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는 분열된 존재다- 이 인식이야말로 말러의 음악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열쇠가 없으면 그 방에 들어갈 수 없다. 아니면, 들어가려 해봤자 미로 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는가? 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나는 즉답을 할 수 없다. 오히려 도대체 말러의 음악이란 게 뭐지? 하는 물음이 먼저 떠올라 대답하기 난처해진다. 때론 말러가 내겐 몹시 위험하다.
내가 말러 실황 연주를 듣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생각해 보니 꼭 10년 전(2001년) 여름, 나와 F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지휘로 빈 필이 연주하는 교향곡 제5번을 들었다. 연주가 끝난 뒤 나는 도대체 이 음악은 무엇을 전달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러와 같은 대 작곡가의 작품을 일류 지휘자와 최고의 악단 연주로 들었고, 게다가 연주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부분 부분은 아름다웠는데도 이토록 감흥이 일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인가, 납득할 수 없었다. 작품이 발하는 일관된 메시지라는 게 보이지 않았다. “어땠어?”하고 F가 묻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런 생각을 얘기했다. F는 답답하다는 듯 “일관된 메시지 따윈 필요 없어요. 오지랖 넓게 정연한 논리나 필연적인 결론을 끌어내려는 건 당신의 나쁜 버릇이에요”라고 말했다.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내게 F는 다그치듯 말했다.
구스타프 말러 - 교향곡 제5번 올림다단조 1악장 -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 필 연주 from marillion on Vimeo
“그 조인트(joint)가 좋아요. 조인트, 알아요?”
“조인트? 모르겠는데…”
“여러 테마와 제각각인 각 부분들을 꿰매어 가는 조인트 말이에요. 말러는 그 조인트가 절묘해요.”
음악에 대한 호불호는 개개인의 개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그걸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1886~1954)가 지휘하는 베토벤 제9교향곡이 좋다고 할 때, 아니 나는 카라얀Herbert von Karajan(1908~89)이 지휘하는 게 좋아, 라고 말하는 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지만 푸르트벵글러가 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의 인격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처럼 돼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설령 음악 애호가끼리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기호에 깊이 개입하는 건 피하는 법이다. 하지만 F는 가까운 내게 그런 배려를 해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배려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친밀감의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말러관(?)을 좀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F라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몰이해처럼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이 얘기를 몇 시간이나 계속했지만 마지막엔 말다툼을 벌이는 꼴이 돼버렸다. 멀리 잘츠부르크까지 와서 싸지도 않은 티켓을 사서 연주를 듣고 나서는 제일 가까운 사람과 말다툼이나 벌이다니, 음악의 신이여, 당신은 어찌 이토록 가혹하단 말인가!
그 뒤 2003년에는 도쿄에서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1953~ )가 지휘하는 키로프Kirov 가극장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교향곡 제3번을 들었다. 게르기예프가 짜내는 음악은 실로 아름다웠지만 마치 할리우드 영화 같았다. 그 얘길 했더니 F도 “맞아, 그랜드캐니언 같아”라고 대답했다.
2004년 여름에는 다시 잘츠부르크에서 이번엔 크리스토프 에센바흐Christoph Eschenbach(1940~ )가 지휘하는 빈 필을 통해 제5번을 들었다. 래틀 지휘 때의 쓴 기억이 있어서 나는 조심스럽게 “꽤 괜찮은 연주였지”라고 F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그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간파했고, 우리는 또 어색한 분위기를 맛봐야 했다. 말러는 나와 F 사이에 깊이 팬 도랑과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나의 말러관에 전기가 찾아온 것은 그다음 해인 2005년이었다. 그해의 잘츠부르크에서 우리는 마티아스 괴르네Matthias Goerne(1967~ )의 가곡의 밤을 들었다. 괴르네는 베르크Alban Berg(1885~1935), 바그너의 가곡에 이어 말러의 <이상한 뿔피리를 가진 아이 Das Knaben Wunderhorn>에서 8곡을 불렀다.
어찌 이리도 가련한 고수(鼓手)냐, 나는!
모두가 나를 영창에서 끌어내는구나!
내가 그대로 고수로 있었다면,
감옥에 들어가는 일 따윈 없었을 텐데.
아, 높이 솟은 교수대여,
어찌 그리 무서운 꼴을 하고 있느냐!
너 따윈 더 보고 싶지 않아, 어차피 거기에
매달릴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걸. (이하 생략)
<소년 고수 Der Tamboursg’sell>에서
8곡의 마지막을 장식한 곡은 <죽은 고수>였다. 원제(Revelge)는 ‘기상 신호’라는 뜻인데, 전장에서 쓰러진 병사들에게 일어나라고 울리는 큰북 소리를 가리킨다. 전멸한 부대의 개선이라는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얼마나 으스스한 음악인가. 나는 전율했다. 땅딸막한 체구를 검은 옷으로 감싸고 노래하는 괴르네의 모습은 중세의 민화에 등장하는 죽음의 신(死神) 같았다. 독일 낭만파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탐미적이라기보다 민중적이고 향토색이 짙고, 한없이 불길한 세계였다. 몹시 감동한 F는 신경을 곤두세웠고 그날 밤은 결국 울면서 밤을 새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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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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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