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바그너의 ‘파르시팔’과도 상통하는 ‘착한 바보’의 승리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 바그너와 달리 여기서는 타자들 간 우애의 고귀함이 우화로 꾸며져 있다. 악마는 이질적인 타자와 차별받는 소수자에 대한 우의(寓意)다. 카짐과 악마는 동성애 관계로 볼 수도 있다고 F는 분석했다. 사랑하는 사람(왕녀)과의 결혼이라는 정해진 해피엔딩보다도 악마와의 약속을 중히 여겨 어디론지 여행길을 떠나는 카짐의 아리아는 절창이었다. 그것을 들으며 F는 남의 눈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었다.
알 카짐을 노래한 건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Matthias Goerne, 악마는 테너 존 마크 에인슬리John Mark Ainsley였다. 괴르네는 그전부터 좋아했지만, 에인슬리라는 테너의 존재는 그때 처음 알았고 우리는 곧 그의 골수팬이 되었다. 그 뒤 2006년 모차르트의 오페라 <가짜 여자 정원사 LA FINTA GIARDINIERA>, 2009년 베를린 필이 연주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4계 Die Jahreszeiten>에서도 에인슬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2010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우리가 들었던 마지막 공연은 8월 29일 축제대극장에서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1955- )이 지휘한 베를린 필 연주회였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내게는 올여름 최고의 연주회였다.
전반의 연주곡은 바그너의 <파르시팔 서곡 Prelude to the Bühnenweihfestspiel Parsifal>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 Four Last Songs for Soprano and Orchestra>였다. 독창은 핀란드 출신의 소프라노 카리타 마틸라Karita Mattila.
마틸라는 세련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앞서 네트레프코를 칭찬했지만, 마틸라는 분명 그보다도 한 수 위였다. 네트레프코에겐 빛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으나 마틸라는 그녀 자신이 내부에서 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전에 유럽 텔레비전 채널 <아르테 Arte>에서 그녀가 출연한 <아라벨라 Arabella>를 봤고 MET(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이브 뷰잉으로 <토스카 Tosca>를 본 적이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깊고 고운 목소리는 듣는 이를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가는 마력을 비장하고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가곡의 탐미적인 세계를 표현하는데 그녀 이상의 적역(適役)을 나는 알지 못한다.
후반부 곡목은 일변했다. 베베른Anton Webern의 <관현악을 위한 6개의 소품 Op. 6 Six Pieces for Orchestra, Op. 6>,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5개의 관현악곡 Op. 16 Five Pieces for Orchestra, Op. 16>, 그리고 알반 베르크Alban Berg의 <관현악을 위한 3개의 소품 Op. 6 Three Orchestral Pieces, Op. 6>, 이 세 곡이 중간 휴식 없이 연주됐다. 즉 14개 소품이 연속적으로, 마치 한 사람의 작곡가가 쓴 대작처럼 구성돼 연주된 것이다.
래틀 지휘, 베를린 필 연주가 또한 특필해야 할 명연주였다. 베를린 필이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연주하는 전통은 세계 1, 2위를 다투는 이 오케스트라와 빈 필에 군림했던 카라얀이 만든 것이다. 두 오케스트라의 라이벌 의식도 가세해 잘츠부르크에서의 베를린 필은 매년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질 높은 연주를 보여준다. 이날 밤의 연주도 빈 필과는 또 다른 맛을 발휘해 예리하고 맑게 연마된 음색으로 지극히 구축적(構築的)이면서 빈틈없는 미의 세계를 창출해냈다.
래틀은 후반의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제11번>으로 그 곡들을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말러는 미완의 제10번까지 교향곡을 작곡했고 11번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말러로부터 신(新) 빈악파(樂派)에 이르는 역사를 이런 참신한 형태로 제시해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나와 F는 몹시 흥분해서 들었는데, 의외로 연주가 끝난 뒤 청중의 박수소리는 크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니 전날 밤 콘서트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오스트레일리아인 노부부를 만났다. 카라얀 시대 이래 거의 30년 만에 잘츠부르크에 왔다고 한다. 일본이나 한국에도 자주 여행을 간다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버스를 기다리던 그 부부의 남편이 “지금 콘서트, 전반은 좋았는데 후반은 어떠했소?”하고 묻기에 “아주 좋았다”고 솔직한 감상을 얘기하자 놀란 얼굴로 “그런 잡음이 말이오?”하고 되물었다. “정말 아름다운 잡음이었어요”하고 대답하자 이번엔 그의 아내가 “그건 그냥 잡음이오. 젊은 사람은 그런 게 좋을지도 모르지”하고 흥분한 기색을 나타냈다. 그런 수작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웃으며 듣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신 빈악파가 잡음이라거니, 젊은 사람 취향이라거니 하는 얘기는 너무 지나친 감이 있어 웃고 말았다. 나는 이미 나이 60살로 젊은이가 아니고, 베베른 등은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사람들이어서 결코 새롭진 않았으나 그들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노부부는 다음 날은 영국의 사촌 집으로 간다며, “그대들은?”하고 묻기에 “일본이오”하고 대답했다. 서로 “좋은 여행을”이라고 인사한 뒤 헤어졌다. 여름이 끝나고 여행도 끝난 것이다.
보기에 선한 사람들인 저 노부부가 지금의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상징하고 있다는 생각도 내게는 들었다. 모르티에가 퇴임한 지 10년이 지나 젊은 관객층이 줄어든 대신 이런 사람들이 불어난 모양이다. 음악제는 전에 없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잘츠부르크 주와 시의 재정은 그 덕에 크게 윤택해졌다.
200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필름 <잘츠부르크 음악제―그 약사 The Salzburg Festival―a brief history>(감독 토니 파머Tony Palmer)에서 래틀은 인터뷰에 답하면서 모르티에를 찬양했다. “그는 카라얀 다음 시대를 놀랄만한 방식으로 열어젖혔다. 음악제를 관광객 상대의 축제에서 예술적인 실험과 도전의 장으로 과감하게 전환시켜 성공한 것이다. 이 도전이 멈추면 음악제도 쇠퇴할 것이다.” 보수화가 심화되고 있는 잘츠부르크에서 래틀이 과감한 도전을 시도한 하룻밤을 나는 목격한 셈이다. (*)
--------------------------
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
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