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의 생명사상
아주 쉬운 글부터 한 편 읽어보자. 「새 새끼를 죽이고 파리를 잡다(殺?捕蠅)」(9권)란 글이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이 참형을 받을 적에 한 말이라 한다.
나는 평생에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 다만 궁을 나올 때 상(上, 임금)의 급박한 명을 받들어, 더운 여름날 집을 짓는 공사를 벌여 옛 집을 철거했는데, 기왓장 아래 참새 새끼 수천 마리가 모두 죽고 말았기에 늘 차마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의 죽음은 그 앙화를 입은 것인가?
인성군 이공은 선조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그는 이복형인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하고자 했던 폐모론에 동참한다. 내켜서 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또 도덕적으로 옳은 일은 아니었다. 인조반정 이후 당연히 문제가 되었다. 인조 1년 10월 27일 우찬성 이귀(李貴)는 인성군의 폐모론 동참을 들추어낸다. 결과는 불문가지다. 복잡한 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인조는 자살을 명한다(『인조실록』 6년 5월 14일). 인성군은 죽기 직전 자기 죽음의 이유를 찾는다. 새 집을 짓노라 더운 여름 지붕의 기와를 벗겼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기와 아래 살던 참새 새끼를 모두 죽게 만든 것이 자기 죽음의 이유라는 것이다.
같은 글에 이야기 한 편이 더 실려 있다. 조선전기의 명재상 상진(尙震)은 외아들이 죽자 울면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해물(害物)하려는 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다. 다만 평양감사로 있을 때 백성들에게 매일 파리를 잡으라고 시켰더니, 시장에서 파리를 파는 자까지 나타났다. 아들이 죽은 것은, 그 일의 응보인가?” 두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미물의 생명까지 존중하는 마음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때문에 성호 역시 “이 두어 가지 일은 꼭 그래서 생긴 것은 아니겠지만, 또한 군자의 물(物)을 사랑하는 경계가 될 수 있으므로 같이 써 둔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생각이 어떤 특정한 계기에 나온, 우연한 일회성 발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호는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잡아먹을 생각을 하다(對生思食)」(7권)에서 상진의 말을 또 전한다.
영의정 상진은 “어찌 차마 살아 있는 짐승을 앞에 두고서 잡아먹을 것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 말은 듣고는 마땅히 조심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닭이나 개는 미물이지만, 그것들을 보며 고기 맛을 평하면서 좋다, 나쁘다, 삶아야 한다, 구워야 한다는 등의 비교하는 말을 들으면,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힘이 닿는 것이라면 모두 죽여서 먹을 것을 생각하는 것은, 이른바 금수나 가질 수 있는 약육강식의 도인 것이다.
상진의 말을 다시 듣건대, 파리의 목숨을 빼앗은 것을 자책했던 그의 마음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 존중 사상은 성호의 사유에서도 당연히 중추를 이룬다. 「고기 먹는 일(食肉)」(12권)이란 글의 일부다.
백성은 나의 동포이고 만물은 나와 동류다. 초목은 지각이 없어 혈육을 가진 동물과 구별되기에 그것을 취하여 살아갈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날짐승ㆍ길짐승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의지를 갖는다는 점에서 사람과 동일하다. 어떻게 차마 해칠 수가 있단 말인가? 동물 중에서 사람을 해치는 동물은 이치상 마땅히 잡아 죽일 수 있다. 또 사람이 기르는 가축들은 사람에 의해 길러지니, 사람에게 그 생명을 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산에서, 물에서 절로 나고 절로 자란 것들이 모두 사냥과 고기잡이의 대상이 되는 것은 또 무슨 이유가 있어서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만물은 사람을 위해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사람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다.” 이 말에 정자(程子)는 이렇게 답했다. “좋다. 이는 사람의 피를 빨아 먹고 산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를 위해 생겨났다는 말이냐?” 정자의 변론이 또한 분명하다.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생명의 의지는 동물과 인간이 동일하다. 그러니 동일한 생명인 인간이 어찌 다른 생명을 먹어 그 의지를 꺾을 수 있겠는가? 인간이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은 원래 인간이 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일 뿐이다(물론 이때의 축산은 현대의 자본주의적 축산업과 같은 것이 아니다). 저 산과 물속에서 절로 생장한 것들이 어찌 인간에게 죽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생명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성호의 생각은 인간중심주의를 허문다. 성호는 서양에 원류를 두는 인간중심주의도 비판한다. 만물이 모두 사람을 위해 생겨났다면, 사람이 먹지 않는 벌레는 왜 생겨났느냐는 물음에 서양 사람은 “새는 벌레를 잡아먹고 살이 찌는데, 사람이 그 새를 잡아먹으니, 이것이 곧 사람을 위해 벌레가 생겨난 까닭인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성호는 이 답이 궁색한 답이라고 비판한다.
