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減稅)는 가난한 백성을 괴롭힌다
성호는 「가벼운 세금은 폐단을 낳는다(輕賦受?)」(8권, 인사문)에서 세금을 적게 받는 것을, 예컨대 ‘전세(田稅)’가 10분의 1이 안 되는 것을 오랑캐의 제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즉 세금을 적게 받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성호의 뜻을 헤아려보자. 「세금을 깎아주다(?租)」(14권, 인사문)에서 성호는 “세금을 깎아서 백성을 구휼한다는 것은 정치의 요점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왜냐? “논밭이 있어야 세금을 매기는 법이니, 세금을 깎아주면 논밭을 소유한 사람만 혜택을 입기 때문이다.” 즉 세금을 깎아준다면 그것은 과세의 대상이 되는 토지를 소유한 사람만이 이익을 본다는 것이다. 논이고 밭이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깎아줄 세금조차 없다. 아니 그런가.
그렇다면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같은 글에서 성호는 이렇게 말한다.
정전제(井田制)가 폐지된 이후 농토를 소유한 백성은 열에 한둘이다. 이러니 위에서는 아무리 은택이 쏟아진다 해도 아래서는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리니,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농토가 있으면 부자다. 부자들이야 세금을 깎아주지 않아도 무슨 해로움이 있을 것인가. (…) 저 산에 불을 지르고 물을 막아서 자기 땅의 경계로 삼고 자기 집안의 이익을 누리고자 하는 자들이 오히려 세금의 반을 깎아달라고 날마다 내심 바라고 있는데, 나라의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데 힘써 단지 나라의 재정을 축내고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땅을 가진 부자는 10~2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20대80의 세상이라고 하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정은 같았던 것이다. 산에 불을 질러 제 땅을 표시하고 강물을 경계 삼아 땅을 차지한 자들은 세금을 반으로 깎아줄 것을 날마다 바란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 곧 국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부자들의 ‘고통’에 공감하여 세금을 깎아준다. 결국 국가 재정만 축이 나고 ‘아래서 굶주리는 사람들은 고통을 면할 길’이 없다.
왜 성호는 가벼운 세금이 폐단을 낳는다고 했던 것인가. 『맹자』 「고자(告子)」 하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백규(白圭)란 사람이 세금으로 수확의 20분의 1을 거두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맹자에게 묻는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적게 매기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한데 맹자의 답은 뜻밖이다. 그건 ‘맥(貊)’이란 오랑캐족의 제도란다. 왜냐? 맥족이 사는 곳은 오곡이 자라지 않고 오직 기장만 자란다. 생산력이 낮으니, 궁궐도 종묘도 제사도 없고, 관청도, 벼슬아치도, 제후들의 외교 관계도 없다. 그러니 20분의 1을 거두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문명화된 나라에 살고 있다. 문명화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20분의 1이란 세금으로는 어림도 없다! 이것이 맹자의 메시지다(개인적으로 나는 맥족의 제도가 좋다).
하지만 성호는 약간 다른 입장에서 접근한다. 역사를 살펴보건대, 간혹 20분의 1, 30분의 1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적은 세금을 받는다’라는 명목만 있을 뿐이고, 이면에는 반드시 폐해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수많은 벼슬아치들의 봉급, 종묘에 쓰이는 제수(祭需), 외교와 국방에 필요한 경비는 반드시 어디선가 충당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은 어떤가. 성호는 「10분의 1의 세금(什一賦)」(11권, 인사문)에서 국가가 정한 세금은 1결에 16두로 25분의 1이라고 한다(1결에 400두를 생산한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계산이 있지만 생략한다). 25분의 1은 엄청나게 적은 세금이다. 하지만 여기에 ‘고을의 잡부금’과 ‘곡식을 운반하는 데 드는 허다한 잡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25분의 1이라지만 이것을 계산하면 실제로는 벌써 10분 1을 바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산은 많고 들은 적다. 백성들이 갈아 먹을 수 있는 땅은 7분의 1에 불과하다. 또 세금이 10분의 1이 되지 않아, 백관은 봉급으로 집안 식구를 넉넉히 먹여 살릴 수가 없다. 서리(胥吏)들은 봉급도 없이 관청 일을 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반드시 여러 고을에 골고루 분배하여 징수한다. 여러 고을에서는 그것을 구실로 온갖 방법으로 마구 더 많이 거두기 때문에 백성은 더욱 곤궁해진다. 세금이 가볍다는 의의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금 10분의 1로 세금을 정하여 더 받는다면, 농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손해가 가고 가난한 백성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금을 가볍게 해주고서 따로 더 받는 세금이 있다면 가난한 자가 더욱 곤궁해질 것이다(「가벼운 세금은 폐단을 낳는다」).
