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에게서 찾은 만족스러운 국가
어떤 국가가 우리에게 가장 만족스러운가? 성호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성호는 「봉건」(26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周)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자 72개의 제후국이 생겼고, 그중 ‘희(姬)’씨 성의 나라가 52개였다.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현달한 제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 의도는 오직 희씨가 혹시라도 장구하게 지배하지 못할까 염려하는 데 있었던 것이니, 자신을 위한 계책으로는 치밀한 것이겠지만, 덕 있는 사람을 제후로 세워야 한다는 뜻에는 어긋난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 더 따져볼 것이 없지는 않지만, 이 자리에서는 제쳐두고 논하지 않겠다.
주나라 무왕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내쫓고 천하를 차지하자, 즉시 자신의 혈족인 희씨(무왕은 ‘姬’씨다)와 공신들, 예컨대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여상(呂尙) 같은 이들을 제후로 봉한다(여상은 이른바 강태공이고, 그가 봉함을 받은 나라가 제나라다).
『맹자』를 위시한 유가의 경전과 역사서는 은나라 주왕을 워낙 폭군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무왕의 봉기는 대체로 학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혁명으로 평가된다. 아마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성호는 이 글, 곧 「봉건」의 서두에서 “민중의 마음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민중의 마음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 법이니, 이것은 천자나 제후나 꼭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바, 무왕의 쿠데타가 성공한 데에는 당시 민중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맹자』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비단과 음식과 물을 갖추고 무왕을 맞이했다고 전하고 있지 않은가.
민중은 무왕과 함께 주왕의 폭정을 끝장냈지만, 이후 벌어진 사태는 민중의 희망과 국가권력을 움켜쥔 쿠데타 세력의 욕망이 결코 행복한 일치를 보이지 않았음을 전한다. 민중의 지지를 업고 천하를 차지한 무왕은 자신의 혈족과 공신들에게 나라를 쪼개어 나누어주었다. 그것은 희씨와 공신들의 영원한 지배를 위해서다. 정치권력을 장악하면 자신의 혈족과 자신을 돕던 자들에게 권력을 나누어주는 것은 실로 오래된 전통인 것이다.
성호는 이 부분을 파고든다. 그 권력 분배는 무왕과 무왕의 일족을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이었겠지만, 민중을 위해서는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그 권력은 ‘덕 있는 사람’, 곧 도덕적이면서 유능한 인물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한데, 성호의 이런 추리는 이상한(?) 생각으로 치달을 수 있다. 곧 천하는 왕의 혈통이나 공신의 후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인품과 능력을 갖춘 자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왕권을 부정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성호는 더 이상의 논의를 멈춘다.
나는 폭군 주왕과 쿠데타를 일으켰던 무왕 모두 국가를 도구화하여 인간을 지배하려 했던 지배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성씨와 공신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던 것은 그들을 든든한 울타리로 삼아, 자기 씨족의 영원한 지배를 가능케 하려는 행위였을 뿐이다. 성호 역시 그 점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천하를 분봉(分封)하여 공을 세운 사람과 함께 누린 것은, ‘사(私)’ 중의 ‘공(公)’이요, 천하를 주(州)와 군(郡)으로 만들어 천하를 동원해 ‘한 사람’을 떠받들게 한 것은 ‘사’ 중의 ‘사’다. 결코 천리(天理)에 맞지 않은 것이다.
봉건제를 통해 천하의 땅을 혼자 차지하지 않고 갈라준 것은 공정한 것 같으나 결국 사심의 소산일 뿐이다. 전국을 주과 군이란 행정단위로 갈라서 천자가 직접 통치한 군현제 역시 공정한 것일 수 없다. 오직 한 사람의 독재자, 곧 천자만을 떠받든다는 점에서 그것은 봉건제보다 더한 불량한 제도일 뿐이다. 그것은 사심 중의 사심이다. 성호의 생각은 휘황한 언어로 포장된 왕정이 갖는 모순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다.
왕의 권력이 사라진 21세기는 어떠한가? 문제는 동일하다. 아마도 국가가 존재하는 한 이 문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란 이름 아래 선출직, 곧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당선을 위해 공약을 내걸고 민중의 표를 긁어모으지만, 당선 이후 이런저런 핑계로 즉각 민중의 소망을 배반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지구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성호의 지적은 왕정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국가와 정치권력의 속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가(儒家)의 정치관은 왕과 국가는 백성의 행복한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말해왔고, 현대 민주주의는 국가의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라 말하지만 그 말은 수사일 뿐, 국가는 사실 극소수 지배계급이 절대다수의 국민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적 도구일 뿐이다. 성호는 「의논은 아래서부터 일어나야 한다(議自下起)」(13권)에서 국가 권력이 작동하는 실상을 이렇게 지적한다.
내가 보건대 후세 조정의 의논이란, 반드시 대관(大官)이 억지 주장을 하여 결단했고, 하관(下官)들은 참여할 방도가 없었다. 그 지혜와 대책을 논하자면, 대관이 하관보다 반드시 나을 것이 없는데도, 세력과 지위에 눌려 아랫사람은 어쩔 수가 없다.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 훈신ㆍ척신ㆍ권신ㆍ총신들이 임의로 국사를 무너뜨리고 어지럽혀 차차 멸망에 이르고 만다.
훈신ㆍ
국가가 언제나 지배계급의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고, 아랫사람보다 나을 것도 없는 지배계급의 의사가 언제나 관철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성호는 봉건제로 회귀하자는 의견을 내놓는다. 조선이란 중앙집권제 국가에서 살았던 성호로서는 뜻밖이다. 다만 그는 봉건제를 실시하되, 무엇보다 분봉의 규모, 즉 제후국의 ‘사이즈’를 되도록 줄이라고 말한다. 반란, 곧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나라의 사이즈를 줄이자는 것이다. 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는 소국들의 광범위한 존재! 이것이 성호의 첫번째 아이디어다. 두번째로는 정기적으로 토지가 개척되어 있는가, 백성이 편안한가, 노인을 잘 봉양하는가,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있는가 등의 항목으로 제후들의 업적을 평가해서 내쫓거나 좀더 큰 봉토(封土)로 옮겨준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어떤 지역에 봉해진 제후가 영원히 그 지역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호의 이런 구상은 실천될 수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실천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21세기의 봉건제라니, 당치도 않다. 하지만 성호의 상상력을 적극 이해할 필요는 있다.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국가의 크기가 줄어들면, 당연히 국가 권력의 규모도 축소된다. 나는 거주민의 의사가 직접 작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국가가 이상적인 국가라고 생각한다(아니, 그것은 어떤 차원에서는 국가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럴 경우에만 국가 권력을 가로채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배계급을 배제할 수 있을 것이다. 성호의 작은 제후국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역할은 천자가 하지만, 21세기의 소국에서는 거주민이 직접 할 수 있다. 나의 삶과 운명을 국가나 지배계급에 위탁하지 않고, 내가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그런 국가가 우리에가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