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1976년의 ‘이탈리아 가극단 제8회 공연’이었으니까, 35년 전의 일이군.”
F “35년!… 마치 엊그제 같은데. 그해 이탈리아 가극단 일본공연에서 마스카니Pietro Mascagni(1863~1945)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와 레온카발로Ruggero Leoncavallo(1857~1919)의 <도화사(민속극 배우) Pagliacci>가 쌍벽을 이루기도 했죠. 플라시도 도밍고Plácido Domingo(1941~ )는 아직 중견이었는데, 그때 처음 일본에 온 것 같은데요. 이 두 곡을 연속해서 불렀어요. 도밍고는 눈물에 침까지 흘려가며 열창했죠. 그걸 보고 나도 자꾸 울고 말았죠.”
S “푸치니Giacomo Puccini(1858~1924)의 <토스카 Tosca>는 여러 버전으로 봤는데, 뭐니 해도 최고는 1976년 제작의 영화판일 거요. 카바라도시 역의 도밍고는 물론이고, 토스카 역의 라이나 카바이반스카Raina Kabaivanska(1934~ )는 외모도 노래도 아름다웠어. 하지만 더 멋졌던 건 악역 스칼피오를 연기한 셰릴 밀른즈Sherill Milnes(1935~ )였지. 여러 스칼피오를 봤지만 그 이상의 명연기는 없었어.”
F “그 악의 매력이 있었기에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 vissi d’amore>가 여전히 빛나는 거죠.”
S “그런데 베르디의 <돈 카를로 Don Carlo>도 나는 명작이라고 봐요. 1996년에 파리 샤트레좌에서도 봤고 지난해에는 MET 라이브 뷰잉으로도 봤지. 둘 모두 주역인 테너는 로베르토 알라냐Roberto Alagna(1963~ ). 지난해 MET에서 로드리고 역을 맡은 바리톤 사이먼 킨리사이드Simon Keenlyside가 좋았어.”
F “킨리사이드는 좀 걱정스러울 정도로 진지해서 정통파. MET에서 공연한 토마Charles Louis Ambroise Thomas(1811~1896)의 <햄릿 Hamlet>은 마치 그가 있었기에 성공했다는 느낌. 정말 적역이었어요.”
S “우리가 킨리사이드를 처음 본 건 2002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마술 피리>에서 파파게노 역이었지. 그때는 자전거를 타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노래했던 그가 지금은 중후한 본격파가 됐어.”
F “이탈리아 작품 얘기를 덧붙이자면, 이것도 MET 라이브 뷰잉으로 본 건데,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1797~1848)의 <돈 파스쿠알레 Don Pasquale>에 포복절도했죠. 안나 네트레프코Anna Netrebko(1972~ )가 깡총 거리고 돌아다니며 희극을 멋지게 불러제낄 줄이야!”
S “좀체 현대 오페라를 볼 기회가 없지만, 2010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는 볼프강 림Wolfgang Rihm(1952~ )의 <디오니소스 Dionysos>가 상연됐지.”
F “그것 정말 좋았어! 니체의 텍스트를 활용한 오페라. <아폴론적/디오니소스적>이란 것도 처음으로 생생하게 체감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S “그리고 뭐니해도 MET 라이브 뷰잉으로 본 마스네Jules Massenet(1842~1912)의 <타이스 Thaïs>가 좋았어요. 르네 플레밍Renée Fleming(1959~ )이 분방하고 방종한 고급 창녀의 성적 매력에서부터 신을 향한 사랑으로 몸을 태우는 성녀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연기했지. 수도승 아타니엘을 연기한 토머스 햄슨Thomas Hampson(1955~ )이 아니더라도 그 매력에 푹 빠져들게 돼요.”
F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끝이 없어요. 마치 음악 그 자체처럼…”
S “맞아. 옛날 얘기를 하나 하자면, 내가 1984년에 처음 런던에 갔을 때 코벤트가든에서 도밍고가 베르디의 <오셀로>를 불렀어. 데스데모나 역을 맡은 건 분명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1944~ )였던 것 같은데. 하지만 너무 비싼 티켓밖에 남아 있질 않아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이 나요. 그때가 바로 도밍고의 전성기였지. 바르셀로나에서 테레사 베르간사Teresa Berganza(1935~ ) 주연의 <카르멘>을 볼 수 있게 됐을 때의 기쁨 같은 것도 떠오르네. 그래도 그때는 나 홀로 여행이어서 누구와 기쁨을 나눌 수도 없었어.”
F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파리 가르니에좌에서 본 드비시Claude Achille Debussy(1862~1918)의 <펠레아스와 멜리잔드 Pelléas et Mélisande>도 잊을 수 없어요.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로 관능적이었죠.”
S “최근 4, 5년만 해도 뒤셀도르프의 라인 오페라에서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1803~1869)의 <트로이 사람들 Les Troyens>을 봤을 때의 흥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본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1714~1787)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Orfeo ed Euridice>에서 바리톤의 크리스티안 게르하허Christian Gerhaher(1969~ )가 오르페오를 노래한 경이로움. 아직도 할 얘기가 너무 많아.”
F “2000년이었던가? 당신과 프랑스를 여행하다 아비뇽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던 적이 있죠. 그때 마침 레하르의 <메리 위도 Die lustige Witwe>가 흘러나와 심심풀이 삼아 훌쩍 그 속으로 들어갔죠. 그게 좋았어. 생각한 것보다 연주 수준도 높았어. 추위를 녹이는 크리스마스의 밤, 유럽의 오랜 마을, 조그마한 극장, 그리고 야단스런 엔터테인먼트… 우리는 약간 취한 듯 춤추며 밤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갔죠.”
S “그랬던가?”
F “그랬어요.”
S “정말 끝이 없군. 이제 슬슬 오페라편 베스트 3을 결정해 볼까나. 나는 1.쇼스타코비치의 <무첸스크의 맥베스 부인>(1996년 도쿄, 발레리 게르기에프 지휘, 상트페테르부르크 마이린스키 가극장 관현악단), 2.모차르트의 <가짜 여자 정원사>(2006년 잘츠부르크 음악제), 3.마스네의 <타이스>(영화, 2008년 12월,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F “그럼, 나는 1.리하르트 바그너의 <파르지팔>(2001년 12월,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사이먼 래틀 지휘의 베를린 필), 2.베라 바르토크의 <푸른수염 공작의 성>(2008년 잘츠부르크 음악제), 3.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1926~ )의 <루푸파 L'Upupa und der Triumph der Sohnesliebe>(2003년 잘츠부르크 음악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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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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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