경작지가 적은 나라에서 세금은 10분의 1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벼슬아치들의 봉급이란 것이 형편없이 적고, 서리들은 정해진 봉급도 없다. 만약 나라에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라도 있으면 지방 각 고을에서 추렴한다. 세금 외의 세금이다. 한데, 어디 지방관들이 정해진 양만 추렴하는가. 거기서 자신이 챙겨먹을 것, 뇌물로 바칠 것을 덧붙인다. 아전이 한몫 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세금이 적다는 것은 명목상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농민이 부담해야 할 세금은 어마어마했다.
이제까지 세금 운운한 것은 전세(田稅)다. 즉 논밭을 경작하여 수확물의 일부를 세금으로 바치는 것이다. 여기에 전혀 다른 종류의 세금이 있다. 공물(貢物)이 그것이다. 공물은 지방 특산물을 바치는 것이다. 조선 정부는 특산물과 바치는 양을 지역마다 배정해놓았는데 이것이 온갖 문제를 일으켰다. 엉뚱한 특산물이 배정된 경우도 있고, 기후 변화에 산지가 바뀐 곳도 있다. 때로는 그 특산물이 흉작일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물을 대납하고 백성들에게 높은 값을 받는 자가 생기고, 또 그런 자 뒤에는 양반 권세가가 똬리를 틀고 있기도 했다. 이런저런 명목의 공물의 종류와 양은 늘어만 가고 줄어들지는 않는다. 백성은 거의 죽을 지경이 된다.
오랜 논란 끝에 김육(金堉)의 아이디어로 잡다한 공물을 모두 쌀로 통일해서 내게 하는 대동법(大同法)이 시행된다. 대동미란 세금 역시 결코 적지 않았지만, 백성들은 그래도 각다귀 같은 공물 징수에서 해방되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이게 또 비극의 시작이었다. 대동미를 받고도 각 도와 각 고을에서 법에 없는 온갖 명목의 비용을 짜내기 시작했는데, 급기야 성호의 시대에 오면 고을 수령들 중에 이런 온갖 구질구질한 명목의 잡부금을 쌀 6, 7두를 내게 하여 하나로 몰아버렸고 백성들은 또 그것을 편하게 여겼다〔「대동(大同)」, 9권, 인사문〕. 간편해졌으니, 한동안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끝이 아니다. 세월이 가니, 공물을 대동미로 내게 했던 본래 의도는 물론이고 각종 잡부금을 쌀로 몰아서 내게 했던 것도 까맣게 잊고 만다. 그래서 나라에 잔치가 있어도, 국상이 나도, 중국 사신이 와도, 중국에 사신을 보내도 백성들을 쥐어짠다. 이런 방식을 중앙의 관청에서도 본을 받고, 감사도 본을 받아 무슨 일만 있으면 백성들에게 내란다(「대동」). 세금 위의 세금이다. 성호는 이 사태를 두고 “대동법을 만든 뜻은 대동미 외에는 다른 것을 더 받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바치는 공물은 예전 그대로다. 또 허다한 세월이 흘렀으니, 공물의 종류가 더 불어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기인열거(其人列炬)」, 10권, 인사문〕라고 말한다.
국가 권력을 쥐고 국민을 지배하는 자들은 아무리 많은 세금을 거두어도 만족할 줄 모른다. 국가의 재정은 늘 모자라는 법이다. 해결할 방도는 없는가. 성호는 이렇게 말한다. “10분의 1의 세금을 받고 쓰는 데 모자란다면, 그것은 일하지 않는 쓸데없는 관리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나치게 낭비를 하거나, 비용이 새나가는 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나라 땅은 작은데 고을은 많고, 일은 간단한데 관리는 많다. 이것들은 모두 줄여야 할 것이다.”(「10분의 1의 세금」)
성호의 생각은 지금도 실천되지 않는다. 게다가 국가가 세금을 어떻게 쓰는지 감시할 방법도 없다. 잘못 쓴다 해도 국가는 고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있지만, 그 국회와 국회의원이 그런 일을 한다고 믿는 것은 바보 아니면 천치다. 부자 감세를 태연히 감행한 나리들을 보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