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조선시대 문헌을 읽어보면, 백성의 가난에 대한 자료가 흘러넘친다. 그런 자료를 볼 때마다 ‘왜 백성은 늘 가난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조선시대의 백성이란 곧 농민이고, 농민은 먹을 것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먹을 것을 생산하는 농민이 굶주린다니, 희한한 일이 아닌가.
농민이 농사의 결과물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한다면 가난할 리가 없다. 그런데 농민은 왜 농사의 결과물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없는 것인가? 성호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산과 하천이 많아 경작할 만한 땅이 적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만약 높고 가파른 곳을 깎아 없애고, 하천을 좁게 만들어 땅을 늘린다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것인가? 잘못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은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백성이 생산한 재화를 위에 있는 사람이 마구 써버리는 데 있는 것이다.(「백성의 가난(民貧)」, 16권, ‘인사문’)
답은 이처럼 명료하다. 땅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백성의 가난은 잘못된 제도에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윗자리에서 하는 일 없이 농민이 생산한 생산물을 마구 써버리는 지배층이 있기에 백성이 가난한 것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지배층이 농민의 생산물을 가져다 먹으려면 무언가 그것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대가가 없다. 대가 없이 남의 물건을 취하는 것은 절도이거나 약탈이다. 남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부터 금지 사항이었다. 한편 남이 자신의 소유물을 빼앗으면 분노하고 싸우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다. 짐승들도 다르지 않다. 사냥해서 잡은 먹이를 순순히 딴 짐승에게 내어주든가. 하지만 농민은 자신의 생산물을 빼앗기고도 늘 침묵했다. 왜인가? 법과 제도가 절도와 약탈을 거룩한 언어로 분식(粉飾)해, 그것을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했기 때문이다. 「백성을 가까이 하라(近民)」(17권, ‘인사문’)를 읽어본다.
임금은 지극히 존귀하고 백성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양쪽은 모두 먹는 것에 의지하여 산다. 다만 먹는 것은 백성에게서 나온다. ‘공(貢)’이 임금이 먹는 것이 되는데 남은 것을 위에 바치는 것을 ‘공’이라 하고, 나는 굶주리건만 위에서 되레 강제로 취해 가는 것은 ‘탈(奪)’이라 한다. ‘탈’은 백성의 소원이 아니다.
성호는 백성의 생산물을 왕에게 헌상하는 것, 곧 ‘공(貢)’을 당연시하고 있지만, 나는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성호는 왕정 이외의 국체(國體)를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았으니 일단 넘어가자. 그나마 성호는 백성이 먹고 난 뒤 남은 것을 임금에게 바칠 뿐이라고 말한다. 백성의 의식주가 먼저인 것이다. 백성이 굶주리는데 위에서 강제로 취해간다면 그것은 약탈이 된다. 여기서 성호가 ‘임금이’라고 말하지 않고, ‘위에서 강제로 취해간다면’이라 쓴 것이 비상한 흥미를 끈다. 그는 아마 ‘임금’이라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성호는 「간사한 사람이 재물을 바닥내다(奸人?財)」(13권, ‘인사문’)에서 이 문제를 재론한다. 그는 취렴지신(聚?之臣)이 재물을 긁어 들일 때 두 가지 방법을 쓴다고 한다. 취렴지신은 국가를 위해 재물, 요즘으로 치면 세금을 긁어 들이는 신하다(‘聚斂’은 ‘긁어 들인다’는 뜻이다). 분명한 것은 취렴지신은 자기 이속을 채우기 위해 취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호는 「백성의 힘을 손상시킴(傷民力)」(26권, ‘경사문’)에서 “취렴하는 신하를 둘 바에는 차라리 도신(盜臣)을 둔다”는 고전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취렴지신과, 개인의 재물을 불리기 위해 국가 재정을 훔치는 도신을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렴이란 요즘으로 치면 세원(稅源)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
성호에 의하면 취렴지신은 국가의 이익을 위한다는 구실로 백성으로부터 재물을 긁어 들이는데, 대개 두 가지 방법을 쓴다고 한다. 첫째는 협박해서 빼앗는 것, 곧 겁탈이다. 둘째는 연법(緣法)이다. 연법은 ‘법에 의한다’, ‘법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성호는 연법이 겁탈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라 말한다.
겁탈의 해는 그나마 얕다. 하지만 연법의 화는 아주 깊다. 겁탈은 한때에 그치고 말지만, 연법은 그 포학(暴虐)함이 한이 없다. 연법은 이로운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를 끼치고, 처음에는 유리한 것 같지만 끝내는 해를 끼치고야 만다. 재물을 거두어들이는 데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다. 몰래 불어나고 가만히 증가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눈치도 채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더할 수 없이 큰 도적이고, 크나큰 간악(奸惡)으로서 천백 년에 걸쳐 그 해독을 받지만 어떻게 해결해볼 방법이 없다.
