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Ⅱ(1825~1899)와 같은 이름의 그의 아버지Johann Strauss I(1804~1849)도 유명한 음악가로, 티롤Tirol 지방의 소박한 왈츠를 제국의 수도 빈에 어울리는 우아한 왈츠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아버지 슈트라우스는 빈 혁명 그다음 해 북이탈리아 독립운동을 진압한 애국적인 군인을 예찬한 <라데츠키 행진곡 Radetzky Marsch>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한편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2세는 <혁명 행진곡 Revolutions-Marsch>을 썼다. 아버지는 옛날의 좋았던 시대를, 아들은 새로운 시대를 체현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이 철저한 변혁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제국의 쇠퇴, 신흥 부르주아지의 발흥, 민족들의 독립기운, 계급투쟁의 격화 등에 따른 사회적 동요 속에서 그는 허무적일 정도의 요란한 소동을 통해, 압박해오는 불안을 잊는 것, 즉 오로지 ‘향락으로의 도피’를 시민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박쥐> 제1막의 피날레에서 알프레드는 유부녀 로잘린데한테 끈질기게 매달려 <새 와인에는 새 노래를>과 <술의 노래>를 부른다. “안돼요, 싫어요”하고 거부하는 몸짓을 보이던 로잘린데는 점차 알프레드의 열정에 넘어가 두 사람은 마침내 <망각은 인생의 행복>이라는 이중창을 한다. 이것이 당시 이 도시를 채우고 있던 분위기였다. 이 분위기가 비엔나 오페레타의 황금시대를 가져다주었다. 그 뒤에는 20세기의 두 번에 걸친 대전쟁의 파괴와 살육이 이 도시를 덮친다.
<박쥐>는 1874년의 초연에선 실패했으나 나중에 비엔나 오페레타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게 된다. 빈 궁정 가극장 총감독이었던 젊은 날의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1860~1911)는 그때까지 오페레타를 상연한 적이 없었던 이 가극장에서 <박쥐>를 정식 레퍼토리로 올렸다.
연말연시에 <박쥐>를 보는 건 빈 사람들의 일상적 행사가 돼 있어, 폴크스 오퍼에서도 슈타츠 오퍼에서도 거의 매일 상연하고 있다. 나와 F는 새해 첫날 슈타츠 오퍼에 갔다. <박쥐> 그 자체도 그렇지만 빈 토박이들의 일상행사를 체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내겐 있었다. 연출은 클라이버 지휘의 1986년판과 마찬가지로 정통파적인 것이었다. 그건 그것대로 이번과 같은 상황에선 재미있었다. 가수진에는 아이젠슈타인에 마르쿠스 베르바Markus Werba, 알프레드에 미하엘 샤데Michael Schade, 올로프스키 공작에 안젤리카 키르히슐라거Angelika Kirchschlager가 포진했는데 과연 모두 능숙했다. 그중에서도 아이젠슈타인의 아내 로잘린데 역을 맡은 핀란드 출신의 몸집 큰 소프라노 카밀라 닐룬드Camilla Nylund는 연기와 가창 모두 훌륭했다.
옆 자리의 F는 눈을 빛내며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몹시 즐거웠다. 나와 같은 성격의 인간도 기분 좋게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걸작인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큰 소리로 웃으면서도 내 마음 밑바닥에는 얼음덩이 같은 것이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저토록 무참한 파괴와 살육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왁자지껄 웃으며 떠들고 있다. <망각은 인생의 행복>이란 듯.
몇 년 전 별 무심코 텔레비전에서 <레하르의 고뇌>라는 다큐멘터리(오스트리아 국영방송 <ORF>, 2003년)를 본 적이 있다. 그 이후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미소의 나라 Das Land des Lahelns>를 보는 게 내 염원이 됐다. 이번에 마침내 그 염원을 이룬 것이다.
프로그램 중에 1945년에 한 인터뷰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레하르가 바드 이슐Bad Ischl의 저택에서 78살로 삶을 마감하기 3년 전의 육성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레하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난 얘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울먹이는 소리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이 프로그램은 레하르의 오페레타 <쥬디타 Giuditta>의 주역인 테너가 <벗이여,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아리아를 낭랑하게 부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 작품은 1933년에 작곡했고 1934년 1월 레하르의 작품으로는 처음 빈 슈타츠 오퍼에서 초연됐다. 대본은 파울 크네플러Paul Knepler와 프리츠 뢰너 베다Fritz Löhner-Beda가 썼다.
대중 지향의 폴크스 오퍼에서 상연되는 오락적인 오페레타를 썼던 인물의 작품이 격조 높은 슈타츠 오퍼에 걸리는 건 작곡가로서의 성공과 지위 상승을 의미한다. 당연히 개런티도 크게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레하르는 이 작품을 끝으로 붓을 꺾어버린다. 이것을 두고 비엔나 오페레타의 시대가 끝났다고도 얘기한다.
레하르의 성공 뒤에는 작사자인 뢰너 베다라는 존재가 있었다. 대중적 기호를 예민하게 탐지해내어 평이하고 감미로운 가사를 솜씨 좋게 붙이는 재능을 지녔던 이 작사자와의 공동작업으로 레하르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기고만장할 때 부르는 <벗이여,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에서 ‘벗’은 뢰너 베다였을지도 모른다.
<미소의 나라>(1929)는 <메리 위도>(1905)와 나란히 레하르의 대표작이지만, 그 중의 아리아 <그대야말로 내 마음의 모든 것>은 뢰너 베다의 가사와 당대 최고의 테너 리하르트 타우버Richard Tauber의 가창력이 때마침 시작된 라디오의 보급과 맞물려 크게 히트했다.
그러나 1938년 나치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했고, 유대인이었던 뢰너 베다는 붙잡혀 강제이송당한 뒤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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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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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