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염상섭(1897~1963)과 채만식(1902~50)은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자라고 고평되는 작가지만, 지금까지 내가 읽은 두 사람의 작품은 그들의 몇몇 대표작에 국한된다. 염상섭의 경우 장편 『삼대』, 중편 「만세전」,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전부다. 여기에 빛바랜 추억 하나를 덧보탠다면, 1987년 12권짜리 염상섭 전집이 민음사에서 나왔을 때, 거금을 들여 그 전집을 샀다는 것. 같은 해에 나의 첫 책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던 때문에, 감사의 마음이 발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전집 속에서는 단 한 작품도 염상섭을 새로 읽은 게 없고, 장장 13년을 책장에서 먼지만 먹고 있다가 헌책방으로 실려 갔다.
채만식은 장편 『탁류』·『태평천하』,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을 읽은 게 전부다. 특별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누군가로부터 ‘채만식 희곡도 모르느냐?’는, 나로서는 꽤 듣기 싫은 핀잔을 듣고 그의 희곡을 모두 읽은 것. 그때 내가 읽었던 것은, 1989년 창작과비평사에서 10권짜리로 간행했던 채만식 전집 가운데 희곡과 에세이를 모아 놓은 제9권이다.
나는 문학에 입문할 때부터, 외국문학 광이었다. 그래서 소위 대표작이라고 이름난 작품이 아니고서는 우리나라 작품에 눈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포부가 없었던 터여서 더더욱 한국 소설의 형성기나 전통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문학사에 대한 이런 무관심이 나만의 특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국의 문학사를 익히지 않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건 병폐다. 문학사를 소상하게 알면 미처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빈틈을 볼 수 있고, 패러디를 해도 크게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문학 지망생들에게 한번쯤이라도 세계 문학사나 한국 문학사를 읽어 보라고 권하고 있다.
염상섭의 첫 작품은 1921년 <개벽>에 발표한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그의 나이 25세적 일이다. 염상섭과 다섯 살 아래였던 채만식은 22세 때이던 1924년, 「세 길로」라는 단편을 <조선문단>에 발표하면서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채만식의 등단작 「세 길로」는 여러 편자들이 내놓은 그의 대표작 선집에서도 누락되고 있는 만큼, 자신의 등단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등재시킨 염상섭의 행운에 미치지 못한다. 염상섭이 25세에 쓴 등단작과 맞먹는 채만식의 대표 단편은 32세 때에서야 쓴 「레디메이드 인생」인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훨씬 신선하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쓴 염상섭은 28세에 내처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또 다른 중편 「만세전」을 썼는데, 채만식은 32세에 이르러 좀 어수룩한 장편 『인형의 집을 나와서』를 썼다. 이런 걸 보면, 염상섭이 채만식보다 한 수 높아 보이지만, 35세에 이르러서는 두 사람의 필력이 엇비슷해진다. 염상섭은 그의 대표 장편이 될 『삼대』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채만식 또한 그의 두 대표 장편인 『탁류』와 『태평천하』를 동시에 쓰는 괴력을 발휘했다.
전기나 평전을 미처 읽어보지 못한 채, 이런저런 작품집 말미에 실려 있는 두 사람의 약력과 해설을 종합해 보면, 염상섭과 채만식은 매우 다른 환경에서 작가 생활을 했다. 먼저 서울에서 태어난 염상섭은 15~23세까지 일본 유학을 했던 만큼, 재력이 없지 않았다. 또 그는 귀국했던 1920부터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여러 언론사에서 안정된 밥벌이를 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일본 문단 진출까지 호기롭게 꾀할 수 있었다. 반면 전라북도 옥구에서 몰락한 소지주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채만식은 염상섭처럼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1년 남짓밖에 버티지 못했던 일본 유학도 그런 사정 때문임이 분명하지만, 귀국했던 1923년 이래로 채만식은 짧은 교직과 기자 노릇을 했을 뿐, 죽기까지 실업失業이 강요한 전업작가 생활을 해야 했다.
