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가난
“가난은 선비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선비란 벼슬이 없는 자의 칭호이니, 어떻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가난이란 선비의 상사다(貧者士常)」, 11권) 왜 그런가. 성호는 「주자문자전(朱子文字錢)」(14권)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사민(四民) 중 오직 선비만이 가난을 상사로 여긴다. 농사꾼과 장인, 장사꾼은 노동을 하여 생계를 꾸려야 하는 법이니, 굶주리고 헐벗을 경우 그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 선비의 경우는 오직 책에만 마음을 쓰므로 실오라기 하나, 곡식 한 낟도 자신이생산하지 않는다. 만약 자기의 시대에 벼슬할 일 없으면 입성과 먹을 것이 나올 데가 없다.
사민들 중 농부와 공장이, 상인은 각각 몸을 부려 먹을 것을 생산하는 노동에 종사한다. 하지만 선비는 오직 책을 읽는 사람일 뿐이다. 실오라기 하나, 곡식 한 알을 생산하지 못한다. 그러니 먹을 것이 나올 데가 없다.
옛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讀書曰士, 從政曰大夫’다. 곧 책을 읽는 사람이 선비고, 벼슬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부다. 대부가 됨으로써 그는 정신노동이겠지만 비로소 일이란 것을 하게 되며, 그 대가로 녹봉을 받아 구복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성호의 시대에는 극소수만 관료가 되었을 뿐 대부분의 양반은 관직에서 배제된 상태에 있었다. 보통의 선비에게 녹봉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비의 가난은 관료의 예비군을 사족(士族)으로 제한한 데서 나온 것이다. 관료가 되기 위한 사족은 자신들만의 에토스를 갖추어 비사족(非士族)과 자신을 구분했던 바, 그 에토스를 갖추는 데 상당한 재력이 필요하였다. 그 재력이란 당연히 토지와 노비다. 한데, 사족의 증가는 토지와 노비를 분할하여 그 규모를 축소하였던 바,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족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태는 결과적으로 사족을 해체하는 쪽으로 번져갔다. 궁핍이 선비의 존재 근거인 독서, 곧 학문하는 행위 자체를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호 역시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학문을 위한 생계대책(爲學治生)」(7권)에서 성호는 궁핍이 낳은 이상한 현상을 든다.
내가 지금 세상의 훌륭한 선비들을 보니, 어떤 이는 오직 문학에만 뜻을 두고 집안 일을 팽개쳐버린 나머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조상을 받들고 부모를 봉양할 수 없고, 아내와 자식들은 헐벗고 굶주리게 된다. 그의 뜻도 따라서 변하니, 아무리 후회해도 미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비들은 오로지 문학에만 전념한다. 집안 살림살이는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허물어진다. 결국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부모와 처자식은 헐벗고 굶주리게 된다. 각별히 주목할 부분은 바로 그 다음의 ‘뜻도 따라 변하니, 후회해도 미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부모와 처자가 굶주리게 되면, 자신이 원래 지키고자 했던 학문에 대한 뜻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가난 때문에 친구에게 버림을 받고, 아내와 첩에게 괄시를 당하고, 남에게 천대를 받는다. 마음도 저절로 옹졸해진다(「가난이란 선비의 상사다」). 그렇지 않은가. 주머니가 비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처참한 생각이 든다. 이제 그는 마음을 달리 먹는다. 권세가를 찾아다니고 비루한 일을 하여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가 가졌던 원래의 문학 혹은 학문에 대한 초발심은 사라지고 만다. 후회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성호가 말하는 궁핍으로 인한 지식인의 변절에는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나름의 불가피성이 있다. 하지만 성호는 선비의 삶의 본질적 국면은 가난이기 때문에 가난을 저주하며 부를 축적할 욕망을 품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 욕망을 품는 순간 그는 이미 선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 처자가 굶는 것을, 본인의 학문을 향한 굳은 의지로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학문을 향한 의지가 과연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성호는 「학문을 위한 생계대책」에서 농사도 장사도 그 어떤 것도 가난한 선비의 생계대책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원래 재산이 없는 사람은 앉아서 굶을 뿐이고, 땅뙈기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아끼고 검소하게 사는 것이 상책이다. 변변치 못한 어려운 살림을 견디지 못하거나 남의 비웃음을 두려워하면 끝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굶든지 아니면 아껴서 견디든지! 한심한 결론이다.
