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연세대 어학당도 어떻게든 졸업해서 일본에 돌아가기 전, F는 벗과 지인들을 초대해 서울에서 자그마한 연주회를 열었다. 거기서 부른 노래는 슈만의 <여자의 사랑과 생애>, 그리고 앙코르곡은 슈베르트의 <마왕>이었다. 그때 마왕이 그에게 강림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세월은 빨라서 일본에 돌아온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F가 서울에서 <KBS> FM을 안 지는 4년이 넘었다. 우리는 일본에서도 종종 콘서트에 갔고, 여름에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가는데, 내가 하는 일이 바빠지고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들면서 활동력이 떨어져 요즘에는 밤에 열리는 콘서트나 오페라에 가는 대신 MET(Metropolitan Opera,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실황 관람(Live Viewing)을 통해 오페라를 즐기게 됐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을 전 세계에 영화로 동시상영하는 기획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처음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우선은, 오페라는 극장에서 직접 눈으로 봐야지 영화로 보는 건 안이한 태도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유럽 오페라에 비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가수들 각자의 기량은 뛰어나지만 연출은 오락적이고 깊이가 부족할 것이라는 예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본 것은 한국 체류중이던 2007년이었는데, 연주곡은 차이콥스키의 <오네긴>이었다. 그런데 그게 예상외로 좋았던 것이다. 얼마나 좋았는지는, 어차피 이 연재를 계속할 것이니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자.
실은 어제도 F와 함께 이 MET 공연실황을 보러 갔다. 오전 중에 한 번만 상영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 서둘렀다. 연주곡은 프랑스 작곡가 암브로와즈 토마Ambroise Thomas의 <햄릿>이었다.
이 작품은 오랜 동안 거의 상연되지 않은 매우 진귀한 오페라다. 초연된 건 1868년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파리. 2003년에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 프로듀서의 새로운 연출로 상연됐다. 햄릿역은 영국 출신의 바리톤 사이먼 킨리사이드Simon Keenlyside, 오필리아는 원래 프랑스 출신 소프라노 나탈리 디세이Natalie Dessay가 맡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갑자기 병이 나서 부랴부랴 말리스 피터슨Marlis Petersen이 대역을 했다. 킨리사이드는 이 작품이 그 사람 덕에 현대에 부활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찬사를 받은 사람인데, 그게 충분히 납득이 갈 만큼 명연, 명창이었다.
제2막은 햄릿이 “수녀원에나 가라”며 뿌리친 오필리아가 절망한 나머지 자해하는 장면이다. 얇은 속옷차림의 피터슨이 손에 든 칼로 가슴을 찌르자, 연출장치가 잘 돼 있어서 실제상황처럼 피가 솟구치며 흘러내렸다. 더욱이 양 팔을 칼로 긋자 거기서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 피투성이 모습으로 몸부림치며 콜로라투라(coloratura)의 초절정 기교로 쉼없이 ‘광란의 장(場)’을 끌어갔다.
‘광란의 장’으로 유명한 오페라는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그리고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청교도>다. 나는 후자를 2007년에 역시 MET 라이브 뷰잉으로 봤는데, 안나 네트레브코Anna Netrebko가 부른 ‘광란의 장’은 귀기가 느껴질 정도의 기막힌 열연이었다. 이번에 본 <햄릿>의 피터슨도 거기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상영이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니 바깥은 한낮이었고 봄날답게 포근하고 맑았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절정기를 지난 벚꽃이 햇볕 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함께 걷고 있던 F에게 무심코 말을 걸었다.
“광란의 장, 대단했지.”
“응”
“역시 여성에겐 보편적으로 저런 광란에 공감하는 심리가 있는 건가?”
내가 생각해도 뚱딴지같은 질문이다. F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당신, 그것도 몰랐어?”
나는 약간 당혹스러워 우물쭈물 머뭇거렸다.
F는 계속했다. “배신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맞닥뜨리면 여자는 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라 자신을 죽여요.”
그래도 그렇지, 저런 끔찍한 ‘광란의 장’을 오페라로 만들어서 상연하는 인간, 그것을 감상하며 싫증낼줄 모르는 인간의 심리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음악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한없는 청순과 고귀함, 그리고 바닥모를 질투와 욕망을 동시에 지닌 존재, 이쪽의 이해를 거부하면서 끌어당기고는 다시 뿌리치고 농락해마지 않는 존재, “어디가 그렇게 좋다는 거지?”하고 누가 물어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존재, 한마디로 불가해한 여성과 같은 존재, 그것이 음악이다. 음악에 깊이 빠지는 것은 여자한테 빠지는 것과 같아서 평온하게 살고 싶은 보통 사람(즉 나와 같은 사람)에겐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위험한데도 연을 끊어버릴 수가 없다. 나도 어느 사이엔지 음악에 빨려들어가 이렇게 음악에 대한 글까지 연재하게 됐다. (201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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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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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