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장기체류형 레지던스 호텔인 그 곳 룸에는 라디오가 갖춰져 있었다. 스위치를 넣고 다이얼을 돌리자 격정적인 교향곡이 흘러나왔다. 슈만 같은데. F는 순간 눈을 빛내며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F는 내 동반자이자 벗이고 아내이며, 때로는 딸 같기도 한 여성이다. 어떻게 부르든 딱 들어맞는 말이 없으니 F라고 해 두자.
나와 F는 그때 1주일 정도의 예정으로 서울에 가 있었다. 그 다음해부터 2년간 연구유학을 가기로 돼 있어서 미리 한 번 둘러볼 겸 아파트를 물색해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래도 서울에 대해 얼마쯤은 알고 있었고 더듬거리는 수준이지만 말도 통할 수 있었으나 F에겐 온통 낯설었다.
나와는 달리 F는 원래 세상일에 대해 별 걱정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어떻게 되겠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건 ‘낙천적’이라는 것과는 좀 다르다. 오히려 ‘무모함’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낯선 이국으로 갈 경우 걱정하는 것은 의사소통, 문화관습의 차이, 물가, 치안 등속일 것이다. 하지만 F가 걱정한 것은 대강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맛 좋은 빵집이 있을까?”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음악’이었다. 한국에는 클래식 음악을 방송하는 FM라디오 방송국이 있을까. 콘서트 정보는 어떻게 입수해야 할까. 티켓은 어떻게 사야 할지… 그런 걱정들 가운데 하나가 서울 체류 첫 날 가볍게 날아가버린 것이다.
교향곡이 끝나자 나긋한 저음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나도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당시 F에겐 외계인의 소리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F는 그 남자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더니 곧 고개를 들고는 “목소리 좋네”하고 완전히 매료당한 듯 중얼거렸다. 눈까지 약간 촉촉해진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은 정만섭씨로, 그 음악프로는 <KBS> FM의 ‘명연주 명음반’이라는 것이었다. 일본 <NHK>도 FM으로 클래식을 곧잘 방송한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내내 클래식을 내보내는 <KBS>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F는 너무 기쁜 나머지 “야, 이 정도면 살만해!”하고 탄성을 질렀다.
한데 그 다음 날 다시 무심코 라디오를 켰더니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등대지기>였다. 원래 영국의 옛 민요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때부터 학교에서 가르쳐준 노래여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국에서도 식민지 시대에 교육받은 세대는 틀림없이 알고 있을 텐데, 젊은 세대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사는 옛 일본어로 돼 있으나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것은 관현악 연주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억의 밑바닥에서 밀고올라온 가사를 소리없이 우물거렸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하늘 위에 차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밀려오는 작은 섬
생각하라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잠시 뒤 F가 불쑥 말했다. “이 노래, 아버지가 부르셨지…” 표정은 침울했고 시선은 먼 하늘을 떠도는 듯했다. F의 아버지는 그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 괜찮을까”하고 내가 긴장하는 순간 F는 “또 아버지가 부르고 있어. 여기로 오라고 부르고 있어…”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란 ‘저 세상’을 말한다. 그 무렵 F에겐 종종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일단 그런 상황이 되면 F는 과거와 현재 내가 그에게 불성실했던 점들을 잠시 들먹이며 “아버지가 부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 여기서 더 살고 싶지 않아. 저기로 가고 싶어”하며 울었다.
그때는 나와 F가 만난 이래 가장 위태로운 시기였다.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활의 리듬과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F를 한국에 동행하도록 한 것이다. 그 한국에서 만난 FM방송 덕에 F가 활기를 되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방송에서 들려온 옛 음악 때문에 다시 흔들리고 말았다. 참으로 영국 북부의 기후 같은 격변이었다.
F는 가수이기도 하다. 슈베르트나 브람스 등의 독일 가곡을 노래하는데, 잘 불렀을 때는 “하늘에서 신 같은 것이 내게로 내려온다”고 한다. 그게 어떤 느낌일지 나로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미코(무녀, 巫女)’, 오키나와에선 ‘유타’, 조선에선 ‘무당’이라고 하는 여성들이고,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魔女)’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 여성들은 다른 세계(異界)와 교감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미 잃어버린 원초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음악과 깊이 얽혀 있어, 음악에 의해 촉발되고 심화된다. F도 마녀의 한 사람일까?
다음해 봄 일본을 완전히 떠나 서울 신촌 인근에 살 곳을 정했다. F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입학해 젊은이들과 뒤섞여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윽고 조금씩 지인들이 생기자 F는 만나는 사람마다 정만섭씨 얘기를 하며 그를 칭송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 특히 F와 동년배의 여성들이 “실은 나도 그의 팬이야”라고 대꾸했고 “팬클럽을 만들자”거나 “당신, 연줄 잡아서 그 사람 만나게 좀 해줘”라는 얘기들을 하게 됐다. 마침내 F는 ‘명연주 명음반’만이 아니라 ‘장일범의 생생 클래식’과 ‘노래의 날개 위에’라는 프로의 팬이 되고, 한국전통음악을 내보내는 ‘흥겨운 한마당’도 즐겨 듣게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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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만남』,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교양, 모든 것의 시작』, 『후퇴하는 민주주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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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승동
1986년부터 잡지 <말>에서 일하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에서 지금까지 민족국제부, 사회부, 정치부(외교통일)를 거쳐 문화부 책·지성팀에서 일하고 있다.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있었다. 국제부장을 지냈고 문화부에서 타블로이드판 섹션 ‘18.0’ 팀장을 하다 지금은 선임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역서로 『우익에 눈먼 미국』(데이비드 브록), 『부시의 정신분석』(저스틴 프랭크), 『세계를 움직이는 인맥』, 『시대를 건너는 법』(서경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