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8일
태혜숙의 『다인종 다문화 시대의 미국 문화 읽기』를 읽다
『다인종 다문화 시대의 미국 문화 읽기』(이후, 2009)는 미국 안의 대표적 에스닉ethnic 집단인 인디언·흑인·치카노(멕시코계)·아시아계를 중심으로 미국의 역사·문학·영화·대중음악을 분석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분석의 잣대로 삼고 있는 것은 ‘비판적인 다인종 다문화 관점’이다. 이것은 다양성과 이질성을 평등하게 인정하는 자세를 취하는 ‘다문화’ 관점과 상당히 다르다. 인종의 다원성과 이질성을 인정하는 것에 그치는 다문화 담론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정치적 올바름’의 태도 아래, 자유민주주의와 개인주의의 승리를 선언하고 시장의 완벽성을 과시한다. 반면 비판적인 다인종 다문화 관점은 다문화주의 담론에 의해 순치된 다인종 사회 속의 차별과 지배 전략을 드러내고자 한다.
대중음악에 약 100여 쪽의 분량을 할애한 지은이는 “음악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형성한다. 음악은 문화와 정치가 고찰되고 판단되는 맥락을 수립한다. 사회의 형식과 관심이 음악에 각인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런 끝에, 대중음악에는 “성적·인종적·계급적 정체성,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국가의 저항 정치, 지구화의 효과”가 어쩔 수 없이 스미게 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바, 음악사회학적 사고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새삼스럽지 않은 결론이다.
20세기 서양 음악의 중요한 특징은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는 것인데, 여기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미국 대중음악이다. 미국 대중음악의 특징은 19세기 유럽 예술 음악·영국·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 각국에서 유래된 민요적 요소, 아프리카 흑인 음악, 아메리카 인디언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의 민속 음악 등이 융합된 점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강력하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흑인 음악이다. 때문에 아놀드 쇼는 『미국의 흑인 대중음악』의 서문에 “20세기 미국 대중음악은 19세기 미국 대중음악, 또 그전의 미국 음악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근원에는 흑인 음악이 도도하게 자리 잡고 있다”라고 썼으며, 태혜숙도 따라서 “미국 대중음악사 자체가 새로운 시대의 추세를 따르는 백인 음악가와 청중들이 흑인 문화의 스타일과 가치들을 재발견하여 대중음악을 원기 왕성하고 풍성하게 만들었던 역사적 변천의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대중음악을 18세기부터 20세기 말에 이르는 3백 년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폭넓게 본다면, 흑인 음악은 미국 대중음악의 원천이자 거대한 맥이다”라고 쓴다.
미국 흑인 음악의 출발점은 17세기 말, 미국 남부 노예 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이 부른 노동요와 ‘들판의 고함소리field holler’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창 선창자와 응답 합창군 사이의 교창 관계(부름과 응답), 후자에서 보여지는 고음 팔세토falsetto와 외침, 부름, 독백, 감탄과 같은 음성적 요소는 이후 흑인 음악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흑인 음악은 발생 이후 백 년 간 백인 음악과 아무런 교류를 이루지 못했으나, 18세기 초 백인 미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이라고 불리는 종교 부흥 운동과 접촉하면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 음악 양식인 흑인 영가를 만들어 냈다. 그 이후 흑인 음악은 재즈,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 소울 등으로 이어지거나 분화되었다.
미국 대중음악사를 바라보는 지은이의 기본 관점은, 흑인이 기본적인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내면 백인이 그것을 상업화하는 패턴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재즈와 로큰롤은 물론이고 펑크와 랩마저 그런 전철을 밟았다. “재즈의 탄생과 발전을 통해 원래 흑인들의 음악 스타일이었던 것을 백인들이 각색하고 종합하여 주류 음악 흐름으로 만드는 패턴이 확립되기 시작한다.”, “백인들이 리듬 앤 블루스 양식을 수용하는 데는 커버 신드롬Cover Syndrome 현상, 즉 히트한 흑인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을 백인 가수가 뒤쫓아 다시 녹음하는 현상을 거쳐야 했다. […] 미국 전역에서 백인 가수와 백인 십대 청중이 백인이 커버한 리듬 앤 블루스 음악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미국의 다양한 지역들(대부분 남부)의 백인 십대들은 이러한 음반을 통해 리듬 앤 블루스를 접했으며, 그것에 열광했다. 백인들은 리듬 앤 블루스에서 새로운 흥분과 전자성, 비트를 간파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백인 음악인 컨트리에다 리듬 앤 블루스의 이러한 면모를 절묘하게 섞어 넣음으로써 흑백 음악의 융합을 극적으로 만개시켰다.”
지은이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하루 종일 춤추며 즐기자는 것 이상의 무엇을 창조하지 못”했고, “민중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는 건전한 부르주아의 신화”라며 밥 딜런을 비롯한 백인 주류 음악계의 스타를 비판한다. 이런 사정은 이 책이 쓰인 의도를 다시 되새기게 해준다. “1970년대 이후 록의 실험적 갈래들(포크 록·모던 포크·안티 포크·하드 록·인디 록·펑크·소울·헤비메탈·하드코어 등)은 성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노래를 들려주었지만 록의 지배적인 섹슈얼리티는 남성이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록에서도 여성이 ‘부재’하거나 ‘배제’되었고 백인 청년 중심의 반란이었던 록에는 미국 사회 전반에 팽배한 백인 우월주의적 성차별주의가 배어 있었다.”
이 간략한 미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읽을 만한 부분은 랩 음악에 관한 기술이다. 힙합 문화의 음악적 표현인 랩은 서아프리카의 구전 전통에 닿아있으면서, 앞서 열거된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 음악의 전통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랩은 미국 아프리카계 음악의 최신 유행이자 지류이면서, “중상층 백인들에게만 일자리와 성공을 허용하는 사회 구조”와 “대학 교육뿐 아니라 학업, 적절한 주거, 오락 행위, 음악 레슨에 접근을 거부당한 흑인” 젊은이들의 사회 정치적·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대항적 문화영역이다. 하지만 흑인 남성들의 랩은 백인 우월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감성에 종속되면서 퇴행적이고 모순적인 양태를 띄기도 한다. 반면 지은이가 공들여 기술한 여성 래퍼들은 흑인 남성 래퍼들보다 더 의식적으로 주류 사회와 지배 담론에 대항한다.
흑인 문화를 관통하는 것은 ‘영성spirituality’이라고 말하는 지은이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가부장 체계’를 극복할 원리로 백인 문화에는 없는 그것을 든다. 그러면서 흑인 음악이 미국 대중음악을 이끌 수 있었던 이유로, 지성적인 ‘문화적’ 접근을 특징으로 하는 백인 문화와 달리 흑인 문화가 ‘근육 운동 지각적kinaethetic’인 점에 있다고 말한다. 백인 음악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정서적 효과와 대중의 참여 본성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흑인 문화의 이러한 특성은, 그들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역사와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차별과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