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1일부터 한국생활이 시작됐다. 성공회대학이 객원교수로 받아준 덕에 처음엔 성공회대학이 게스트하우스로 빌려쓰고 있던 서울 구로구 온수동의 아파트에 입주했다. 따로 보낸 이삿짐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어디 좋은 콘서트가 없나 재빨리 뒤져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콘서트 정보를 어떻게 입수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4월 5일 어림짐작으로 세종문화회관까지 가서 창구에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건너편 교보문고에 가면 티켓 예약·판매소(플레이 가이드)가 있으니 거기에 가보라고 했다. 가보니 사흘 뒤 예프게니 키신Evgeny Igorevich Kissin의 피아노 연주회가 있었다. 키신이란 이름은 물론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아직 ‘신동’이라 불리고 있을 무렵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그의 콘서트에 가보려 했으나 일정이 맞질 않아 포기한 적이 있다.
한국에 오기 전 전반적으로 일본보다 물가가 쌀 것이라고 나는 예상했다. 따라서 괜찮은 연주회 티켓도 일본보다 쌀 테니까, 이거 찬스다,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건 안이한 희망적 관측이었다. 키신 연주회 티켓은 딱 2장만 남아 있었는데, 1장에 16만원이나 했다. F하고 두 사람이니까 32만원이다. 게다가 그때는 운나쁘게도 환율도 원고엔저圓高円低 시기였다. 일본 엔으로 환산하면 4만엔 정도다. 비싸다. 하지만 큰맘먹고 사기로 했다. F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렇게 비싼 연주회에 어떤 청중이 올까 하는 것도 관심사였다. 이것도 한국사회를 알기 위한 공부야, 하고 자신을 구슬렀다.
“그런데, 연주회장은요?”
“예술의 전당입니다”하고 담당 여직원은 대답했다.
예술의 전당이라니? 당혹스러웠다. 그건 일반명사가 아닌가. 빈 악우협회 (樂友協會) 홀은 예술의 전당이다, 라거나, 일본 클래식 음악의 전당은 우에노의 도쿄문화회관이다, 라고 할 때 쓰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연주회 장소는요?” 한 번 더 확인하자, 여직원은 “예술의 전당이에요”하고 대답하면서, 왜 그러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예술의 전당’은 고유명사인듯했다. 너무 직선적(直線的)이지 않나. 내겐 좀 어색한 작명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국인의 기질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나중에야 조금씩 깨달았다. 하여튼 만사 직선적이었다.
연주회 당일은 황사가 심했다. 눈앞에 희부옇게 짙은 안개가 낀 듯했다. 그런 건 처음 봤다. 온수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는데, 놀라웠다. 이토록 당당한 음악전용 홀은 일본은 물론 내가 다녀본 세계 어디에서도 드물었다.
연주회장은 꽉 차 있었는데, 키신이 무대에 등장하자 젊은 청중들이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마치 록 스타 같았다. 키신의 인기도 높고 클래식 음악, 특히 피아노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은 듯했다.
곡목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번과 26번. 휴식시간 뒤에는 쇼팽의 스케르초 1번부터 4번. 쇼팽 중에서도 특히 2번이 좋았다. 완벽한 기술에다 생각지도 못한 힘(力感)이 있었다. 힘이라곤 해도 그냥 음량이 큰 것이 아니라 펠트(felt) 천을 입힌 듯한 부드럽고 묵직한 음질이었다. 빠른 패시지(passage, 경과구 經過句)는 다소 무기적(無機的)인 음이었는데 그것은 완만한 패시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들려주기 위한 연출인 듯했다. 그 연주음에 대해 F는 “어두운 동굴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유감스러웠던 것은 연주가 끝난 순간, 아니 아직 마지막 음이 이어지고 있는데 연주회장에서 큰 환호성이 일며 앙코르 소리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나는 잔향(殘響) 속에 흔들리는 쇼팽의 암울한 서정을 최후의 한 방울까지 맛보고 싶었는데. 그러나 키신 자신은 이 열광적인 환영이 싫지는 않은 듯 앙코르곡을 3곡 이상 연주했다.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앙코르 연주가 끝나자 청중 대부분이 순식간에 연주회장을 빠져나가버린 점이다. 바로 전까지 그토록 열광했는데 일거에 등을 돌리듯 떠나버린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일본이나 다른 외국에서는 청중들이 연주 종료 뒤에도 귀에 남은 여운을 아쉬워하듯 천천히 자리를 뜬다. 한국 청중과는 사뭇 다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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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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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