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와리스 디리·캐틀린 밀러의 『사막의 꽃』(섬앤섬, 2005)을 읽다. - 헌책방에서 발견한 이 책의 책표지에는 ‘아프리카 사막 유목민 소녀가 세계적인 슈퍼모델, 유엔 인권대사가 되기까지’라는 선전 문구가 쓰여 있다. 또 하나의 ‘오지奧地소녀 성공담’인가?
이 자서전의 주인공 와리스 디리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다. 소말리아 말로 와리스는 ‘사막의 꽃’을 뜻하며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이 자서전인데도 불구하고, 본문에는 주인공의 출생연월이 없다. 그저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던 1998년에 30대 초반이었으니, 대략 68년 이전 출생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신상명세가 이처럼 부실한 것은, 와리스 본인이나 공저자 혹은 편집자의 실수 때문이 아니다: “우리 소말리아 사람들은 지금도 수천 년 전 조상들이 살던 대로 살고 있다. 유목민들은 전기도 전화도 자동차도 없고 컴퓨터나 텔레비전, 우주여행은 꿈도 못 꾼다. 이러한 사실과 더불어, 오늘만을 위해 살아가는 생활 방식으로 인해서 우리의 시간관념은 서구 세계의 시간관념과 차이가 있다. 다른 식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몇 살인지 사실 모른다. 추측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기는 1년 후 살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생일을 따지는 건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
소말리아 오지의 유목민 부족의 딸로 태어난 와리스는 열세 살 때 집을 뛰쳐나왔다. 아버지가 낙타 세 마리에 딸을 노인에게 시집보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자서전의 서두는 굶주림을 면할 식량은 물론이고 사막을 건너는 데 필요한 물 한 모금 없이 맨발로 집에서 달아났던 바로 그날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책표지를 여는 순간, 우리는 곧바로 아프리카 소녀의 생생한 모험담과 마주치게 된다: “조그만 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뜨니 사자의 얼굴이 보였다. 기절초풍한 나머지 잠이 달아났던 나는 눈앞에 있는 사자를 전부 담으려는 듯 눈을 크게, 아주 크게 떴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이미 며칠을 굶은 상태였던 까닭에 다리가 후들거리더니 이내 탁 풀려버렸다. (…) 사자는 다시 날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맛을 다시고는 웅크리고 앉는가 하더니 다시 일어나서 내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섹시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사자는 결국 떠났다. 내가 뼈만 앙상하고 살이 없어서 애써 먹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사자는 사막을 유유히 가로질러 갔다. 곧, 사자의 황갈색 털은 모래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외삼촌과 이모들이 살고 있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도착한 와리스는 친척 집안을 전전하며 가사노동을 도맡는다. 그러다가 런던 주재 소말리아 대사인 이모부 집의 가정부가 된다. 그녀가 짐작하는 나이로는 열넷, 여권에 기재된 나이로는 열여덟 살 때의 일이다. 4년 후, 이모부가 본국으로 귀국하면서 혼자 남겨진 와리스는 맥도널드에서 주방보조 일을 하던 중에 유명 패션사진 작가의 눈에 띄어 세계적인 모델로 성장하게 된다. 그 과정이 이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선전 문구 ‘아프리카 사막 유목민 소녀가 세계적인 슈퍼모델, 유엔 인권대사가 되기까지’ 가운데, 쉼표 앞부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쉼표의 뒷부분은 무슨 얘기일까?
이 책은, 보잘것없는 출신의 미운 오리새끼가 갖은 간난 끝에, 혼자 힘으로 눈부신 출세를 하게 되었다는 일반적인 성공담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이 씌어진 동기와 목적은 소말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28개국에서 현재도 행해지고 있는 ‘여성 할례’의 참상을 고발하고 그것을 금지시키기 위한 압박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여성 할례’라는 말이 그 행위에 종교적인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도 있는 까닭에 ‘여성성기절제술female genital mutilation'이라는 좀 더 중립적인 용어로 불리는 그것은, 말 그대로 소변을 보는 구멍을 제외한 여성 성기 전체를 도려내는 일이다. 그렇게 여성의 성기를 훼손하는 까닭은 삽입구를 둘러싼 음핵·소음순·대음순이 성행위 시 여성에게 쾌락을 주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가부장 남성들은 쾌락을 느끼는 여성의 성적 능력을 가부장 제도를 위협할 수도 있는 것으로 두려워했고, ‘여성 할례’의 근거로 코란을 들먹여왔다. 하지만 코란에는 “알라신을 위해서 여성의 성기를 자르라는 말이 어디에도 없다.”(아프리카의 여러 부족들은 4천 년이 넘도록 여성의 성기를 절제해 왔으니, 그것은 이슬람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 Eldrichtㅣ사막의 일출 (Rising in the Desert)
와리스는 다섯 살 때, 할례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노파로부터 성기를 잘렸다: “나는 큰 칼을 떠올렸지만 여인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작은 면 주머니였다. 여인은 긴 손가락을 뻗어 면 주머니 안에 넣더니 부러진 면도칼을 꺼냈다. 그리고 면도칼을 뒤집으며 양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태양이 막 떠오른 후라 색깔은 보였지만 자세한 것은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들쭉날쭉한 면도날에는 피가 말라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여인은 면도날에 침을 뱉더니 옷에 닦았다. (…) 그리고 곧 내 살이, 내 성기가 잘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을 편안하게 읽어낼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끔찍한 성기 훼손의 현장은 독자의 몸에서 구토감과 신열을 불러내고, 독자의 이성은 야만스러운 관습과 병든 가부장 권력에 치를 떨게 만든다. 워낙 미개한 지역에서 행해지는 일이라 시술자들은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수술 도구로 사용한다는데 그중에는 면도칼뿐 아니라 가위·깨진 유리 조각·날카로운 돌도 있고 어떤 지역에서는 이빨을 사용한다. 훼손 시에 겪는 극심한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과다출혈·괴저·감염 등으로 죽는 일도 부지기수다. 어릴 때 함께 놀던 친구나 친척의 딸이 보이지 않으면 그 일로 죽은 것이다. 실제로 와리스의 언니 한 명은 출혈과다로 죽었다.
