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곤란한데… 어디 식당 같은 데라도 묵을 곳이 없을까. 그런 궁리를 하며 30분 정도를 더 달렸더니 도로 옆에 ‘B&B Vacant’(민박, 빈방 있음)라 써 놓은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차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니 도로에서 옆길로 200미터 정도 들어간 곳에 농가풍의 집 한 채가 있었다.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차를 그 집 앞까지 몰고 가서 세운 뒤 노크를 했다. 안쪽에서 기척이 없어 안 되겠구나 싶었는데, 그때 문이 열리며 중년의 여인이 나타났다.
“방 있습니까? 그리고 아직 저녁밥(dinner)을 먹지 못했는데, 뭐든 좀 먹을 수 있겠는지요…”
여인은 찬찬히 이쪽을 쳐다보다가 “디너는 안 되지만 밀(meal)은 돼요. 들어오세요”하고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옳거니, 영어 디너와 밀은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쓰는 모양이군. 그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난방이 된 식당에 들어서자 아주 희미하게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 들리진 않았으나 아무래도 슈베르트 같았다.
테이블에 앉아 잠시 기다렸더니 여주인이 따끈한 요리를 들고 왔다. 간단한 파스타 요리였는데, 그런 밤에는 최상의 사치였다.
여주인의 치마폭에 숨듯 5, 6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도 따라와 내 쪽을 힐끗힐끗 훔쳐봤다.
“여, 안녕”하고 남자아이에게 말을 걸자 아이는 맘먹고 있었던 듯 대꾸를 했다.
“Are you an American?(아저씨는 미국인인가요?)”
무심결에 웃고 말았다. 이런 시골에서 자란 아이에겐 외국인을 볼 기회가 거의 없겠지. 게다가 외국인이라면 모두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해. 나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아니, 나는 미국인이 아니야. 일본에서 왔어.” 아마 아이는 일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지. 하물며 재일조선인이라고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니 생략했다.
아이는 수줍어하며 다시 여주인 치마폭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 대신에 여인이 툭 한 마디를 던졌다. “My grandson.(손자요.)”
손자라니? 여인은 아직 4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약간 놀란 나는 시선을 여인에게로 돌렸다. 그녀는 표정없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상상을 했다. 이 여주인의 딸은 나이 14~15살 무렵 시골생활이 따분해져 에든버러나 글래스고에 갔을 거야. 거기서 남자친구를 사귀게 돼 이 아이를 낳았겠지. 그런데 그 남자와 금방 헤어지고 어린 아이 키우기에 진력이 나자 고향 어머니에게 맡겼을 거야. 그렇다면 이 여주인 남편은? 이 집 어딘가에 있겠지? 아니면 멀리 돈벌이하러 나갔나? 그것도 아니면 이미 세상을 떠났나?
하지만 나는 그걸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여인도 입을 다물었다. 문밖에서 몰아치는 강풍에 창이 우는 소리 외에는 아주 희미하게 슈베르트만 흐르고 있었다.
열쇠를 받아 2층 방으로 올라갔다. 깨끗한 방이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새하얀 시트가 기분 좋았다. 장시간 운전의 피로 때문에 금방 졸음이 쏟아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복도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통통 작은 노크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문을 열자 어스름한 조명 아래 여주인이 서 있었다. 앞서 머리 뒤로 묶었던 머리칼을 풀어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춥지 않아요?”
친절하게도, 난방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살피러 온 것이로군.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회색빛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붉은 머리칼에선 마른 풀 냄새가 났다.
나는 뻣뻣한 자세로 계속 서 있었다. 나는 여성의 마음과 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였다. (60살이 된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긴 매한가지지만.)
그녀는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난 추워요. 방에 들어가도 돼요?”
그렇게 해서…
다음날 아침, 옷을 챙겨 입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아침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내게 커피를 끓여준 뒤 여주인도 의자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여전히 말이 없고 무표정했다. 하지만 무뚝뚝하거나 냉담한 태도는 아니었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녀는 저 회색 눈동자를 내게로 향하더니 마치 누나나 어머니처럼 살그머니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차가운 뺨을 내 뺨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안녕, 여행에 행운이 깃들기를…”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차를 몰아 하얗게 서리가 내린 스코틀랜드의 광야를 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건지, 목적지가 어딘지, 여전히 모르는 채.
그런데, 이쯤에서 밝혀두는 바이지만, 위에 쓴 추억의 일부는 사실이 아니다. 망상이라 해도 좋다. 한 장의 씨디 때문에 내 뇌리에 이런 망상이 끼어들었다. 음악에는 그런 힘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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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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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