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한국은 30여 개의 OECD 회원국 가운데서 젊은 세대의 평균 결혼 연령이 가장 늦은 나라 군에 속한다. 회원국 가운데 선두 그룹을 형성하는 유럽의 경우 대개 16세에 사랑을 배우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8세 무렵부터는 독립을 희망한다. 그래서 20세가 되어서도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와 함께 사는 젊은이는 친구들로부터 ‘아기’라는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군 복무라는 특수사정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20대 독립’은 쉽지 않다.
우석훈·박권일이 함께 쓴 『88만원 세대』(레디앙, 2007)는 10대의 성적 자율권이나 20대의 동거권이라는 ‘섹시한 주제’로 말문을 열지만, 기실은 경제학 관련서다. 우리나라의 20대가 사랑하는 사람과 쉽게 동거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의 전통이 깊어서거나 다른 나라 젊은이들보다 금욕적이어서가 아니다. 뻔하지 않은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동거나 독립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 방도가 없기 때문이고, 새로운 시민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18세에 독립을 희망하는 젊은 동거인들에게 어떻게 사회안전망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논의를 시작했고, 국민소득 1만 5천 달러나 늦어도 2만 달러 즈음에서 기본적인 제도 정비가 끝났다고 한다. 먼저 국가는 혼자 살거나 동거를 선택한 젊은이들에게 50%~60%에 이르는 월세보조금을 지급하고, 소득이 생길 수 있도록 지역의 공공기관이 일자리를 제공한다. 1년간의 등록금이 돈 천만 원에 육박하고 특정 학과에 따라서는 그 이상을 상회하기도 하는 한국에서는 독립한 20대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프랑스의 경우 년 50만원으로 등록금을 해결한다.
우리나라의 사정을 유럽과 비교하는 게 너무 이상적이고 무리라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유럽이 국가와 지역사회가 나서서 ‘20대 독립’ 희망자의 주거와 먹고 사는 일 그리고 대학 진학을 해결했다면,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높은 ‘알바 임금’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고, 어정쩡하고 제한적이나마 문무성의 장학금으로 높은 대학 등록금 문제를 풀었다. 동경처럼 주거비용이 비싼 지역을 제외하면 이럭저럭 20대가 독립을 꾸려갈 수 있는 게 일본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맛보기다. 저자들도 말하고 있듯이 “청소년들이 20대에 독립을 하거나 더 일찍 동거를 시작한다고 해서 세상이 그 자체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20대 독립’이 불가능한 사회는 그만큼 “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꽉 막혀 있고,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장치들을 갖추지 못한” 사회라고 할 수 있으며, 젊은 세대의 독립을 지체시키는 비효율적인 사회는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퇴행적 성인의 등장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 저자들은 묻는다. “10대 후반에 독립하고 동거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 선진국의 10대와 지체 현상 속에서 종속된 존재로서 어둡게 20대 초반을 맞는 우리나라의 10대들이 경쟁을 하면 누가 이길 것인가?”
현재 취직난으로 고투하는 우리나라의 20대들은 IMF를 맞았을 때 10대였다. 이 지지리도 운 없는 세대는 IMF 이후 파상적으로 진척되어온 세계화와 현 정부가 벌인 잘못된 경제정책의 이중 희생자다. 노무현 정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구조 조정을 통해 대기업의 독과점을 부추겼는데, 이것은 중소기업을 육성했던 박정희나 ‘벤처기업’에 주력했던 김대중의 경제 정책과 역행한다. 중소기업은 그 자체가 사회적 안전망이랄 수 있으며, 자영업은 자본주의의 마지막 비상탈출구다. 하지만 독과점과 프랜차이징이 젊은이가 차지해야 할 새로운 일자리를 치워버리고 창업 시장에 장벽을 설치함으로써, 우아한 10%의 구직을 위해 20대 사이의 과잉 경쟁을 만들어내는 한편 나머지 90%는 비정규직을 감수하거나 실업자가 되었다.
IMF 이후 대기업에 의한 독과점이 부추겨진 것은, 침탈적 다국적 기업(언제부터인가 초국적 기업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나는 그 이중언어를 믿지 않는다)에 맞설 방어벽과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저자들은 바로 그 생각이 단안이었으며, 경제 정책 입안자들의 철학 부재가 드러난 지점이라고 말한다. 세계 경제는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그동안의 자본주의를 이끌어왔던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에 의한 포디즘(Fordism)이 종언을 고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포스트 포디즘(Post-Fordism)시대로 돌입했다. 이런 변동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공룡’이 아니라 중소기업·자영업·지방기업이 각개 약진해야 했다. 바로 거기서 세계적인 명품이 나오고 즉 경쟁력이 생기고, 다원화가 조성한 사회 안전성이 곧 저자들이 생물학에서 빌려온 개념인 경제적 다안성多安性이 생긴다.
분명 이 책은 경제학을 말하고 있지만, 현재의 20대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결단하기를 권하는 책이다. 요즘 와서 참 듣기 힘들어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원래 굉장히 전투적인데다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독점해 왔던 문제의식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라. 그러면 똑같은 제목의 책 세 권 보일 것인데, 그것들은 차례대로 쳬르셰프스키가 1862년에 쓴 사회주의 이상에 관한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열린책들, 2003), 거기에 영향을 받고 레닌이 1902년에 쓴 그의 주저 『무엇을 할 것인가』(박종철출판사, 1999), 그로부터 100년 뒤 각국에 산재한 21세기 사회주의자들이 레닌에게 답하는 논문집 『무엇을 할 것인가?』(갈무리,2004)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공유한다고 해서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이 혁명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며, 88만원의 평균 임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오늘의 20대들에게 ‘짱돌’을 들라고 선동하지도 않는다.
