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의 유토피아, 화폐 없는 세상
화폐는 우리 생의 유일한 목적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예술과 종교, 학문, 그러니까 화폐와 거리가 멀다고, 혹은 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이미 그것의 포로가 된 지 오래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무방하리라. 하기야 우리는 아주 드물게 화폐로부터 자유스러운 어떤 사람과 그의 행위, 그리고 어떤 계기로 나의 저 어두운 내면 저 한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화폐에서 자유로운 나의 영혼을 발견할 때 소스라치게 놀란다. 하지만 이 놀라움은 도리어 화폐가 우리 생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화폐는 인간이 교환 수단으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인간은 그 수단의 포로, 아니 노예가 되어 허덕인다. 다만 돈이 생의 유일한 목적이 된 사회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달 이후에, 한국으로 말하자면 20세기 이후에 본격화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도 그 전사(前史)는 있다. 또 화폐의 유통이 활발해지자 그것의 본질, 곧 화폐의 악마성을 통찰한 사람도 있었다. 성호가 바로 그 사람이다. 성호는 화폐가 없는 세상을 꿈꿨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화폐가 없어 재산이 오직 실물 형태로 존재한다면 부의 축적에는 제한이 따른다. 성호는 「곡식과 포(布)가 많은 사람이 부자다(粟布多爲富室)」(10권, 인사문)에서 1488년(성종 19년)에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명나라 사람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금과 은의 저축을 허락하지 않기에 곡식과 포가 많은 사람을 부자로 친다. 물건을 사고팔고 바꾸고 할 때는 오직 곡식과 포를 가지고 한다. 이런 이유로 탐관(貪官)이 적다.” 화폐가 없기에 탐관이 적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같은 글에서 성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댄다.
대개 곡식과 포는 가벼운 화폐와 사뭇 다르다. 백성을 쥐어짜는 자들도 많이 가질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탐관이 적었던 것이다.
화폐는 곧 부정한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탐관을 증오했던 성호는 이런 이유로 해서 화폐에 대해 부정적이다. 한마디를 더 들어보자. “돈은 사치에도 편리한 것이고, 훔치는 데도 편리하다. 탐관은 곧 큰 도둑이다.”(「곡식과 포가 많은 사람이 부자다」)
하지만 성호가 화폐를 비판한 것은 궁극적으로 화폐의 존재가 백성을 궁핍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성호에 의하면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농사에 힘쓰게 하는 것, 둘째 검소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셋째 토색질을 금지하는 것이 그것이다〔「돈의 해독성(錢害)」, 11권, 인사문〕. 차례로 살펴보자. 첫째 백성을 농사에 힘쓰게 하려면, 농업에 견주어 이익이 더 남는 직업이 없어야 한다. 성호는 상업이 농업에 비해 월등하게 적은 노동량으로 월등하게 많은 수익을 얻는다면 농업은 기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상업의 발달에는 화폐가 필수적이다. 성호는 화폐의 편리함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곡식과 포는 은자나 돈보다 편리하지 않다. 게다가 은자는 귀하고 돈은 흔하기에 은자는 돈보다 편리하지 않다.” 상업에는 화폐가 제일가는 도구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화폐의 유통은 결국 상업을 부추긴다. 성호는 화폐가 유통되면서 백성들이 장사로 얻을 수 있는 몇 갑절의 이익을 바라고 쟁기를 팽개치고 시장을 떠돌기에 그 결과 농사를 망친다고 말한다. 가격 차를 이용한 이윤의 획득은 농업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능가하기에 궁극적으로 농업이 기피 대상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성호의 다음 세대인 박제가(朴齊家)가 상업이 농업 생산을 자극할 수 있기에 상업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성호는 검소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방법은 사치를 금지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 원근의 크고 작은 기호품을 구입하는 데 돈보다 편리한 것은 없다. 그렇지 않은가. 화폐를 압축한 신용카드 한 장이면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그 상품이 세계 어디에 있든 손에 넣을 수 있다. 조선시대라 해서 다를 것 없다. 돈을 가진 자는 멀건 가깝건 동쪽이건 서쪽이건 물건을 사들여, 제 몸에다 한껏 쓰며, 오로지 사치스럽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마침내는 파락호가 되고 마는 것이다〔「전초회자(錢?會子)」, 4권, 만물문〕. 과잉 소비는 결국 돈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기에 돈은 백 가지가 해롭고, 한 가지의 이로움도 없다(「전초회자」).