근리한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성호는 허형(許衡, 원나라 때의 학자)의 견해를 인용한다. 허형은 생활이 어려우면 학문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먼저 생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선비가 할 생업이란 당연히 농사가 되어야 하고, 상업은 유가가 천시했던 말리(末利)이기는 하지만, ‘의리를 잃지 않게’ 한다면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다(「학문을 위한 생계대책」). 곧 윤리적 방법으로 부를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융통성이 있는 견해가 아닌가. 허형의 말을 두고 ‘천고에 뛰어난 견해’ 『원사(元史)』의 평가가 있으니, 나 역시 동의하고 싶다. 하지만 성호는 왕양명이 그 견해를 비판했다고 하며, 왕양명의 비판에 동의한다. 왜인가?
학문을 하는 것은 모두 의리(義理)에 관계된 일이요, 살림살이를 하는 것은 이해에 관계되는 일이다. 이해는 사람들이 각기 스스로 얻으려고 하는 것이기에 권장할 필요가 없다. 학문을 하는 것은 비록 살림에 의지하는 것이지만, 만약 살림살이를 먼저 해야 할 일로 삼는다면 옳지 않는 것이다.
성호는 학문은 살림에 의지하지만, 살림을 급선무로 여긴다면 필연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의도가 학문을 집어 삼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답답한 주장이지만, 그의 말을 긍정적인 쪽으로 해석해 보자. 학문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벌인 사업이 잘 되면 그쪽으로 마음이 쏠린다. 결국 노골적으로 부를 추구하게 된다. 유학 자금을 벌기 위해 벌인 과외사업이 너무 잘 되어 유학을 포기했다는 강남의 어떤 학원강사가 이런 경우다. 하나, 이해는 할 수 있을지언정 이런 엄격한 태도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는 이렇게 엄격하지 않았다. 예컨대 18,9세기 중국 강남 저명한 고증학자 중 상당수는 상인 출신이었다.
성호가 따르는 것은 주자가 제시한 대책이다. 서두에서 인용한 「주자문자전」에는 주자가 임택지(林擇之)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는데, 그 요지를 인용하면 이러하다.
군색함이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라 온갖 일에 절약을 해도 여전히 아침저녁 끼니를 이을 수가 없을 지경이거늘, 흠부(欽夫, 張?의 자)는 책을 인쇄하는 일을 자못 마땅찮게 여겨 되레 ‘따로 소소한 생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해롭지 않겠다’고 한다. 이것은 정말 이해하지 못할 말이다. 달리 생계 대책을 꾸미는 것은 아마도 더 비루한 일이 될 것 같다.
성호는 주자의 아이디어를 따라 농사를 짓거나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주자처럼 책을 찍어 팔아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출판업은 학문과 관계있는 비교적 점잖은 일이기에 성호는 주자의 생각에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호의 시대에 조선사회는 민간의 출판업이 극히 미미한 시대였다. 출판업 역시 실현가능성이 없는 아이디어였을 뿐이다.
성호의 주장을 따르면 지식인들은 아무런 생계 계책이 없어도 굶주림을 참고 독서에만 열중해야 할 것이다. 그 개결(介潔)한 삶의 자세는 물론 본받아야 할 것이지만, 그런 자세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박제가(朴齊家)는 그래서 유의유식(遊食)하는 양반들을 상업에 종사하게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역시 실현되지 않았다.
성호의 이야기를 길게 꺼내게 된 동기는 대학의 비정규직교수(시간강사) 때문이다. 대학에서 박사학위가 없는 오래된 강사들을 해고한다고 했다가 그만둔 해프닝이 작년에 있었다. 내 주위에도 해당되는 사람이 있었다. 공부한 결과가 이거냐며 자학적인 말을 내뱉는 그의 참담한 표정은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비정규직교수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학과 나라가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할 터인데도, 교묘한 논리로 세월을 보내며 대책을 외면한다. 한데 지식인은 궁핍을 참고 학문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중세적 생각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까닭에 지식인의 개결한 자세를 말하는 성호에게 일부 찬동하면서도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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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요즘 필자는 조선 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했는지, 그 결과 어떤 인간형이 탄생했는지에 대해 공부 중이다. 최근작 『열녀의 탄생』과 연계하여, 조선 시대 남성-양반이 그들의 에토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식화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성다움과 양반다움으로 남성-양반은 어떻게 여성, 백성들과 구별 짓고 우월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 면면을 연구할 계획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안쪽과 바깥쪽』,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열녀의 탄생』, 『시비是非를 던지다』, 『사라진 서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