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아침부터 비가 내린 날, 축제 대극장에서 프로코피에프Sergey Prokofiev의 오라토리오 <이반 뇌제(雷帝) Op. 116 Ivan the Terrible, Op. 116>을 들었다. 이것이 지금 이 여름 최대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1941- )가 지휘하는 빈 필 연주.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듀Gerard Xavier Marcel Depardieu가 낭독하고, 메조소프라노 올가 보로디나Olga Borodina와 베이스 일다르 압드라자코프Ildar Abdrazakov가 노래했다. 합창은 빈 주립가극장 합창단이다.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멤버라 할 수 있다.
무티가 지휘봉을 내려긋고 서곡이 시작되자마자 F와 나는 얼굴을 마주 봤다. 그럴 정도로 최초의 일격에 우리는 뭉클했다.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프로코피에프의 음악 중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CD로는 일본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쇼지 사야카(庄司紗矢香)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나타 제1, 2번>, 실황공연 연주로는 2002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들었던, 발레리 게르기에프Valery Gergiev 지휘로 키로프 가극장 관현악단Mariinsky-Kirov Orchestra이 연주한 <교향곡 제5번 내림나장조 Op. 100 Symphonie Nr. 5 B-Dur Op. 100>이다. 이 연주는 충격적이었다. 스트라빈스키와 마찬가지로 프로코피에프도 타악기를 즐겨 사용하지만, 스트라빈스키가 토속적이고 반근대적인 데 비해 프로코피에프는 근대적이고 도회적인 세련미를 겸비하고 있다. 나는 그 경쾌한 질주감에 도취했고, F는 “어찌 이리도 좋은가!”하고 감격했다.
그러나 그때 <교향곡 제5번>에서 받은 감명을 이번의 <이반 뇌제>는 뛰어넘었다. 이 곡은 좀체 들을 기회가 없는 희귀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원곡은 소련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몽타쥬 이론’을 확립한 근대영화사상의 거인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에이젠슈테인Sergei Mikhailovich Eisenstein이 만든 3부작의 대작영화 <이반 뇌제>를 위해 작곡된 것이다.
이 영화는 러시아라는 국가의 기초를 쌓아올렸다는 16세기의 전제군주 ‘이반 4세’의 생애를 그린 것이다. 그 제1부(1944년)는 주변국가를 차례로 정복하고 마침내 러시아 초대 짜르(tzar, 황제)가 되는 이반 4세의 영웅적인 측면이 강조돼 있고, 스탈린도 이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제2부(1946년)에서는 이반 4세와 그 친위대의 무자비한 숙청을 그렸기 때문에 스탈린의 분노를 사서 국가영화위원회로부터 “반역사적이고 반예술적”이라는 판정과 함께 상영금지를 당했다. 감독 에이젠슈테인은 숙청당하진 않았으나 스탈린에게 불려 가 제2부를 개작하고 제3부를 제작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제2부가 공개된 것은 스탈린, 에이젠슈테인, 프로코피에프 세 사람 모두 죽은 뒤인 1958년의 일이다. 제3부는 일부가 촬영됐지만 필름 대부분이 폐기됐다고 한다. 남아 있는 대본에는 이반 4세가 지난날 숙청한 인물의 이름을 부르며 참회하는 장면이 있는데, 감독인 에이젠슈테인은 스탈린한테 숙청당한 자신의 벗들 이름을 몰래 섞어 넣었다.
이번에 잘츠부르크에서 연주된 작품은 프로코피에프의 이 영화음악을 좀 더 널리 청중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소련 작곡가 아브람 스타세비치Abram Stasevich(1907-1971)가 나중에 오라토리오로 만들어 1962년 모스크바에서 초연한 것이다.
곡은 서곡에서 종국(終局)에 이르는 20개의 단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실로 장대한 스케일, 비할 바 없는 고양감(高揚感)을 자랑한다. 드파르듀의 낭독도, 가수 두 사람의 가창도 좋았으나 리카르도 무티의 지휘가 발군이었다.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1792-1868)의 오페라를 장기로 삼고 베르디Giuseppe Verdi(1813-1901)의 오페라에서 대합창을 지휘해온 그에게는 이런 드라마틱하고 리드미컬한 작품이 어울리는 듯했다. 늘어지지 않고 시종일관 팽팽했다. 피날레가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다가 순간 한꺼번에 꺼지자 대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폭발적인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잘츠부르크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명연주, 경험할 수 없는 귀중한 순간이었다.
연주 종료 뒤 이 연주가 무티의 잘츠부르크 음악제 200회째 지휘라 해서 그것을 기념하는 커다란 휘장이 무대 위 천정에서 내려왔다. 음악제 총감독인 유르겐 플림을 비롯한 운영진 간부들이 무대에 올라 차례차례 무티를 축복했다. 무티는 영어로 이례적인 긴 인사를 했다. 더없이 의기양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좀 전의 연주에서 느낀 고양감과는 다른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곁에 있던 F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 복잡한 감정이란, 한 마디로 ‘보수파의 반격’을 현장에서 목격한 데서 오는 감정이었다. 우리가 목격한 장면은 제라르 모르티에가 총감독이었던 시절, 즉 10년 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당시 밀라노 스칼라좌Teatro alla Scala의 음악감독이었던 무티는 “알프스 북쪽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류에 저항하겠다”고 공언했다. 말하자면 모르티에를 포함한 신세대 연출가와 연주가들이 추진하는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경향에 맞서 전통적인 오페라를 수호하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무티는 “모르티에가 총감독직에 있을 동안에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가지 않겠다”고 명언했다고 한다. 그 보수파 무티가 이제 축제대극장 무대에서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득의만만하게 답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관객 동원력을 다소 희생하고라도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기획을 실현하면서 현대음악에도 활동의 장을 제공해온 모르티에의 이념에, 관객 동원력을 중시하는 상업주의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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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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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