폭력으로 수탈하는 것은 무섭기는 하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강도를 매일 만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법, 곧 법과 제도에 의해 정당화된 수탈은 지속적이다. 그것은 겉으로 호사스런 언어로 치장하고 있어 얼핏 보기에 이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해롭다. 처음에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이익을 베풀 것처럼 출발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해악을 끼친다. 겁탈은 주먹과 칼날이 보이지만, 연법에 의한 수탈은 소리도 형체도 없다. 하지만 점차 빼앗기는 양이 불어난다. 당하는 사람은 어느 날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락에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저항하려 하지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성호는 연법에 의한 수탈의 예로 환곡을 든다. 환곡은 춘궁기에 굶주린 농민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돌려받는 제도다. 성호는 “환곡은 애초 백성을 위해 만든 제도이고, 꾸어주고 받고 하는 사이에 이문을 보려는 것은 아니었다”(「백성의 가난」)라고 말한다. 봄에 식량이 바닥나 굶주릴 때 나라에서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 때 돌려받겠다니 얼마나 선량한 배려인가. 한데, 곡식을 주고받을 때 축이 난다고 해서 미리 1할을 모곡(耗穀)이란 이름으로 떼고 준다. 사실상 10퍼센트의 이자다. 그럴 법한 생각이라면서 동의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환곡제도의 해악성은 모곡에서 시작된다. 환곡제도는 국가가 시행하는 사업이었다. 당연히 시행에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 비용을 농민이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농민은 이미 전세(田稅)를 납부했다. 그 전세를 가지고 국가는 행정기구를 움직이고, 환곡제를 운영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환곡제를 운용하면서 축이 난다는 구실로 10퍼센트를 받는 것은 이미 국가가 가난한 농민을 대상으로 수탈의 양을 늘리겠다는 수작에 불과한 것이다.
제도에 내장된 해악성은 시간이 가면 저절로 증식한다. 성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성호에 의하면, 조선의 관습은 15두가 1석이다. 봄에 1석을 빌리면 1할을 모곡으로 떼고 13두를 준다. 가을에 갚을 때는 1할의 이자를 덧붙여 16두 5승을 낸다. 13두를 받고 16두 5승을 내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여기에 되질을 할 때 마당에 떨어지는 것을 보충해야 한다면서 얼마를 더 내라 하고, 또 운반할 때 비용이 든다며 얼마를 더 내라고 한다. 이렇게 덧붙은 별별 명목으로 19세기가 되면 1석을 봄에 빌려 먹고 가을에 50퍼센트에 해당하는 7, 8두를 이자로 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곡을 빌려줄 때는 작은 됫박을 쓰고, 받을 때는 큰 됫박을 쓴다. 국가는 또 환곡에 부가된 이자를 재정에 투입했다. 이 지경이 되고 보니, 환곡제도가 잘못인 것을 알지만 고칠 수가 없다. 이 불량하기 짝이 없는 법으로 국가와 아전, 관료들이 이득을 보았기 때문이다.
환곡은 수탈의 일례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농민의 대부분은, 토지를 넉넉히 가진 자작농이 아닌 소작농이다. 소작농의 생산물은 이렇게 처리된다.
받옛날 지주는 전세와 종자는 자신이 냈는데 지금 삼남(三南, 경상, 전라, 충청) 지방에서는 그것을 모두 소작인에게 내게 하고, 어떤 자는 또 볏짚까지 빼앗고 뇌물까지 받아먹는다.(「백성의 가난」)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은 결과 쌀 10가마니를 수확했다 하면, 5가마니를 지주에게 땅값으로 바쳐야 한다. 지주는 자신의 토지에 대한 세금으로 나라에 수확의 10분의 1, 곧 가마니를 바쳐야 하지만, 이것조차 소작인에게 떠넘긴다. 5가마니에서 가마니를 빼면 4가마가 남는다. 이것을 소작인이 모두 먹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종자를 빼야 한다. 종자는 원래 지주가 부담하는 것이지만 소작인에게 미루는 것이다. 종자 1가마니를 빼면 3가마니가 된다. 여기에 환곡으로 빌려 먹은 것을 뺀다. 지주가 내년에 땅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하면 뇌물까지 내어야 한다. 농민이 어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꼭 같은 노동을 하고 남보다 훨씬 적은 급료를 받는 일이 도처에 널려 있다. 비정규직, 시간강사, 여성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청소년의 아르바이트 등의 경우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비정상적이라 하지만,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그 상황을 ‘정상’으로 하여 돌아간다. 왜냐? 그 모든 차별과 불평등, 노동력의 수탈은 법과 제도로 정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법과 제도는 누가 무엇 때문에 만드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굳이 찾을 필요가 있을까? 물음을 던지는 내가 어리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