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이 영화에 그토록 빠졌던 걸까. 이상하다면 이상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천재소년, 고운 누나, 아름다운 자연, 불행한 죽음, 그리고 음악… 거기에는 나와 같은 아이의 동경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들이 빠짐없이 골고루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 <들장미>라는 외국영화를 본 기억도 있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영화였을 것이다. 이 영화는 헝가리 동란 때문에 난민이 돼 빈에 흘러들어온 고아가 주인공이다. 소년은 친절한 사람들 손에 맡겨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어느 날 찬 강물에 빠져 죽어가던 그를 젊고 아름다운 수녀가 밤을 새워 간병한다. 새벽에 살짝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온 아침 햇살이 마침 방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성모상을 비춘다. 그때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조용히 흐른다. 그러자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던 소년이 눈을 뜬다. 노래를 잘 불렀던 소년은 빈 소년합창단에 들어가게 되고 좋은 친구들도 만나 행복하게 자란다.
어릴 적 내 마음을 빼앗아간 영화의 하나인데, 지금 이렇게 쓰다 보니 그때가 냉전시대였던 만큼 아무래도 동서대립을 의식한 프로파간다(선전)색 짙은 영화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린 내 마음에 음악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 영화였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보도에 따르면, 당시 빈 소년합창단에서는 소년들에 대한 신부나 음악지도자들의 성적 학대가 상습화돼 있었다고 한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것도 알게 된다.
우리 소학교에 기악클럽이라는 과외활동반이 있었는데, 지도자는 하마구치(浜口) 선생이라는 중년 남성이었다. 선생은 막 대기라도 삼킨 듯한 직립부동의 자세로 엉덩이를 약간 내밀고 발뒤꿈치를 까딱까딱 아래위로 움직이며 지휘봉을 흔들었다. 아직 전쟁이 끝난 지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절이었으므로, 생각건대 하마구치 선생은 군악대 출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마구치 선생의 열성적인 지도 덕에 우리 기악클럽은 교토 시내에서는 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나한테 배당된 악기는 스페리오 파이프였다. 당시는 그렇게 불렀으나 지금은 리코더라고 하는 모양이다. 싸구려 플라스틱제 피리였는데, 말하자면 ‘기타 등등’을 위한 악기였던 셈이다. ‘기타 등등’에 파묻히지 않고 혼자 담당하는 눈에 띄는 악기는 인기가 높았다. 가장 눈에 띄는 스타 악기인 실로폰(木琴)을 맡은 아이는 이마가 넓고 눈이 큰 이시다(石田)라는 여자애였다. 그녀만이 비교적 윤택한 가정의 아이였는데,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다. 또 하나의 스타였던 작은 북은 이마이(今井)군이 담당했다. 그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운동신경이 뛰어났고 리듬감도 좋았던 것 같다.
또 한 사람, 남성 독창이라는 가장 눈에 띄는 배역이 있었다. 하마구치 선생이 나를 지명하면 어떻게 하지, 강당을 가득 채운 청중 앞에서 당당하게 노래할 수 있을까, 나는 끙끙대며 그런 걱정을 했다. 하지만 지명된 건 다른 아이였다. 그는 공부도 별로 못하고 싸우기 좋아하는 거친 아이였는데, 내 귀로 판단하는 한 노래도 썩 잘하진 못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가벼운 질투를 느꼈고 하마구치 선생에 대한 불신감을 품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바로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하마구치 선생이 지명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악클럽은 음악교육인 동시에 가난 때문에 거칠어지기 쉬운 아이들에 대한 정서교육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아이는 강당에서 열린 발표회 날 뺨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열심히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우리 기악클럽이 자랑하던 레퍼토리는 <카르멘Carmen 변주곡>과 <호프만의 뱃노래>였다. 교토의 마루야마(円山)공원에 있는 야외음악당에서 콩쿠르가 열렸을 때 이 두 곡을 연주했다. <카르멘>의 타, 타, 타타-타, 탓타 하는 식으로 계단을 내려가듯 반음씩 내려가는 하바네라(habanera) 음절을 지겨울 정도로 연습했다.
성인이 된 뒤 알게 됐지만, 비제Georges Bizet 작곡의 오페라 <카르멘>은 남녀의 끈적한 정욕과 질투 이야기였고,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호프만의 이야기>는 베니스의 고급유곽을 무대로 주인공이 허무하고 향락적인 환상 속으로 이끌려가는 장면을 묘사한 음악이다. 소학생인 나로서는 그런 내용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 막대기처럼 우직했던 하마구치 선생은 그걸 알고 있었을까?
올해 1월과 2월 MET(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이브 뷰잉으로 <호프만의 이야기>와 <카르멘>을 잇따라 봤다. <카르멘>은 20년 정도 전에 바르셀로나의 리세우 극장에서 테레사 베르간사Teresa Berganza가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번엔 지금 그녀의 노래가 출시돼 있는 엘레나 가란샤Elena Garanca가 약동하는 새로운 카르멘상을 열연했고, 로베르토 알라냐Roberto Alagna가 연기한 돈 호세는 미친 듯한 사랑에 목숨을 바치는 남자의 어리석음과 슬픔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이런 역이라면 역시 알라냐에 견줄만한 사람이 없다. 새삼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 두 작품을 보고 소학교 시절 나와 음악의 만남을 떠올려 봤다. 하마구치 선생은 그 뒤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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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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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