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가 아직 침대에 누운 채로 “나, 언제나…” 하고 웅얼거렸다. “잠에서 깨면 잠시 ‘여기가 어디지?’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어디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우리, 계속 여행만 하고 있으니까” 하고 내가 대꾸하자 F는 “맞아, 확실히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여행 말이죠…”라며 빙긋 웃었다.
옛날, 이제 기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먼 옛날,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1933년에 나온 오스트리아 영화다.
젊은 슈베르트는 아끼던 기타를 전당포에 맡길 정도로 가난하다. 전당포 집 딸은 그에게 호의를 보인다. 가난한 그에게도 출세할 기회가 왔다. 귀족이 주최하는 음악의 밤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그 자리에서 슈베르트는 새로 작곡한 나단조 교향악을 연주했다. 그런데 어느 젊은 여인의 웃음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져 연주는 중단되고 자존심이 상한 슈베르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 뒤 슈베르트는 나단조 교향악을 연주할 때마다 그 여인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뇌리에 박혀 연주를 계속할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뜻밖에도 헝가리의 에스테라지 백작이 그 집 딸 음악선생으로 와 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온다. 백작의 딸은 예전에 그의 연주를 웃음소리로 망쳐버린 그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때의 무례를 용서받기 위해 그를 초빙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그러나 백작은 두 사람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슈베르트를 빈으로 돌려보낸다. 고뇌의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는 헝가리로 와 달라는 딸의 편지를 받고는 기쁨에 들떠 달려간다. 하지만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딸의 결혼식이었다. 슈베르트는 결혼식 때 그 나단조 교향악을 연주한다. 연주가 예전에 날카로운 웃음소리로 중단됐던 지점에 이르렀을 때 딸은 실신하고 만다. 슈베르트는 완성한 교향악 마지막 몇 쪽을 찢어내고는 그 여백에 이렇게 쓴다. “내 사랑이 끝나지 않듯 이 곡 또한 끝나지 않으리”
이것이 그 영화 대강의 줄거리다. 마지막 장면은, 내 기억에는 넓디넓은 헝가리의 보리밭이었다. 물결치는 보리 이삭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 화면에 저 슈베르트 최후의 독백이 올라간다.
슈베르트가 에스테라지 가문 딸 자매의 음악선생으로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영화는 각색을 하기 때문에, 물론 모두가 사실 그대로는 아니다. 영화에서는 땅딸막하고 유머러스한 슈베르트의 풍채라든지 전당포 집 딸의 쾌활함이 중화제 역할을 하지만, 그리고 있는 이야기의 내용은 잔인할 정도로 아픈 실연의 고통이다. 실제로 슈베르트는 이런 실연을 여러 번 경험했을 것이다. 그의 깊은 실의와 고독, 일그러진 감정은 광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을, 나 자신도 그만큼 혹독한 실연을 거듭하고 있었음에도 젊은 시절의 나는 몰랐다.
그 슈베르트의 광기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은 독일의 메조소프라노 발트라우트 마이어Waltraud Meier(1956~ )의 노래(歌唱)다. 이에 비하면 세간의 평판이 높은 이안 보스트릿지Ian Bostridge의 노래는 연출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바그너 가수로 명성이 높은 마이어는 2005년 9월 일본에 와 도쿄에서 브람스, 볼프Hugo Wolf(1860~1903), 슈베르트의 가곡 리사이틀을 열었다. 나와 F는 일찌감치 티켓을 입수해 그날을 기다렸는데, 어떤 말 못할 사건 때문에 막상 그날이 됐지만 보러 가는 걸 포기했다. 하지만 리사이틀 모습은 뒷날 <NHK>를 통해 방영됐다. 그 방송에서 들을 수 있었던 마이어의 슈베르트는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들어 본 모든 노래들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특히 <난쟁이 Der Zwerg D.771>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마테우스 폰 콜린Matthäus von Collin의 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평온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왕비와 난쟁이가 타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본 왕비는 죽음을 예감하고 “기꺼이 죽겠다”고 외친다. 난쟁이가 왕비의 목을 붉은 비단 끈으로 졸라매려고 다가온다. 난쟁이는 슬픔으로 눈이 짓무를 만큼 울면서 말한다. “이 고통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왕 때문에 나를 버렸으니까. 당신의 죽음만이 내게 기쁨을 준다. 나는 영원히 나 자신을 증오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을 이 손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까.” 왕비는 몹시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한다. “내 죽음으로 당신이 고통받는 일이 없기를!” 난쟁이가 왕비의 창백한 뺨에 입술을 대자마자 그 뺨은 생기를 잃는다. 왕비는 죽고, 난쟁이는 그녀를 바다 깊이 가라앉혔다. 난쟁이의 마음은 그녀에 대한 애타는 사랑으로 격렬하게 타올랐다. 어느 해안이든 이미 그가 상륙할 곳은 없으리라.
왕비와 난쟁이라는 절대적 불균형 관계를 맺고 있는 남녀의 일그러진 사랑. 상대를 죽여야만 성취할 수 있는 사랑. 죽임을 당하면서 받는 사랑의 도취와 황홀. 얼마나 무서운 세계인가. 슈베르트의 정신세계가 이런 것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난쟁이는 슈베르트 자신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 속에는 분명 예전에 난쟁이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그것, 무서워서 외면하고 있던 그것이, 마이어의 노래를 통해 되살아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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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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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