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다음날엔 모차르테움 대학 홀로 실내악 연주회를 보러 갔다. 숙소에서 미라벨 정원Mirabellgarten을 지나 도보로 15분 정도의 거리다. 대형 홀이라고는 하나 객석 수는 600석 정도로, 유서 깊은 음악전용 홀이다. 그 차분한 분위기가 좋고 음향효과도 좋아 내가 지금까지 가본 연주회장 중에서는 최고라 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실내악 프로그램에는 먼저 모차르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모차르트 마티네Mozart-Matinee라는 시리즈가 있는데, 올해는 그게 5차례 열린다. 또 최근에는 매년 특정 작곡가 특집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지난해는 슈만이었으나 올해는 브람스로, 브람스 스제넨Brahms-Szenen이라는 시리즈가 8차례 예정돼 있다. 모차르테움 대학 홀은 이런 실내악이나 솔로 콘서트, 가곡의 밤 등이 열리는 곳이다.
우리가 8월 6일 들은 것은 ‘브람스 스제넨 3’으로, 이자이 4중주단Quatuor Ysaÿe에 비올라와 첼로 주자가 한 사람씩 더 들어간 6중주단 연주였다. 곡목은 브람스의 현악6중주곡 제2번과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夜) Verklärte Nacht>.
브람스의 현악6중주곡 제1번은 젊었을 때 내가 가장 즐겨 듣던 곡 중의 하나인데, 제2번에 대해선 별로 뚜렷한 인상이 남아 있지 않다. 그날 밤의 연주는 몹시 차분한 좋은 연주였으나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다. 젊은 브람스의 어두운 열정 같은 게 별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식시간 뒤의 <정화된 밤>도 평온한 연주였다. 이것도 내가 젊었을 때 일본에서는 아주 인기 있었던 곡이다. 라디오 프로에서도 신청자가 많았다.
이 작품은 리하르트 데멜Richard Dehmel의 시에서 착상을 얻어 작곡한 것이다. 그 시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잎이 진 겨울 숲에 두 남녀가 걸어가고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밤하늘에 걸린 달이 두 사람을 따라온다.
여자가 말한다. “내 뱃속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오. 모르는 남자에게 몸을 맡겨 임신한 뒤 버림받았소. 그리고 당신을 만났소.”
남자가 말한다. “밤하늘이 이토록 빛나고 있소. 그대의 온기를 내가 느끼고 그대도 내 온기를 느끼고 있소. 그 마음이 뱃속 아이를 깨끗하게 만들어줄 거요. 부디 내 아이로 낳아주오.”
두 사람은 새맑은 달빛이 비치는 밤을 걸어간다.
이것은 관대한 남자의 사랑으로 여자가 범한 과오는 깨끗이 정화되고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일까? 그렇게 해석하는 건 너무 단순하지 않을까. 임신한 여성과 겨울의 달이라는 조합은 분명히 광기로 흐를 위험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이 이 작품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의 일부를 구성한다. 내가 받은 인상은 그 뒤 이 남자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광기의 세계로 휘말려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밤의 연주는 내가 젊은 시절 들었던 곡과는 전혀 달랐다. 좋은 연주였으나 팽팽한 긴장감과 광기로의 유혹은 느낄 수 없었다.
8월 8일 ‘브람스 스제넨 4’에서는 비올라의 타베아 짐머만Tabea Zimmermann과 메조소프라노의 안젤리카 키르히슐라거Angelika Kirchschlarger가 브람스의 <비올라, 피아노, 알토를 위한 두 개의 가곡, 작품 91>로 공연했다. 두 사람은 모두 당대의 인기인으로, 나도 큰 기대를 품고 들었으나 좀 불만스러웠다. 두 사람의 앙상블이 좋지 않아 삐걱거렸고, 키르히슐라거는 감정표현 과잉이었다. 브람스보다는 레하르Franz Lehár 등의 오페레타 쪽이 그녀에겐 어울릴지 모르겠다.
한편 10일의 ‘브람스 스제넨 5’에서 들었던 브람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은 아주 좋았다. 피아노는 안드라스 쉬프András Schiff, 첼로는 미클로스 페레니이Miklós Perényi라는, 나도 모르는 초로의 남성들이었는데, 이 첼리스트의 연주에서 성실과 성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역시 브람스는 이렇게 연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최근에는 이런 연주를 접할 기회가 줄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이 이미 과거의 사람이 돼가고 있기 때문일까?
연주가 끝난 뒤 F가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나 요요마Yo-Yo Ma/馬友友였다면 지금 곡을 유려하게 술술 연주했을 텐데”하고 말했다. 이건 물론 그녀다운 어투인데, 처음 들어 본 수수하지만 실력 있는 그 첼리스트를 칭찬한 말이다.
그밖에 어제(8월 11일)까지 볼프강 림Wolfgang Rihm의 현대 오페라 <디오니소스 Dionysos>, 알반 베르크Alban Berg의 오페라 <룰루 Lulu>, 빈방송 교향악단의 오라토리오 <화형대 위의 잔 다르크>, 아냐 하르테로스Anja Harteros의 <독일 가곡의 밤>, 그리고 현대음악 연주회 ‘콘티넨트 림Kontinent Rihm 7’을 감상했다.
‘콘티넨트 림 7’에서 들은 모톤 펠드만Morton Feldman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를 위하여>라는 곡은 훌륭했다.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의 세계였다. 길게 이어지는 단조와 반복, 그 속에서 전개되는 극도로 미세한 음의 변용은 듣고 있는 우리를 음악에 대한 기성관념에서 해방시켜주었다. 펠드만은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이나 마크 로스코Mark Rothko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친했는데, 그의 음향세계는 아주 고품질의 추상화를 볼 때와 같은 감명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이 작품은 작곡가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해에 만들었다. 그걸 생각하면, 이 작품을 듣고 현세를 에워싼 경계선 ‘저 너머’에 흐르고 있는 음향을 접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펠드만의 작품과 <디오니소스>를 빼고는 지금까지 마음 깊은 곳을 흔드는 명연주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앞으로 3주가 채 남지 않은 기간에 그런 음악을 만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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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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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