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는 정당한 것인가
중종 때의 명신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의 일화다(「사재의 미담(思齋美談)」, 10권). 사재는 자신이 잘 알고 지내는 황씨란 사람이 돈을 모으느라고 남에게 험담을 듣자 편지를 부친다.
나는 20년 동안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고 있습니다. 낡은 오두막집 몇 칸, 메마른 땅 몇 마지기, 베옷 몇 벌이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누우면 남은 땅이 있고, 입성에는 여벌의 옷이 있고, 밥그릇 밑에는 남은 밥이 있지요. 이 세 가지 남은 것으로 세상사 거리낄 것 없이 살고 있습니다. 천 칸의 큰 저택과 만종(萬鍾)의 녹봉, 백 벌의 비단옷을 마치 썩은 쥐새끼처럼 봅니다. 살아가는 데 없을 수 없는 것은 책 한 시렁, 거문고 하나, 붓과 벼루 한 갑(匣), 신발 한 켤레, 베개 하나, 시원한 마루 한 칸, 따뜻한 방 한 칸, 지팡이 하나, 나귀 한 필이니, 이것만 있으면 노년을 보내기 충분하지요.
이 정도면 최소한의 살림이다. 정말 말끔하다. 사실일까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김정국은 윤리와 도덕을 최고의 원리로 내세웠던 기묘사림의 일원이었으니, 그의 말끔한 삶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사재의 청빈을 미담으로 전한 성호 역시 『성호사설』 곳곳에서 자신의 군색한 살림살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또한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 「삼락(三樂)」(9권)이란 글에서 성호는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다. 첫째 큰 전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나 온전히 시골에서 평생을 마치게 된 것, 둘째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은 온화한 고장에서 태어난 것, 셋째 여느 백성은 한 해 내내 노동해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는데, 자신은 그래도 조상의 음덕으로 편히 지내며 굶주림을 면하고 사는 것이 세 가지 즐거움이다.
성호는 대부분 소작농이었던 당시 농민에 비하면 결코 궁핍하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적극적으로 부를 추구하지 않았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왜 성호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재산을 경영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의 조부 이지안(李志安)과 관련된 일화를 보자(「학사의 짧은 편지(鶴沙短簡)」, 5권). 이지안이 평안도 성천(成川)의 부사로 있을 때 당시 평안도 관찰사 김옹조(金應祖)가 보낸 편지에 얽힌 이야기다. 성호에 의하면 이 편지는 길이가 30cm가 안되고, 넓이는 30cm가 약간 넘는, 얇고 거친 종이에 쓴 것이다. 성호가 살았던 그때 수령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지는 그 편지지보다 배로 크고 두꺼웠으며, 그 값도 7,8배는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평안감사의 편지지가 왜 그리 초라했던가. 평안도는 물산이 넉넉한 지방이고, 평양감사는 또 돈자루를 거머쥐고 있는 자리인데 말이다. 성호는 말한다.
대개 종이란 물건은 사대부 자신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재물은 반드시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인데도 위에서는 그런 사정을 돌보지 않는다. 백성들이 과중한 물자를 대느라 괴로워하고 있음을 이 경우를 보고도 알 수 있다. 대저 정치가 밝지 않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고, 공정하지 못한 것은 청렴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청렴하지 않은 것은 검소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고, 검소하지 못함은 자기 분수에 만족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양반이 소비하는 모든 것은 백성이 몸을 부려 만든 것이다. 양반의 사치는 곧 백성의 고통이다. 그러니 어떻게 함부로 쓸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마음이 그 초라한 편지지에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백성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다스리는 자는 검소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성호의 생각이리라. 한데, 성호가 부를 추구하지 않는 데는 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해와 인(仁)·부(富)의 관계(利害仁富)」(7권)에서 그는 『논어』 「자한(子罕)」의 ‘공자는 이(利)를 드물게 말하였다.’라는 구절을 인용한 뒤 ‘만약 자신을 이롭게 하면 반드시 남을 해치게 된다.’는 깊이 음미해야 할 선유(先儒)의 말씀을 다시 끌어온다. 성호는 이 말을 인용하며 혹 지나친 말이 아닌가 의심한다. 요지는 이렇다. 농사를 지어 먹고 누에 쳐서 옷을 지어 입는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해가 된다고 하는가? 성호는 다시 『맹자』에 인용된 양호(陽虎)의 말을 끌어온다. “인(仁)을 실천하면 부자가 될 수 없고, 부자가 되면 인을 할 수 없다.”(『맹자』 「등문공(?文公)」) 인은 알기 쉽게 말해 이타적 사랑이다. 사랑을 실천하면 부자가 될 수 없고, 부자가 되면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땅을 개간해서 힘써 농사를 지어 재물을 쌓아 부자가 되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면 후한 녹봉을 받아 부자가 된다. 이것은 당연한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닌가. 왜 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치를, 인을 실천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하는 것인가. 성호의 답은 이렇다.