저자들은 말한다. 지금 88만원 세대가 가질 수 있는 상징적 ‘짱돌’은 당장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징 업소에 출입하는 것을 끊는 일이라고. “만약 20대 1만 정도가 스타벅스에 가기를 거부하고 20대 사장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와 차를 마시겠다고 선언”한다면 “100명의 20대가 자신의 카페를 가지고 경제적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무력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이런 소비운동은 4·19세대(60년대)·유신세대(70년대)·광주세대(80년대)와 같은 정치사회적 동질의식 없었던 현재의 파편화 된 세대에게 세대의식을 마련해 준다. 뿐 아니라 젊은 세대의 반프랜차이징 운동은 “스위스와 스웨덴같이 프랜차이징을 권장하지 않는 나라가 4만 달러 경제로 넘어갔던 사실과, 프랜차이징을 늘리면서 사회 양극화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전체 사회에 알리는 효과가 있다.
또한 이 책은 우리나라 교육에 관한 책이다. 현행의 중고등학교 교육은 포디즘 시대에나 맞는 대량생산 교육이다. 암기·획일·점수로 유지되는 표준화된 교육으로는 결코 선진국에 도달할 수 없다. 흥미로운 통계에 의하면 “국민경제 성장률과 문맹률이나 고등학교 교육” 간에는 상관관계가 보이지만 “대학진학률과 맞춰보면 그렇게 만족스러운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스위스의 대학진학률은 고작 27% 정도인데 맥가이버 칼로 유명한 빅토리녹스부터 스위스 시계는 물론, 내가 평생 오매불망할 하이엔드 오디오 골드문트까지 스위스에는 명품 공장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고학력 실업자만 양산하는 대학에 꾸역꾸역 가야만 하는 이 나라의 상황은 어쩐 일일까? 학교 안에서는 개성과 효율성 높은 교육이 이뤄지고, 학교 밖에서는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아주 반갑게도 저자들은 탈 포드주의 시대에는 사회가 시켜주는 표준화된 공부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독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국민들의 수준 높은 독서가 곧 ‘사회적 자본’의 총량이라는 말하는 저자들은 현재의 386세대를 다른 세대와 비교한다면 해방 이후 가장 독서를 많이 했던 세대이고, 현재도 가장 많은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포스트 포디즘 이라는 변화된 환경에서도 이전 세대에 비해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독서할 여력이 없는 다음 세대(현재의 20대)에 비해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바로 이 386세대에 의해 현재의 10대(즉 그들의 자녀)가 사교육 시장에서 사육되고 있다는 것은 이해 못 할 수수께끼다. 교육이라는 ‘상징자본’을 통해 사회적 권력을 쟁취할 수 있었던 386세대는 자신들이 맛본 성공비법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한국의 미래에 관한 책이다. ‘승자 독식’이 기정사실로 된 현재의 경제 정책이 계속된다면, 10% 안에 들 수 있는 선택받은 소수를 제외한 20대들의 대부분은 평생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평균 88만원의 임금으로 살아야 한다. 생각해 보라. 상황이 이러하다면, 현재 구직난에 처한 젊은이들과 중산층도 되지 못할 미래의 젊은이들이 선택할 것은 무엇이겠는가? 저자들에 의하면 이 상황이 가장 나쁘게 진행되는 경우는 마치 1세기 전에 유럽에서 벌어졌던 두 번의 전쟁 직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 사회가 파시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어쩌면 요즘 젊은이들에게 나타나는 과열된 민족주의 정서와 우경 보수화가 그것의 전조인지도 모른다.
암울한 미래를 벗어나는 방법이 전무하는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산업 분야는 물론이고 사회의 각 분야에서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아래 세대와 나누는 것이다. 일례로 스웨덴의 볼보사에서 최초로 시작하여 ‘볼보주의Volvoism’ 방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일자리 나누기’는, 전체 임금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노동자의 고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젊은 실업자군을 흡수하는 형태다. 기성세대의 양보가 전제되어야 하는 이 방식은 그러나 “월급을 조금 덜 받는 대신에 평생 일할 것인가” 아니면 “월급을 많이 받는 대신에 잠깐 일할 것인가”를 집단이 선택하는 게임이다. 어차피 독과점화를 굳힌 대기업은 실업예비군이 많아질수록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려고 들것이기 때문에, 기성세대 또한 젊은이들의 공조를 필요로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경제상의 불균형은 결국 언젠가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혁명이든 공황이든 그 대가는 항상 처참하다. 일면 세대론으로도 읽히는 이 책은, 사회경제적으로 안전한 자리에 앞서 안착한 기성세대와 지금 평균 88만원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40대가 되더라도 평균적 소득이 급격하게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며 50대가 되었을 때에는 아무런 주기적 소득이 없을지도 모르는 현재의 20대 간에 놓여 있는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을 전면적으로 문제 삼는다. 우리 사회가 알지 못하는 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암종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88만원 세대』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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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