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월 9일자로 시작된 저의 ‘독서일기’ 쓰기는 일곱 권의 『독서일기』를 낳았습니다. 독서일기를 쓰는 동안 항상 여러 인쇄 매체와 함께해 왔는데, 이번에는 문화웹진 ‘나비’의 도움으로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앞서 인터넷과 만났던 동료 작가들의 즐거운 경험을 간간이 들어왔던 터라, 설레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제가 독서일기를 처음 쓸 무렵과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사이에는 무려 17년이라는 세월이 가로 놓여 있지만, 정작 변한 것은 세월이 아니라 저의 독서관입니다. 원래의 저의 독서관은 오로지 ‘쾌락’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트럼프 카드나 골프채 또는 술잔을 들고 있는 것보다는, 책을 들고 있는 게 그저 즐거웠던 것입니다. 때문에 책을 읽을 때마다 아파트 평수처럼 조금씩 늘어나는 ‘교양’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덤에 불과했습니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쾌락을 좇아가는 저의 독서관이 크게 바뀐 것은 여섯 권째 『독서일기』를 출간하던 2004년부터였습니다. 민주사회란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하는 사회고, 민주사회에 사는 시민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뒤늦은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가, 그 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저를 그렇게 변화시킨 시시콜콜한 계기를 여기 다 적지는 않겠습니다.
시민이 책을 멀리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일방적인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부터,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 라는 좀 과격한 독서론에 경도되었습니다. 그러자 즐겨 읽는 책도 문학 작품에서 벗어나 인문사회 분야로 자연히 확장되었고,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다른 시각과 기준점이 생겨났습니다.
독서란 논술이나 수능을 잘 치르기 위해 필요한 것도, 또 교양이나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의 과격한 독서론을 다시 피력하자면, 독서는 민주사회를 억견과 독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트럼프 카드나 골프채 또는 술잔을 들고 있는 것보다는 더 짜릿한 ‘쾌락’까지 덤으로 보태진다니 더욱 하고 싶어지는 게 독서입니다.
말 그대로의 종이 ‘지면(紙面)’에서 인터넷 지면으로 환경이 바뀌긴 했지만, 저의 독서관이 매체환경에 따라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20여 권을 목표로 했던 『독서일기』의 장도 가운데 문화웹진 ‘나비’의 격려를 받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기며, 독자들과 함께 손잡고 드넓은 광장으로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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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