춘부가 사창굴에 들어오게 된 사연을 듣는다(직접 들은 게 아니라, 얇은 벽 너머로 들었던 것). 그녀는 동경으로 돈을 벌러 간 남편이 진재(震災,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관동대지진) 때 죽은 것만 알고 있지, 공포에 질린 일본인들이 6천 명이 넘는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던 사실을 모른다. 그러는 그녀에게 남자 손님이 사실을 얘기해 준다.
“야, 그럼, 넌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어? 뭐를.”
“너의 남편은 아마… 불쌍하게.”
(…)
몇 시간 뒤, 겨우 날이 샌 회색 보도를 동연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 질렀다.
“여러분 알고 있어요? 지진 때 일을.”
그녀는 큰소리로 어젯밤에 들은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들려주었다. 그녀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눈은 핏발이 서 있고 게다가 이 추위에 잠옷 바람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어이없어 오히려 그녀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놈들이 다 같이 이 사실을 숨기고 있는 거야. 정말로 놈들은.”
마침내 순사가 와서 그녀를 잡았다.
“야, 조용히 하지 못해. 조용히.”
그녀는 그 순사에게 달려들더니, 갑자기 슬픔이 북받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외쳤다.
“뭐야, 너도 같은 조선인인 주제에. 너도 나도…”
1942년,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병사한 나이로 나카지마 아쓰시의 두 작품은, 일본인의 눈에조차 뚜렷하게 감지되었던 일제의 탄압과 차별 정책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반면 유아사 가쓰에의 「망향」은 조선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식민주의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잡화점을 벌인 두 일본인 친구가 경쟁자가 되면서, 이십 년 전에 했던 어린 아들과 딸의 혼사 약속을 깬다. 고스케는 내지에 가서 일본 신부를 구해온 이나바야를 ‘비국민’이라고 생각한다. 까닭은 조선 땅에 정착한 일본인이 조선 땅의 일본인과 결혼하지 않고, 내지에 들어가 신부를 구하려는 심리는 보험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내지에 별장을 세우는 심리라든지, 자칫 잘못해서 망하게 되면, 내지와의 인연이 발붙일 곳이 된다는.”
고스케는 자신의 딸을 두고 내지에서 신붓감을 구해온 이나바야를 괘씸하게 여기면서, 문득 오래전에 죽은 아내의 유골을 아직도 땅에 묻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한다: “고스케는 문득 이토에의 유골을 아직 절에 맡긴 채인 것을 떠올렸다. 언제 이 땅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묘지를 만드는 일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 녀석도 여기에다가 확실히 묻어 줘야지.” 「망향」의 이런 결말은 유아사 가쓰에가 한번도 조선인의 입장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고심하거나 대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김 장군」은 『임진록』·『평양지』·『연려실기술』 등에 실린 김응서 장군에 대한 기록과 구비설화를 이용한 작품이다. 김응서 장군에 관한 전설을 고스란히 가져다 쓴 이 작품에서 아쿠타가와는 역사 상대주의를 피력하고 있는데, 이 작품이 발표된 1924년의 시점에서 보면 굉장히 선진적이며, 일제의 식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다.
사족이다. 이 책 81쪽에, 내지인이 반도인을 향해 “닥쳐, 여보인 주제에”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 다른 책에서는 ‘요보’라고 쓰는데, 요보는 일본인이 한국인을 낮춰 부르던 말이다. ‘여보’는 80쪽에도 몇 차례나 나오는데, 따로 설명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