두 사람의 작품을 통독하기 위해 우선 고른 책은 염상섭 단편집 『두 파산』(문학과지성사, 2006, 한국문학전집22)과 채만식 단편집 『레디메이드 인생』(문학과지성사, 2004, 한국문학전집4). 해설이나 연보를 모아 보면, 염상섭은 160여 편의 중·단편을 썼고 채만식도 80여 편에 가까운 중·단편을 썼다. 그래서 두 책에 실린 18편의 단편으로 그들의 세계를 온전히 거론하기란 힘들다. 그럼에도 염상섭·채만식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주인공들의 눈물에 대해서는 특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먼저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주인공 ‘나’는 “까닭 없이 울고 싶은 증”을 간신히 참았고, 「숙박기」의 주인공 창길 역시 “쓸쓸하고 설운 증이 부쩍 목 밑까지 치받치는 것”을 용케 참았지만, 「암야」의 주인공인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괴였고, 「윤전기」의 주인공 A도 “감격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또 「해방의 아들」에서 작가의 분신으로 나오는 홍규는 담배를 구하지 못해 “온종일 끙끙 앓으시다가 약주를 잡숫고 나시더니 남부끄러운 줄두 모르고 엉엉” 울었으며, 거기 나오는 준식(하야시)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뚝뚝” 돋았다.
다음은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 “눈에 눈물은 고였”고, 「민족의 죄인」에서 작가의 분신이었던 ‘나’도 아내 앞에서 “울면서” 자기변명을 했다. 또 「쑥국새」의 주인공인 미럭쇠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글썽”했으며, 오로지 「낙조」의 주인공만이 “울기조차도 못하여 등신처럼 망연”해 했다.
두 작가의 작품에서 분루를 흘리는 사람들은 거개가 지식인 남성들이며, 그들의 눈물은 대체로 일제 강점기의 억압이나 상실과 연관된다. 하지만 똑같은 남성들이라도 지식인 범주에 들지 않는 「두 파산」·「절곡」·「얼룩진 시대의 풍경」(이상 염상섭)·「논 이야기」(채만식)의 주인공들은 의뭉스러운 웃음으로 현실의 비극에 맞서거나 적응한다. 그리고 남성 지식인들이 보이는 나약한 분루의 대척에 ‘나이롱’보다 질긴 여성들의 활력이 있다. 「제야」·「양과자갑」·「두 파산」·「절곡」·「얼룩진 시대의 풍경」(이상 염상섭)·「치숙」·「낙조」(이상 채만식)가 그 예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등단 시기나 작품 활동 시기가 비슷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작품 가운데는 짝패라고 여겨도 무방한 작품이 많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해방의 아들」·「양과자갑」·「두 파산」은 각기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민족의 죄인」·「미스터 방」·「낙조」와 조응하거나 보충 관계에 놓인 작품이다. 「해방의 아들」과 「민족의 죄인」은 서로 뒤바꿀 수 없지만, 나머지 세 작품은 상대방의 작품집에 섞어 놓아도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위에 열거한 작품들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은 식민지 지식인의 무력증, 전근대적 결혼제도의 폐습, 가부장제의 퇴조와 여권의 부상, 기회주의적인 세태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폭넓게 공유했다. 두 사람을 달리 보이게 만드는 유일한 주제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각자의 석명이 담긴 염상섭의 「해방의 아들」과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 내 짧은 소견으로는 일제 협력에 관한 한, 만성적인 실업에 처해있었을 뿐 아니라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심취했던 채만식보다, 일제 강점기 내내 언론인 직분에 충실했던 염상섭에게 더 많은 허물이 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두 작품을 보면 그런 선입견과 달리, 염상섭의 떳떳한 애국계몽주의와 채만식의 자학적인 반성이 크게 비교된다.
염상섭의 작중 화자임이 분명한 「해방의 아들」의 주인공 홍규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 흉내를 내며 살았던 준식에게 태극기를 선물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 출발의 첫걸음을 떼어놓”기를 설교를 한다. 반면 채만식의 분신인 「민족의 죄인」의 주인공 ‘나’는 동맹 휴학을 하는 학우의 대열에서 저 혼자 빠져나온 조카에게 훈계하면서 “쑥스”러움을 느낀다. 두 작품이 염상섭과 채만식의 수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염과 채의 당당함과 쑥스러움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 못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