토색질을 금지하는 것 역시 화폐와 관련이 있다. 성호는 토색질을 금지하려면 먼저 토호를 억제해야 하며, 토호의 작간(作奸)은 ‘고리대금업’보다 심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고리대금업의 이윤은 어떤가?
농사를 지어서 얻는 이익은 갑절에 불과하다. 그것도 풍년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흉년이 들 때도 있다. 상업은 이익이 많기는 하지만 본전을 까먹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돈놀이로 애써 일하지 않고 앉아서 큰 이익을 보는 데는 미치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시정의 샌님이 문을 닫고 돈놀이를 하여 졸지에 천금의 재산을 모든 부자가 되기도 한다. 재물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쪽이 이익을 보면 저쪽은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그러니 백성이 어찌 가난해지지 않을 것인가. 봄에 돈을 꾸어도 곡식을 많이 살 수가 없다. 하지만 가을에 이자를 갚고자 하여 추수한 곡식을 팔자면 곡식 값은 헐하다. 이렇게 해서 빚을 다 갚지 못하면 원금과 이자가 어느 결에 점점 불어나서 마침내 집을 팔고 전잡을 판다. 재산이 거덜 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파산하는 것은 십중팔구가 돈놀이 때문이다. 이 역시 모두 돈의 해독이다(「돈의 해독성」).
화폐로 인해 고리대금업이 가능하다. 화폐가 화폐, 곧 이자를 낳는다. 이자는 돈을 빌려 쓴 사람의 노동의 결과물이다. 결국 화폐는 타인의 노동을 흡수하고 때로는, 아니 자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흡수해버린다.
새로 등장한 직업, 곧 고리대금업으로 인한 농민의 피해는 성호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귀족과 부호들은 억만의 돈을 쌓아놓고 있다가 풍년이 들면 곡식을 사들여서 개인으로 비축해놓는다. 그러다 흉년이 들면 곡식을 내다 팔아 돈을 빨아들인다. 거기에 관청의 세금과 사채(私債)를 한꺼번에 돈으로 내라고 독촉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에 그해 수확을 깡그리 긁어내어 갚는다. 겨울을 나기도 전에 여덟 식구가 벌써 굶주리게 된다. 이것이 일 년 내내 부지런히 몸을 부려 얻은 재물이 백성에게 있지도 않고 나라에 있지도 않고, 남김없이 놀고먹는 무뢰한 자들에게 돌아가는 이유다〔「‘벼슬길은 넓고 돈은 많다(仕廣錢多)」, 16권, 인사문〕.
돈과 고리대금업으로 인해 백성의 생산은 백성에게도, 국가에도 있지 않고 놀고먹는 유한계급의 손아귀로 돌아간다. 월스트리트의 금융업을 보면 이 문제는 여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골자는 결국 화폐가 백성에 대한 착취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벼슬길은 넓고 돈은 많다」는 이 문제를 소상히 다룬 글이다. 이 글에서 성호는 백성이 빈궁한 원인을 ‘아전의 탐학’에서 찾고, 아전의 탐학을 재정이 부족에서, 그리고 재정의 부족을 관원이 많은 데서, 관원이 많은 것을 ‘벼슬길이 너무 광범위한 것’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벼슬에 오르는 자가 많으면 재직 기간이 짧아진다. 따라서 재직하고 있을 때 퇴임 이후 쓸 재산과 자손에게 남겨줄 재산까지 한몫 챙기려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백성이 곤궁한 이유다(「벼슬길은 넓고 돈은 많다」). 다만 탐학은 도둑질이고 도둑질은 발각될 수 있다. 그래서 부피는 작지만 값어치가 높은 그 무엇이 필요하다. 돈이 그것이다. 돈으로 축재한 벼슬아치들은 모두 부자가 되고 백성은 가난해진다. 성호는 탐학의 성행은 돈이 일으키는 폐단이라고 말한다. 화폐는 곧 착취의 수단이다.
성호는 『성호사설』의 「은병(銀甁)」(4권, 만물문), 「고전(古錢)」(4권, 만물문), 「백금(百金)」(9권, 인사문), 「청묘전(靑苗錢)」(20권, 경사문) 등에서 화폐의 해악성을 역설하며 화폐를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화폐 없는 세상이 성호에게는 유토피아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성호의 화폐 폐지 주장이 허황한 소리로 들리는가.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이 만들어낸 화폐의 노예가 되어 사는 지금 세상을 보면 성호의 말은 결코 허황하지 않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