유학자 성호는 생명 존중을 말하며 불교의 ‘자비’가 옳은 것 같다고 말한다. 자비란 당연히 살생을 금지하는 자비심이다. 다만 성호는 대책 없는 근본주의자는 아니다. 노인의 봉양, 제사, 손님 접대, 병의 치료에 고기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육식은 군자로서 부득이한 일인 만큼 부득이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함부로 살생을 자행하거나 기탄없이 욕심만을 채우려 한다면 그 결과는 약자의 살을 강자가 뜯어먹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호사설』의 생명사상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나에게 만물이 갖추어져 있다(萬物備我)」(20권)를 읽어 보자.
맹자께서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하였다. 이것은 인(仁)의 본바탕이 지극히 큼을 형용한 말이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의 있는, 사해(四海)와 팔황(八荒), 길짐승·날짐승과 풀·나무 등은 모두 다 물(物)인데, 인(仁)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보아 자신에게 귀속시킨다. 이런 까닭에 저 수많은 백성도 모두 나의 백성이고, 저 오랑캐들도 모두 나의 오랑캐이며, 길짐승·날짐승과 풀·나무도 모두 나의 길짐승·날짐승과 풀·나무인 것이다.
‘나’란 존재는 물(物)의 상대다. 비록 저와 내가 서로 모습은 다르지만, 내가 저들을 나의 바깥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모두 껴안아 그것들에 대해 각각 적절하게 처우하는 방도가 있다면, 곧 만물이 나의 능력 범위 안에 있게 되어 빠지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성호가 기대고 있는 ‘만물비아(萬物備我)’는 『맹자』 「진심장(盡心章)」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맹자가 말하였다.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자신을 돌이켜보아 성실하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고, 서(恕)를 힘써서 행하면 인(仁)을 구함이 이보다 더 가까울 수 없다.’”(孟子曰:“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 强恕而行, 求仁莫近焉.”) 만물이 모두 나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세상 만물, 곧 수많은 백성, 오랑캐, 금수, 초목이 비록 나와 유가 다르고 모습이 다르고 성질이 다를지언정, 모두 나와 구별되지 않는, 또 차별되지 않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말이다. 인간 역시 그것들과의 연관 속에 있는 존재이며, 그 연관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물과 인간, 미물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사물과 인간을 구별하지 않는 것, 그것들의 생명의지와 존재 이유를 존중하는 것이 바로 ‘만물비아’의 사유다. 자신과 만물이 동등한 존재임을 생각하고, 그 마음을 다른 존재에 미루어나간다면(곧 恕), 인(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그보다 더 크나큰 것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생명사상이 유가의, 그리고 성호 사상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산과 강을 마구 허물고 파내고 있다. 그것들의 존재 이유, 그것들 속에 깃든 생명은 돌아볼 필요가 없는 타자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니, 어디 인간의 생명인들 어찌 생명으로 보이겠는가? 성호의 생명사상을 되씹어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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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요즘 필자는 조선 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했는지, 그 결과 어떤 인간형이 탄생했는지에 대해 공부 중이다. 최근작 『열녀의 탄생』과 연계하여, 조선 시대 남성-양반이 그들의 에토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식화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성다움과 양반다움으로 남성-양반은 어떻게 여성, 백성들과 구별 짓고 우월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 면면을 연구할 계획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안쪽과 바깥쪽』,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열녀의 탄생』, 『시비是非를 던지다』, 『사라진 서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