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장은 이 노래를 몹시 좋아해서 점호와 출발 때 수인들에게 부르게 했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클로드 란즈만Claude Lanzmann(1925~ ) 감독의 기록영화 <쇼아 Shoah>에서 트레블링카Treblinka 수용소 간수장이었던 전 SS 장교 주호멜Franz Suchomel이란 인물이 인터뷰하면서 기분 좋게 콧소리로 흥얼거리던 노래다. 경쾌한 곡조의 행진곡이다. <쇼아> 전편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장면이었다. 그 작사자가 뢰너 베다였던 것이다.
뢰너 베다는 친한 벗(盟友) 레하르가 그의 석방을 탄원하는 편지를 히틀러에게 보내줄 것으로 기대했다. 뭐니 해도 히틀러는 레하르 오페레타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 히틀러의 산장에서 레하르가 지어 올린 <메리 위도>의 악보가 발견됐다.
그러나 뢰너 베다가 기대했던 것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1942년 10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거기서 강제노동에 처해졌다. 그는 점차 쇠약해졌고 “유대 돼지놈, 일할 수 없다면 후딱 가스실에서 뒈져!”라는 욕을 들었다. 그리고 노동감독한테 두들겨 맞고 짓밟혀 죽었다. 그의 처와 딸 둘도 민스크Minsk 수용소로 이송돼 살해당했다.
앞서 얘기한 ORF 다큐멘터리 <레하르의 고뇌>에 따르면, 뢰너 베다는 꽤나 대책 없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작사가로 성공한 뒤 문손잡이를 모두 금으로 만들어 다는 등 사치스런 대저택을 지었다. 나치스의 위기가 급박하게 닥쳐오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위기를 알아차린 유대계 음악가와 지식인들 다수가 국외로 탈출했는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골이었던 고급 카페 하인리히스호프Heinrichshof에서는 부러 보란 듯이 나치당 기관지 <푈키셔 베오바흐터 Völkischer Beobachter(민족의 관찰자)>를 손에 들고 조소하는 듯한 태도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런 태도가 원망과 질투를 불렀던지 전속 운전사의 밀고로 게슈타포에 체포당했다.
레하르도 이 친한 벗의 운명에 그 나름대로 마음 아파한 듯하지만 실제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순 없었다. 레하르의 처 조피는 결혼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나 유대계였다. 게슈타포가 처를 체포하려고 저택을 찾아왔을 때 레하르가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1897~1945)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 앞서 얘기한 <레하르의 고뇌>에 나온다. 뢰너 베다를 걱정하는 레하르에게 괴벨스는 그의 처 문제를 들이대며 입을 닫게 만들었다.
레하르는 <쥬디타>의 슈타츠 오퍼 초연(1934년) 이후 만년의 14년간 신작을 작곡하지 않고 침묵 속에 보냈다. 1938년 이후는 암운이 드리운 듯한 나치의 위협에서 한 시도 벗어날 수 없는 두려운 세월이었다. 종전 뒤 70대 중반의 나이를 넘긴 그는 ‘나치 협력자’라는 비난을 받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며 울먹였다. 뢰너 베다도 레하르도 정치에는 철저히 무관심했던 것 같다. 무관심의 대가는 컸다.
연말의 어느 추운 밤 나와 F는 <미소의 나라>를 보기 위해 폴크스 오퍼로 향했다. 빈대학 근처의 쇼텐토어Schottentor에서 노면전차로 10분 정도 거리다. 어두운 밤 풍경 속에 극장의 불빛이 포근했다. 로비는 순해 보이는 중년과 고령의 관객들로 가득했다. 오스트리아 외에 미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에서 온 관광객도 많아 보였다.
<미소의 나라>는 오페레타에선 드문 비극인데, 내용은 단순하다. 때는 청나라가 중화민국이 된 1912년 빈의 백작 딸 리자와 청나라 왕자 수총Sou-Chong의 비극적 사랑 얘기다. 거기에 대사관 육군무관 구스타프와 수총 여동생의 사랑 얘기도 얽혀 있다. 두 갈래의 남녀 사랑은 동서간 문화차이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수총은 슬퍼하는 동생을 끌어안고 노래한다. “아무리 괴로워도 울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아무리 슬퍼도 운명에 맡기고, 언제나 미소 지으며 참고 살자꾸나. 간직한 마음 부여안고!”
엑조티시즘exoticism과 로만티즘romantism을 풍성하게 섞고 감미롭기 그지없는 멜로디로 장식한 작품이다. 인간은 너무 힘든 현실에서 때로는 눈을 딴 데로 돌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비탄 속에서도 웃음을 제공할 수 있는 작품은 위대하다. 그러나 <미소의 나라>라는 오페레타에서 허무하기까지 한 둔감성을 느낀 나는 솔직히 그걸 즐길 수가 없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무리 슬퍼도 운명에 맡기고 언제나 미소 지으며 참고 살자꾸나”라는 아시아인 상이다.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할 때까지 지금의 이탈리아령 트리에스테를 군항으로 삼아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에서 마치 반나치 저항자였던 것처럼 묘사된 트랩Georg von Trapp 대령이란 인물은 오스트리아 해군 군인으로 중국 의화단 봉기 진압에 가담해 훈장을 받았다. 오스트리아는 영국과 프랑스에 뒤처졌을 뿐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침략자의 일원이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선 그런 걸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사자가 강제수용소에서 맞아 죽은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건 그렇다 치고, 히틀러가 레하르의 팬이었을 줄이야…
숙소의 텔레비전에서 때마침 드레스덴Dresden 가극장의 질베스터Silvester 콘서트를 중계하고 있었다. 연주회 형식의 <메리 위도>다. 유명한 이중창을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 (1959~ )과 크리스토퍼 말트만Christopher Maltmann이라는 바리톤이 불렀다. 한없이 세련되고 황홀할 정도로 요염하다. 다음 순간 이 감미로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미소 짓고 있는 히틀러의 표정을 나는 상상했다. 음악이라는 것이 제공할 수 있는 최악의 그로테스크가 거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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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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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