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도스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엔 2002년부터 이번까지 포함해 6번째 등장했지만 우리가 그의 연주를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무대 위에 나타난 건 어두운 표정을 한 약간 뚱뚱한 남자였다. 어쩐지 아이인 채로 중년이 돼버린 남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남자가 피아노 앞 의자에 앉더니 연주회장의 수런거림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돌연 연주를 시작했다. 그 음색의 명석함이라니! 섬세하도다! 축제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이 일순 숨을 삼켰다. 천상의 음이 들려온 순간이다.
중간 휴식시간 전에 스페인의 페데리코 몸포우Federico Mompou와 이사크 알베니스Isaac Albeniz의 피아노 작품에서 5곡. 이건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좀 따분할 지경이었다. 후반에는 슈만의 2곡. <후모레스케 내림 나 장조 Op. 20 Humoreske for piano in B flat major, Op. 20>과 <빈 사육제의 어릿광대 Op. 26 Faschingschwank aus Wien Op. 26>였다. 이 2곡의 연주는 약음(弱音)의 아름다움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으나 그와 동시에 왼손이 사뿐사뿐 연주하는 저음의 깊은 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어지간히 강인한 근력과 정신력을 갖춰야만 저 정도의 깊은 음을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다. 음이 뒤섞이지 않고 하나하나가 분명하게 살아서 들려왔다. F가 흥분한 말투로 “옛날의 폴리니Maurizio Pollini도 이랬어!”하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녀는 젊었을 때 일본에 온 폴리니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올해는 슈만 탄생 200주년이어서 잘츠부르크에서도 그의 작품이 수없이 연주되고 있다. 볼로도스가 연주한 것은 초기 작품으로, CD에도 별로 수록돼 있지 않다. 그의 연주 덕택에 나는 슈만이라는 작곡가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의 천재와 동시대의 천재를 동시에 만난 것이다.
청중은 환호하며 큰 갈채를 보냈다. 원래 짐머만을 듣기 위해 모였던 청중들을 볼로도스가 정복한 것이다. 무뚝뚝해 보였던 약간 뚱뚱한 남자는 세 번 앙코르곡을 연주하면서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정확무비의 타건(打鍵)으로 초절정의 명인 기예를 선보였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나는 2005년에도 한 적이 있다. 8월 14일 축제 대극장에서 열린 랑랑Lang Lang의 리사이틀이었다. 프로그램은 슈만, 하이든Franz Joseph Haydn,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Franz Liszt, 그리고 현대중국의 작곡가 탄 둔Tan Dun이었다. 이 비빔밥 같은 곡목을 봤을 때, 나는 어떤 곡이든 다 연주할 수 있어요, 라는 묘기자랑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최근 중국에서 저명한 콩쿠르 입상자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흡사 스포츠 선수 같은 젊은이들이 많다. 랑랑도 그런 젊은이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하지만 나의 그런 의심은 결과적으로 깨끗이 배반당했다. 연주가 끝났을 때 관객들은 모두 기립해 발을 구르며 환성을 질러댔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열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 도쿄의 산토리 홀에서 다시 랑랑의 연주를 들었을 때는 잘츠부르크에서의 감동은 살아나지 않았다. 다른 연주자의 경우도 때때로 그런 적이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들을 때와 일본에서 들을 때 받는 인상이 분명히 다른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이상한데…”하고 F에게 말했더니, “역시 장(場)의 힘이 센 게 아닐까?”하고 F는 대답했다. 세계 최고라는 음악제에서 귀를 살찌운 일류 청중이나 평론가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과 설령 서툰 연주라도 항상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일본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은 연주자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긴장감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일본에서는 연주가 신통찮아도 높은 출연료를 받을 수 있고 말이죠…”하고 F는 덧붙였다.
F가 말한 대로일지 알 순 없지만, 우리가 잘츠부르크에서 두 번 공연 취소를 체험한 짐머만도 일본에서는 빡빡한 순회연주 일정을 어렵지 않게 소화한다.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만 두 번 그의 공연취소를 겪었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스트레스를 그가 받았기 때문일까? 랑랑에 대해서 말하자면, 비할 데 없는 그의 재능이 외부의 힘(예를 들면 상업주의와 국가주의) 때문에 변질되진 않을까 하고, 실은 처음 그의 연주를 들었을 때부터 나와 F는 약간 걱정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요요마의 피아니스트 판이 돼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아직 젊은 그의 미래를 예언할 순 없지만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에서 연주하는 그 모습을 보고 내 불안은 더욱 커졌다.
볼로도스와 랑랑은 다를까? 그것도 나는 아직 모르겠다. 랑랑이 돌연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재능을 가졌다면 볼로도스는 러시아 피아니즘의 길고 중후한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는 197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처음엔 성악과 지휘를 공부했으나 1987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집중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소련 시절의 말기 사회가 큰 혼란에 휩싸여 있던 때다. 볼로도스를 듣고 있으면 그 개인의 연주를 듣고 있다기보다 그를 통해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접한 듯한 기분이 든다. 러시아 혁명도, 제2차 세계대전도, 소련 붕괴도 그 흐름을 단절시킬 순 없었다. 그런 그가 간단히 변질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글쎄 어떻게 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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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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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