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홈리스
사라지는 말도 있고, 새로 생기는 말도 있다. 인터넷과 관계된 새 낱말이 무수히 생겨나지만, 어느 결에 슬그머니 사라진, 혹은 사라지고 있는 묵은 낱말도 있다. ‘거지’란 어휘도 그중 하나다. 한국어 안에서 아직 시민권은 가지고 있지만, 아마 이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거지는 다른 말로 하자면 유민이다. 오늘은 『성호사설』에서 유민에 관한 글을 뽑아 읽어보자.
성호는 「거지〔?者〕」(12권, 인사문)란 글에서 자신이 만난 유민의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
30년 전의 일이다. 나는 어느 날 저물녘에 서울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날은 몹시도 추웠다. 낡은 옷을 걸친 눈이 먼 거지 하나가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들어갈 집이 없는 신세라, 남의 집 문밖에 앉아 소리 내어 울며 하늘에 호소하고 있었다.
"제발 죽여줍소서. 제발 죽여줍소서."
그는 정말 죽고 싶은 것이었지만,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사람을 잊을 수 없다.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성호가 동정해마지않았던 거지가 바로 유민이다. 이 사람은 눈까지 멀었다. 죽고 싶지만 ‘죽어지지’도 않는다. 모진 게 목숨이라 스스로 끊기도 어려운 것이다.
성호는 「유민을 다시 불러 모으는 방법(流民還集)」(14권, 인사문)에서 유민의 실태를 여럿 보이고 있다. 그것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어느 날 성호가 문을 나서니, 어린아이 거지, 어른 거지 서넛이 모여 있었다. 성호가 말을 건넸다.
"이제 봄 농사철인데, 너희들은 왜 살던 곳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려고 하지 않고, 아직도 타향에서 걸식을 하고 있느냐?"
거지들이 빤히 보며 대답을 한다.
"어떻게 농사를 지을 방도가 있어야지요. 종자도, 끼니거리도 없으니, 돌아가 봐야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답을 하며, 거지들은 성호를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성호는 자신이 듣고 본 유민 이야기 몇 가지를 같은 글에서 전하고 있다. 들어보자. 성호는 강원도 쪽에서 온 유민들에게 임금이 의복과 쌀을 주어 근신(近臣)이 인솔해 고향으로 돌려보내게 했지만 성문을 나서자마자 한 사람이 외침에 따라 뿔뿔이 흩어져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걸식하는 것이 고향에 돌아가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성호는 또 온 고을이 텅 빈 경우도 적지 않아, 특별히 심한 고을을 골라 근신에게 돈을 주어 유민들을 불러 모으게 했는데, 막상 가보니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어 그냥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전염병에 걸린 떠돌이 한 사람이 길가에 누워 있으면서 마을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열은 내렸지만, 먹을 것이 없어 죽음이 가까워오자 거적으로 자신의 몸을 싸고 새끼로 허리 아래를 묶은 뒤 죽는다. 개가 뜯어먹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성호는 그 이야기를 듣고 불쌍한 마음에 차마 밥을 먹지 못한다.
유민은 거주지와 농토, 그리고 당장의 식량을 잃고 떠도는 백성이다. 문제는 이런 유민이 어쩌다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항시 있었다는 데 있었다. 유민이 발생하면 조정에서는 늘 흉년 탓을 했다. 하지만 성호에 의하면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흉년이라고는 하지만 “도시에서는 쌀값이 너무나 헐하니, 여전히 쌓아둔 곡식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흉년을 탓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유민이 발생하면 조정에서는 물론 대책을 세웠다. 죽을 쑤어 공급하는 죽소(粥所)를 차리고, 양식을 대어주는 등의 방법으로 유민을 살리고 안집(安集)시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대책이란 것이 유민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성호 또한 그런 대책에 냉담했다. 같은 글에서 그는 “맹자가 논한 왕도(王道)는 보민(保民)한 구절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보민이란 곧 좋아하는 바를 주고 모이게 하며, 싫어하는 바를 베풀지 않는 것일 뿐이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날마다 더 보태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곡식을 보태주는 것은 제대로 된 대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농민이 게을러서, 노동 의욕이 없어서, 사회 전체의 곡물 생산량이 부족해서 농민이 거주지를 떠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같은 글에서 성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각자 슬기로움과 힘이 있다.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면서 자기 삶을 넉넉히 살아나갈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비록 2, 3년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든다 하더라도, 본디 먼 앞날을 생각하고 먹을 것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그것에 의지해 살아갈 방도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던 곳을 떠나 골짜기에 뒹구는 시신이 되기까지야 하겠는가?
부모 형제를 버리고, 살던 고향을 떠나서 정처 없이 타향을 떠돌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까? 또 굶어죽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은 살기를 도모하는 동물이다. 홍수와 가뭄이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흉년이 들 줄은 누구나 안다. 간섭하지 않고 농민을 그냥 두면, 스스로 장기적인 대비책을 세운다. 식량을 모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살던 곳을 떠나 떠돌다 골짜기에 시신이 되어 뒹굴 까닭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유민의 발생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성호는 그 원인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가 시골의 의식이 넉넉한 사람을 보았더니, 때를 잃지 않고 농사를 지었고, 이득을 보기 위한 계획이 아주 치밀하여 흉년도 그를 해칠 수 없었다. 이른바 "백성의 목숨은 부지런함에 매였고, 부지런하면 의식이 부족하지 않다"는 경우였다. 이치가 이런데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은, 모두 학정(虐政)에 시달린 나머지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유민을 다시 불러 모으는 방법」)
백성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학정이 유민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성호는 학정이 없다면, 몇 해의 재해로 온 고을이 텅텅 비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는 유민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포학한 정치부터 없애야 할 것이며, 관료들의 백성에 대한 관례화된 수탈을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년 전 일본 도쿄에 며칠 머물렀다. 숙소에 들어 잠을 청하는데, 동료들이 호텔 꼭대기 층이 전망이 좋다며 전화로 부른다. 하루 종일 쏘다닌 탓에 너무 지쳐 술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주스 한 잔을 청하고 창가에 앉았다. 검은 빌딩 숲 사이로 고가도로가 거미줄처럼 나 있고, 자동차가 개똥벌레처럼 날아다닌다.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 장면에서 낮에 보았던, 도쿄 도청 옆 빌딩 일층에서 종이박스 속에서 잠을 청하는 사내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세계 2위 경제력의 나라, 첨단의 근대문명이 이룩한 이 거대 도시에 집과 일자리를 잃고 종이상자 속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라니, 현대판 유민이 아닌가. 대한민국에도 같은 유민이 있다. 도시의 큰 기차역, 지하철 등에 대낮에도 소주를 마시며 취해 뒹구는 홈리스들 말이다. 그들은 쫓겨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성호가 말한 포학한 정사가 이제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을 오직 기업의 이윤을 낳는 도구로 보고, 경쟁이 제일이라면서 사람의 노동력을 있는 대로 빨아낸 다음 가차 없이 뱉어버리는 것이 포학한 정사가 아니라면 무엇이 포학한 정사인가. 신자유주의라는 학정이 지배하는 세상이 유민을 낳은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