이(利)란 천하의 모든 사람이 모두 바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지만 노리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내가 차지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간절히 바라지만 얻을 수가 없는 사람이 필시 많을 것이다. 하늘이 이 이(利)라는 것을 내기는 하였지만, 애당초 나만을 위해 베푼 것은 아니었다. 한데, 지금 나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없다면, 그것을 두고 반드시 해로운 것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무언가 집히는 것이 없는가. 지금 세상으로 문제를 옮겨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기업, 아니 인간은 이윤을 향해 질주한다. 최후의 승자, 곧 이윤을 독점하는 기업(혹은 인간)은 소수이거나 하나다. 경쟁에서 탈락한 기업과 사람은 도산한다. 그가 만들었던 모든 상품은 순식간에 무의미한 사물이 된다. 상품의 미세한 차이가 승패를 결정하기에 그 무의미할 수 있는(아니 사실상 무의미한)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구성하는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신체를 소모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원리로 채택한 사회는, 절대 다수의 인간을 결핍자, 패배자로 양산한다. 이것이 ‘진실로 자신을 이롭게 하면 반드시 남을 해치게 되는’ 이유다. 그런데 그 이(利)는 과연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가.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늘, 곧 자연의 소산물이 아니던가. 따라서 이는 원천적으로 독점할 수 없는 것이다.
성호는 부자가 된 소수의 승자가 갖는 문제를 다시 지적한다. 성호는 재물이 부자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일단 인정하지만, 그 재물은 원래 남을 구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성호가 살던 시대는 혈연과 지연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였다. 종족은 자신에게 보태 주기를 기대하고, 이웃은 도와주기를 바라고, 길거리의 가난뱅이도 찌꺼기나마 먹여주기를 원한다. 도와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결핍자, 패배자들이다. 하지만 부자는 승부를 겨루어 이겼기 때문에 패배자를 도와줄 마음이 없다. 인(仁)을 부의 축적과 동시에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 성호의 논리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 그렇다. 이익을 향한 질주, 무한경쟁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몰가치한 것으로 여긴다. 이윤은 소수 자본가의 독점물이 되고, 더 큰 경쟁의 승리를 위해 자본의 덩치를 키우는 데 다시 투자될 뿐이다. 수백 억, 수천 억, 수조 원의 돈을 가지고 있어도 자선에 손이 나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인(仁)과 같은 덕목이 들어갈 구석이 없어지는 이유다. 성호는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 “부자가 되려면 부끄러움을 참고 오래된 친구와 절교하고, 의(義)를 등져야만 한다.”
수천 억, 수조 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 부는 다른 사람을 가난하게 만듦으로써 쌓인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 한 인간이 태어나 무슨 일을 하기에 그 많은 재산을 쌓을 수 있는지. 또 그런 규모의 부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성호의 글을 읽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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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요즘 필자는 조선 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했는지, 그 결과 어떤 인간형이 탄생했는지에 대해 공부 중이다. 최근작 『열녀의 탄생』과 연계하여, 조선 시대 남성-양반이 그들의 에토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식화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성다움과 양반다움으로 남성-양반은 어떻게 여성, 백성들과 구별 짓고 우월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 면면을 연구할 계획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안쪽과 바깥쪽』,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열녀의 탄생』, 『시비是非를 던지다』, 『사라진 서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