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연주회장에 가보니 음악전문 홀은 아니고, ‘덴구야마(天狗山) 레스트하우스(휴게소)’라는 레스토랑을 개축한 가설회장이었다. 일본은 이미 부자나라였으나 그 무렵엔 아직 버블(거품)경기의 절정을 맞이하기 전으로, 일본 전국에 콘서트홀이니 미술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건 그보다 좀 뒤의 일이다. 구사쓰 국제 페스티벌도 새로 지은 음악전용 홀에서 콘서트를 열게 된 건 1990년 이후의 일이다.
가설회장이어서 음향이 좋지 않고 실외의 잡음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날 연주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이마쥬-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1968), <율(律)-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1968). 그리고 <클라리넷 오중주곡>(1984). 이 곡은 구사쓰 국제 페스티벌이 위촉한 작품으로, 세계 초연이었다. 또 <소나타- 오보에, 하프, 비올라를 위한>(1979),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주된 것은 <밤이여, 나뉘어라Teile Dich Nacht- 소프라노와 실내악을 위한>(1980)이었다.
첫 두 곡은 동베를린 사건으로 납치당한 윤이상 선생이 옥중에서 구상해서 작곡한 것이다. <이마쥬>의 네 악기는 그가 북을 방문했을 때 본 고구려 고분 벽화의 4신, 즉 백호 청룡 현무 주작을 나타낸 것이다.
뒤의 두 곡은 독일로 생환한 뒤 해외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면서 동시에 고난의 경험을 발효시키던 시기의 작품이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광주사태에 관한 보도를 접하고 “울면서” 작곡한 것이다. 연주자는 바이올린의 슈네에베르거Hansheinz Schneeberger, 오보에의 글래트너Burkhard Glaetner, 첼로의 벳쳐Wolfgang Boettcher 등 독일에서 온 쟁쟁한 음악가들이었다.
여름날 저녁 사람들이 한가롭게 피서를 즐기고 있는 스키장 한편의 간소한 연주회장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음향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동안 그곳은 고구려 고분 내부 또는 서대문 구치소 감방처럼 느껴졌다. 이 얼마나 가혹하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가.
<밤이여, 나뉘어라>는 노벨상 수상 시인 넬리 작스Nelly Sachs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열려라, 밤이여
너의 두 날개는 빛에 쬐어 전율한다
내가 가서
피비린내 나는 지난밤을
되돌려 놓고 오겠다
작스는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한 여성 시인이다. 피해망상과 정신착란으로 고통받다가 고독하게 세상을 떠났다. 윤이상 선생은 이 곡 해설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당해야 했던 히틀러 폭정의 희생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잔혹한 독재자를 준엄하게 단죄하면서도 천상으로의 승화를 통한 삶과 죽음의 속죄를 확신했던” 작스의 시 세계에 깊이 공감해서 작곡했다고 말한다.
곡의 종말부에 이르러 “den blutigen Abend zurueck 피비린내 나는 지난밤을/ 되돌려놓고 오겠다”는 싯귀가 되풀이된다. 먼저,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희미한 비명이 외침처럼, 그다음에 낮은 탄식이 신음처럼. 극도의 집중 속에 최후의 여운이 공기에 녹듯 사라졌을 때 이 싯귀와 음향은 다시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처럼 내게 각인돼 있었다.
콘서트가 끝난 뒤 나는 선생과 이수자 부인이 묵고 있는 호텔 방을 찾아갔다. 선생은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또다시 말문이 막혀버린 나는 자신과 옥중 형들의 근황을 간략하게 얘기했다. 실은 지금 막 들었던 음악의 감동을 전하고 싶었으나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문득 화제가 바뀌면서 선생은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다. 이미 머릿속에는 몇 곡의 교향곡이 들어 있지만, 나는 심장이 좋지 않아서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전년도에 작곡한 <교향곡 제1번>은 그해 5월에 베를린 필이 막 초연을 한 곡이었다. 선생은 그에 뒤이어 차례차례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호텔 방 여기저기에 오선지가 흩어져 있어, 선생이 여행지에서도 촌음을 아껴 작곡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깊은 감동과 함께 이 위대한 재능에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을 내가 낭비토록 한 게 부끄러웠다.
이 사람은 이 얼마나 크게, 얼마나 높이 솟아 있는가. 나도 저런 높은 경지에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까. 다케다씨와 F가 기다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나는 골똘히 그런 생각을 반추했다. 올려다보니 고원의 칠흑 같은 밤하늘에 푸르고 큰 달이 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구름이 잇따라 달을 스쳐 가면서 마치 달 자체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완벽한 무음(無音)에 가까운 정적 밑바닥에서 아주 가늘고 아련하게, 비명 같은, 신음소리 같은 음향이 들려왔다.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이상할 정도의 고양감이 내 온몸을 감쌌다.
구사쓰에서 교토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사히 저널>(1984년 9월 21일자)이란 잡지에 윤이상 선생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거기에는 내 형을 비롯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있는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하는 얘기도 들어 있었다. 모든 정치범 석방이 실현될 때까지 한국정부가 요청하는 귀국은 거부하겠다고. 나는 다시 한 번 깊은 감명을 받았다. 윤이상 선생은 자신의 예술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을 가장 높은 차원에서 통일시키려는 드문 천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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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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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