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무라카미 류의 『미소 수프』(동방미디어, 1998)를 읽다. - 류의 소설은 읽고 나서 쓸 독후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가장 최근의 경험으로는 『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이가서, 2003)가 그랬다. 이번에 읽은 『미소 수프』도 딱히 할 말이 없기로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내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다면, 소설보다는 ‘작가의 말’과 연관해서다. 류는 작품 후기에 문학의 사명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문학이란 “말을 잃고 허덕이는 사람들의 외침과 속삭임을 번역”하는 것이며, 역사·이념·사상·종교·공동체가 붕괴한 상황에서 “뭔가 오물처리 같은 일을 혼자서 떠”맡고 있는 것 역시 문학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류가 말하는 그런 문학에 충실한 것일까?
주인공 겐지는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으로, 대학 재수를 포기한 채 어머니 몰래 도쿄에서 여고생과 동거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직업은 섹스를 목적으로 카바레·성감 마사지 업소·SM 바·소프 랜드·핍 쇼를 찾는 외국인을 각종 섹스 숍이 몰려 있는 가부초키로 안내하는 일로, 그의 꿈은 돈을 모아 미국에 가는 것이다. 소설은 겐지가 가부초키 근처에서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있는 12월 29일 정오부터 시작한다. 프랭크라는 미국인이 그에게 12월 29~30일, 이틀간 관광안내를 부탁한 것이다.
이틀간 계약을 맺은 프랭크는 인조인간처럼 감정이 없어 보이는데도, 자신의 감정에 굉장히 예민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를 무시한다거나 조롱한다고 생각되면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다. 뿐 아니라 겐지가 초면에 파악한 그의 특징은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라는 것. 겐지는 프랭크와 함께 지낸 하루 만에 그가 가부초키 여고생 토막살해를 저지른 범인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되고, 이튿날은 한 바에서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남녀 종업원과 손님을 간단히 살해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겐지는 프랭크의 범행을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서 달아나지도 못한다.
프랭크는 일곱 살 때, 두 명의 어른을 죽이고 열두 살 때는 세 명의 노인을 연달아 죽였다는데, 실제로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사람을 상습적으로 죽이게 된 이유는 “마치 갓난아기가 우유를 먹는 것처럼”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것뿐. 겐지가 프랭크의 설명을 납득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자신도 늘 미아(고아)처럼 느꼈다는 것과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을 미아로 만든 세계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262~266쪽에 나오는 ‘고양이 실험’은 두 사람을 친구로 맺어주는 굳건한 끈이다).
세계로부터 버려졌다는 기아棄兒 체험과,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응전으로서의 세계 살해 욕구는 정당한 것일까? 프랭크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에 나오는 트래비스를 연상시키는데, 류는 거기다가 코헨 형제의 <바톤 핑크>에 등장하는 찰리의 괴력을 더하였다. 트래비스나 찰리는 세상에 대한 불만과 욕구를 ‘방향 없는 분노’로 표출한다. 그들의 폭력은 세상의 모순을 드러내지도, 바로 잡지도 못한다. 오히려 그들의 폭력이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공허와 무기력이다. 이런 뜻에서 프랭크의 상습적인 살인이나, 거기에 동조하는 겐지는 류의 말처럼 “말을 잃고 허덕”이는 “오물”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류다. 프랭크가 일본엔 온 이유는,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그런데 과연 108번의 종소리가 ‘나쁜 본능’을 깨끗이 없애 줄 수 있을까? 나의 번뇌를 의타적인 수단으로 없앨 수 있다는 이런 순진함은 프랭크를 더욱 도착적인 주체로 만들기 십상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따위로 붕괴된 공동체가 건사될 리 없는 것이다.
『미소 수프』의 또 다른 주제는, 류가 자신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조명하고 있는 ‘미국의 볼모로서의 일본’이다. 주인공 겐지가 그랬듯이, 이 작품에 나오는 몇몇 일본인의 최종 희망은 미국이며, 그들을 키운 문화도 미국이다. 프랭크가 연쇄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겐지가 그의 손아귀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것은, 201쪽에 설명된 것처럼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 탓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가 경제와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의 의존성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