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사설 다시 읽기」 연재를 끝내며
강명관(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일 년 가까이 원고를 실었다. 세어보니 마흔 번이다. 더 길게 연재하고 싶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여기서 마치는 수밖에 없다. 개인 사정이란 것이 무어 별다른 것은 아니다. 시간 부족 때문이다. 작년 한 해 연구년을 얻었는데, 요즘 연구년이란 예전의 안식년이다. 안식년이면 말처럼 편안하게 쉬어야 할 것이지만, 사정은 딴판이었다. 시간이 좀 난다 했더니, 어떻게 알려졌는지 잡다한 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호사설 다시 읽기」가 결국 중동무이가 되고 만 것도 내게 부과된 다른 일들이 시간을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또 글을 쓰는 동안 공부가 부족하여 성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적지 않게 들었다. 성호는 알다시피 워낙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글을 쓰면서 그의 사유의 배후를 이루는 큰 지식의 산맥이 자주 의식이 되었다. 평생 공부로 일관했던 탁월한 지식인이 쌓아올린 그 넓고 깊은 지식의 세계를 나처럼 공부가 모자란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게 글쓰기를 계속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성호사설』을 읽을수록 빈약한 내 공부의 수준을 깨닫게 되었으니 그게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다만 『성호사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성호가 지금 세상을 향해 『성호사설』을 쓴 것은 아니지만, 읽을수록 요즘의 어그러진 세상을 이 책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옛글 중에서 『성호사설』과 같은 글이 나로서는 가장 좋다. 풍부한 지식과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깊고 날카로운 비판은 조선시대 다른 지식인에게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호사설』의 발언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이유가 아닐까? 또 이것이 인간 세상이 껍데기는 비록 호사스럽게 바뀌었지만 내적 모순은 여전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옛글을 읽는 방식은 여럿이다. 나는 「성호사설 다시 읽기」에서 생명과 평등, 평화 등을 읽어내려 했다. 예컨대 「성호사설 다시 읽기」의 첫 글 「성호의 생명사상」은 나로서는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다. 산업화된 축산업의 결과 구제역이 창궐하고 숱한 생명들이 매몰되는 것을 보면, 정말 성호의 생명에 관한 생각을 다시 곱씹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응하여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목소리가 신문에 실리는 것을 보고, 성호의 평화적 외교에 대한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성호사설』은 이처럼 현시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좋은 도구인 것이다. 하지만 늘 부끄러운 것은, 명색이 글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이면서도 성호와 같은 훌륭한 지식인의 길을 따르지 못하고 늘 머뭇거린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 부끄러움을 면해볼 것인가.
언젠가 공부가 더 충실해지면 『성호사설』을 가지고 다시 한번 글을 써보고 싶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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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요즘 필자는 조선 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했는지, 그 결과 어떤 인간형이 탄생했는지에 대해 공부 중이다. 최근작 『열녀의 탄생』과 연계하여, 조선 시대 남성-양반이 그들의 에토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식화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성다움과 양반다움으로 남성-양반은 어떻게 여성, 백성들과 구별 짓고 우월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 면면을 연구할 계획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안쪽과 바깥쪽』,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열녀의 탄생』, 『시비是非를 던지다』, 『사라진 서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