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거니와, 예전에 나는 슈베르트를 들을 때마다 졸았다. 10년쯤 전인데, 도쿄 스미다 트리포니홀Triphony Hall에서 이안 보스트리지의 가곡 리사이틀을 들었을 때도 졸고 말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듣고 있던 옆자리의 F가 연주회가 끝난 뒤 “당신은 슈베르트를 몰라요”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슈베르트를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921년의 가곡 <죽음과 소녀 Der Tod und das Mädchen D.531>(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tthias Claudius(1740~1815)의 시)에서는 소녀가 죽음의 신死神으로부터 도망치려 몸부림치면서 말한다. “저리 가! 내게 다가오지 마!” 하지만 죽음의 신은 귓전에서 속삭인다. “그 손을 내밀어라, 예쁘고 가냘픈 소녀여. 내 품 속에서 포근히 잠들어라.”
이것과는 반대로 요제프 폰 슈파운Joseph von Spaun(1788~1865)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소년과 죽음 Der Jüngling und der Tod D.545>에서는 죽음을 향한 소년의 동경을 노래한다. “오, 죽음이여 오라, 그리고 이 속박을 풀어다오! 나는 그대에게 미소 짓노니, 오, 해골 형상의 사신死神이여, 꿈에 본 나라로 나를 데려가 다오. 오, 이리 와서 부디 나를 데려가 다오.”
죽음, 죽음, 죽음- 왜 이토록 ‘죽음’에 매료당한 것일까?
서울에서 도쿄로 돌아온 지 며칠 지나 집에서 <겨울 나그네> CD를 틀었다. 내겐 여러 종의 <겨울 나그네>가 있는데, 디스카우가 노래한 것은 2장이다. 1장은 예르크 데무스Jörg Demus(1928~ )의 반주로 1965년에 녹음한 것, 또 1장은 제럴드 무어Gerald Moore(1899~1987)의 반주로 1972년에 녹음한 것이다. 먼저 1965년판을 틀어봤다. 귀에 익은 노랫소리歌?가 흘러나왔다. 40살의 디스카우가 부르는 소리다.
“디스카우를 듣노라면 언제나 아, 잘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하고 F는 말했다. “이 녹음도 아직 젊었을 때 한 것인데, 비할 데 없이 정확하고 구석구석까지 신경을 썼어요. 정말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는 느낌. 어찌나 잘 부르는지 빨려들어요… 하지만 나는 디스카우를 듣고 울어본 적은 없어요. 에른스트 해플리거Ernst Haefliger(1919~2007)는 눈물이 나요.”
그렇게 해서 <겨울 나그네>를 잠시 들어 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F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 디스카우를 듣고 눈물 흘린 적은 없다고 하더니… 나의 그런 심중을 알아차린 F가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디스카우의 노래 때문에 운 게 아니에요. 슈베르트 때문에 운 거라구요. 슈베르트가 가여워서…”
그때 흘러나오고 있던 건 <겨울 나그네>(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1794~1827)의 시)의 제11곡 <봄 꿈>이었다. 어둡고 차가운 겨울 길을 정처도 없이 유랑하는 젊은이에게 순간 즐거웠던 지난날의 환영이 되살아난다.
색색의 꽃들을 꿈에 보았네, 5월의 꽃사태 같았네.
푸른 들판을 꿈에 보았네, 즐거운 새들의 노래가 들려왔네.
하지만 닭 울음소리와 함께 꿈은 홀연 사라지고 젊은이는 차디찬 현실로 돌아간다.
다시 잠시 눈을 감아 보니 심장은 아직 뜨겁게 뛰고 있네.
창 밖 나뭇잎이여, 그대들이 푸른 옷을 입을 때는 언제일런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 볼 날은 언제일런가?
지난날의 꿈을 노래하는 부분의 선율은 장조이고, 고달픈 현실로 돌아오는 부분에서는 암울한 단조다. 그것이 번갈아 나온다.
“단조 부분이 슬픈 것과는 달라요. 장조 부분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슈베르트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못난 남자. 그런 게 가여워.” F는 아직도 코를 훌쩍거리며 덧붙였다.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지만 말이에요…”
슈베르트가 살았던 시대는 시민계급이 발흥했던 시대지만, 신흥 시민들이 외쳤던 ‘자유 평등 우애’의 구호 뒤에는 무자비한 경쟁원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겨울 나그네>는 그 시대의 낙오자들한테 무섭기조차 했던 고독을 노래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출구 없는 양극화사회格差社?에서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힌 젊은이들의 절망감과 닮았다. 기타오 미치후유喜多尾道冬는 슈베르트의 작품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한, 또는 학대받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共鳴 최초의 음악”이라 평했다.(『슈베르트』 아사히신문사)
슈베르트는 같은 남성 벗들 덕은 봤으나 이성과의 관계에선 역시 평생 낙오자였다. 첫사랑은 그의 가곡을 부른 견직물 기술자의 딸이었는데, 나중에 그는 벗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그녀는 별로 미인은 아니었고, 얼굴에 곰보 자국도 있었지만 정이 깊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그녀와 결혼할 수 있도록 3년이나 기다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그녀는 부모의 바람대로 다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그 이후 그녀만큼, 또는 그녀 이상으로 내 마음에 든 여성은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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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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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