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음악제 청중 가운데 노인들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것도 좋은 옷차림의 유복해 뵈는 노인들이다. 나 자신도 노인 되기 일보 직전이다. 노인들이 음악제에 와서는 안 된다는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젊은이나 장년들 모습이 줄어들고, 선택된 공연 곡목이나 오페라 연출에서도 도발적인 문제 제기가 줄어든 걸 느꼈다는 얘기다.
8월 23일엔 축제대극장에서 구노Charles Gounod의 <로미오와 줄리엣 Roméo et Juliette>을 관람했다. 지휘자는 평판이 높았던 캐나다 출신 얀니크 네제 세갱Yannick Nézet-Séguin, 줄리엣 역은 지금 세계 넘버원의 대스타가 돼 있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레프코Anna Netrebko, 로미오 역은 새 기대주인 폴란드 출신 테너 피오트르 베찰라Piotr Beczala다.
네트레프코의 가창력은 정말 뛰어났다. 목청이 좋다든가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라면 발에 걸릴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그녀에겐 “꽃이 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거기에만 빛이 비치는 듯 빛난다. 10년쯤 전일까, 그녀가 아직 지금과 같은 거물이 되기 전의 얘긴데, 나와 F는 도쿄에서 리사이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의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러시아 가곡이었다. 분방한 농민의 딸이 광대한 평원에 서서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향수와 값비싼 술이 아니라 땀과 흙냄새가 났다. 그런 그녀의 개성은 본래 줄리엣과 같은 청순한 역엔 맞지 않는 듯했으나 그런 우려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세계의 큰 무대들을 밟아가면서 네트레프코는 진정한 ‘디바(diva)’로 불릴만한 존재로 성장한 듯했다.
지휘자인 네제 세갱도 평판대로 호연이었다. 리듬감이 좋고 진행이 경쾌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연을 즐길 수 있었는데, 어쩐지 잘 만들어진 대중연극을 본 듯한 뒷맛이 남았던 것도 사실이다. 원래 텍스트가 평범하지만 연출도 보통이었다. 보고난 뒤 기억에 남을 만한 문제 제기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다음날 본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2006년 말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같은 오페라를 봤는데 그때의 연출은 충격적이고 신선한 문제 제기로 충만했다. 끝나고 나서도 방금 본 작품의 해석을 둘러싸고 나와 F 사이에 흥분 가득한 대화가 이어졌다. 거기에 비하면 이번 것은 그저 “재미있었어” 정도로 끝나버린 것이다. “앞으로 잘츠부르크엔 지적 자극을 찾지 말고 휴양지의 편안한 오락이나 즐기러 와야 할까나.” 우리는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그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는 전에 이런 얘길 쓴 적이 있다.(<심야통신> 제9회, 2005년)
“모르티에의 임기 마지막 해였던 2001년, 나는 잘츠부르크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아들)의 오페레타 <박쥐 Die Fledermaus>를 봤다. 별다른 기대도 없이 마침 빈자리가 눈에 띄기에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재미있었다. 시대설정을 원작의 19세기에서 1930년대로 바꾸고 밤의 연회를 코카인 파티로, 주인공을 파시스트로 설정하는 도발적인 새 연출이었다. 현재의 정치를 풍자하고 하이더 등 극우파를 야유했다.
객석의 반응은 완전히 둘로 갈렸다. 민족의상이나 턱시도 정장으로 차려입은 유복해 뵈는 중·고년 층은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편으로 여름 스웨터(summer sweater)나 재킷과 같은 간편한 차림의 관객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자주 웃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와 세대 간 대립구도가 드러나 내게는 무대 위의 열연 못지않게 객석의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예술행위란 문화를 둘러싼 투쟁이며, 극장은 투쟁의 장이라는 진실을 눈앞에 목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연출은 한스 노이엔펠스Hans Neuenfels, 지휘는 마르크 민코프스키Marc Minkowski였다. 그로부터 10년. 온 세상이 그렇듯 잘츠부르크 음악제에도 확실히 보수화 물결이 밀려온 듯하다. 의욕적인 도전이나 비판적 정신을 감지할 만한 공연제목의 비율은 분명히 줄었다.
예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내가 본 것들 중에서 2000년에 본 핀란드 여성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Kaija Saariaho의 <먼 곳으로부터의 사랑 L´AMOUR DE LOIN>이나, 2003년에 본 독일 출신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의 <루푸파 L'UPUPA UND DER TRIUMPH DER SOHNESLIEBE>란 신작 오페라는 모두 유럽 문화와 타문화(이 경우에는 이슬람)의 우애와 공생을 테마로 한 의욕적인 작품이었다. 1926년 태생의 헨체는 동성애자인데,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불관용) 독일에서 1953년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그는 1968년 학생반란 세대의 아이돌이었고, 도망노예를 주인공으로 세운 오페라 <엘 시마론 El Cimarron>을 작곡한 현대음악계의 거장이다.
<루푸파>는 옛날이야기다. 아랍의 어느 늙은 왕이 고귀한 새 ‘루푸파’가 매일 창가에 찾아오는 걸 즐기고 있었다. 어느 때 왕이 그 새를 붙잡도록 명하자 루푸파는 날아가 버렸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왕은 루푸파를 찾아오라며 아들 셋을 내보내려 했는데 형들한테 속아 넘어간 막내아들 알 카짐만 힘든 여행길에 나선다. 카짐은 도중에 친절한 악마(demon)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루푸파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한다. 그 뒤 카짐은 먼 남쪽 땅으로 유괴당한 왕녀 바디아트를 구출했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카짐과 바디아트와 악마는 셋이서 보물상자를 찾으러 여행을 계속한다. 악마가 몸을 다쳐가며 보물상자를 안겨주었고 모두는 귀로에 올랐다. 루푸파를 손에 넣은 카짐이 돌아오자 놀란 형 둘은 그를 또 속여 우물에 빠뜨리고 루푸파도 보물상자도 빼앗아 가버리지만 악마가 카짐을 도와준다. 고마워하는 카짐에게 악마는 카짐의 고향에 있는 ‘생명의 빨간 사과’를 기념으로 달라고 부탁한다.
왕은 사악한 형들을 추방하고 카짐과 바디아트의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카짐은 “악마에게 ‘생명의 빨간 사과’를 보내주어야 하니 그때까지 결혼식을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아버지와 연인을 뒤로 한 채 또 여행길에 나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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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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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