끔찍한 일은 성기 제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말리아 여성의 80%는 성기를 훼손당한 후 요도 입구를 봉쇄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 끝난 줄 알았지만 가장 끔찍한 부분이 남아있었다. 안대가 벗겨지자 죽음의 여인[시술자] 옆에 쌓인 아카시아 나무 가시들이 보였다. 가시로 살에 구멍을 여러 개 뚫은 다음 그 구멍을 질긴 실로 엮어 꿰맸다. (…) 오줌을 누기 시작하자 피부가 타들어가는 듯이 따가웠다. 집시 여인은 오줌과 월경 구멍이 빠져나올 구멍을 겨우 성냥개비 들어갈 만큼만 남겨두고 꿰맨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성행위를 막는 기막힌 착상이다. 그럼 남자는 신부가 처녀라는 것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처럼 봉쇄술infibulation을 받은 여성은 장기적으로 골반이나 비뇨기에 만성 도는 희귀성 염증을 유발해 불임을 초래할 수 있으며 온갖 질병을 불러온다(생략). 그 가운데 고통스러운 것은 소변을 보는 일과 월경을 치르는 일이다. 와리스의 경우 이모부 가족이 소말리아로 돌아간 뒤, 영국의 의사를 찾아 꿰맨 곳을 풀기 전까지 소변을 보는 데는 10분, 월경을 치르는 데는 열흘씩이 걸렸고, 생리 시에는 “작은 구멍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속에서 고이고” 있는 피의 압박으로 기절하거나 온몸이 마비되곤 했다.
이 책이 나왔던 해에 나온 유엔 인구기금과 세계보건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어림잡아 1억 3천만여 명의 여성들이 관습적·종교적 이유로 성기 절단을 당했으며, 매년 2백만 명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끔찍한 범죄의 희생자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며, 경악스럽게도 유럽이나 미국으로 이주한 다수의 아프리카 사람들도 여전히 이 관습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 자료는 뉴욕 주에서만 약 2만 7천 명의 여성이 그 일을 당했거나 앞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종종 미국 내 아프리카 교민 사회에서는, 돈을 모아 집시 여인과 같은 시술자를 멀리서 데리고 오기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소녀들을 한꺼번에 시술한다.” 그래서 여러 주에서 FGM(여성성기절제술)을 금지시키는 특별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는데, 저 편의적 범죄자들이 “부모가 딸에게 절제술을 시행할 ‘종교적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때는 프랑스에서 벌어진 ‘히잡 논쟁’과 같은 문화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범죄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미국 헌법을 방어막으로 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 책이 나왔던 때를 전후해서 와리스는 유엔의 특별사절로 FGM 반대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다. 1991년 이래로 내전이 그치지 않는 조국 소말리아의 현실을 보면서 그녀는 말한다: “남자들의 성기를 잘라버리면,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남자들이 진정하고 세상을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분비되던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남성호르몬)이 없어지면 전쟁도, 죽음도, 도둑질도, 강간도 사라질 것이다. 남자들의 은밀한 부분을 잘라놓고, 피를 흘리다 죽든지 살든지 내버려두면 그제야 자신들이 여성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주로 아프리카 부족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여성 성기 훼손은,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잘못된 남성 가부장 권력의 산물이다. 덧붙여 도시나 산업이 낙후한 아프리카의 환경도 가세한다. 첫째, 변변한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아프리카 오지에서 딸은 아버지의 유일한 재산이다. 그러므로 딸을 비싸게 팔기 위해서는 딸의 ‘순결’을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여성 할례로 나타난다. 둘째, 아프리카는 여성이 홀로 살 수 없을 만큼 환경이 열악한데다가, 와리스가 속했던 유목부족은 더더구나 여자 혼자 살 수 없다. 때문에 결혼하기 위해서는 남편감이 원하는 조건을 갖출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들이 아프리카에서 여성 할례가 사라지지 않는 숨은 구조다. 다시 말해 서구의 문명국가들의 문화적인 계몽만으로는 저 참혹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완수되려면 경제적인 필요조건이 함께 충족되어야 한다.
사족이다. 여기서 ‘물타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제1세계의 문명인들은 아프리카의 야만에 분노하지만, 우리들의 문명사회 또한 진화의 도상에 있을 뿐, 야만이 모두 가신 것은 아니다. 노인과 결혼하기 싫어 집을 박차고 나온 와리스는 영국 국적을 얻기 위해 백발의 백인 노인과 ‘가짜 결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와리스가 본드걸로 얼굴을 비춘 007시리즈 <리빙 데이라이트 The Living Daylight>는 또 어떠했던가?: “나의 역할은 수영장 가에 누워 있는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고작 몇 장면 찍었을 뿐이다. 카사블랑카에 있는 멋진 저택 안에 앉아 차를 마시는 장면도 있었는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여자들은 다 옷을 벗고 있어야 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일반 서점에서 온 값 주고 사라고 했다면, 결코 사지 않았을 것이다. 딱 ‘오지 소녀 성공담’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아프리카 사막 유목민 소녀가 세계적인 슈퍼모델’ 운운하는 선전 문구를 보고서는 더욱 그렇다. 헌책방은 일반 점방에서 보지 못하는 책을 보게 하고, 그것을 손에 쥐게 만든다. 자꾸 헌책방에 가게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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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