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무게
우리는 물의 행성에 살고 있다. 물리학 박사 필립 볼의 말처럼 우리 행성은 어쩌면 ‘지구(地球)가 아니라 수구(水球)’다. 지구 표면의 70퍼센트가 물로 덮여 있고 태평양은 모든 대륙을 합한 것보다 크다. 수구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점 하나, 제주도. 이곳은 언제나 파도는 높고 바람은 거세다. 제주의 남쪽 해변 끝자락에 자리한 서귀포는 늘 삶을 위협하는 풍랑 때문에 위태롭다. 하지만 서귀포 앞바다에는 문섬, 새섬, 섶섬, 범섬 등 무인도가 있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준다. 범섬과 함께 천연기념물인 문섬은 민둥섬이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나무가 울창하다. 한때 나무가 없었거나 그 생김이 민둥해서 붙은 이름이겠지. 문섬은 해발 85미터의 낮은 산이다. 서귀포 바로 앞 새섬으로 인해 서귀포항이 형성될 수 있었다면 그 새섬을 더 큰 파도로부터 지켜준 것은 문섬이었다.
이들 서귀포 앞바다 섬들은 50만 년 전후로 형성됐다. 화산암이지만 이 섬들은 제주 본토의 기반 암석인 현무암이 아니라 조면암이다. 50만 년, 인간의 생애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대체 그 시간의 무게는 얼마쯤일까. 나그네는 문득 이 행성 전체의 무게가 궁금하다. 이 행성의 무게도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수십억 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더한 것이겠지. 이 행성을 살다간 무수한 생명체의 살과 뼈는 흙으로 갔고 그들의 피는 강과 바다로 흘러들었다. 이 행성에서 생성되고 소멸했던 모든 생명의 무게까지 더해진 것이 이 행성의 무게일 터. 두려워라! 시간이여, 시간의 무게여.
범섬, 목호의 최후 항전지
서동철 형과 법환포구에서 어선을 얻어 타고 범섬으로 건너왔다. 섬의 둘레는 모두 절벽이다. 가파른 암벽을 타고 오르니 제법 너른 평지도 있다. 지금은 무인도지만 예전에는 몇 가구가 살면서 농사도 짓고 소도 기르던 섬이었다. 가파르고 작은 섬이지만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먹을 물과 손바닥만 한 농토라도 있으면 사방이 낭떠러지인 이런 섬에도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 제주 사람들의 삶이란 그토록 척박했다.
범섬은 고려 말(1374년) 최영 장군이 제주도에서 말을 기르던 몽고인 목호(牧胡)의 반란을 진압한 최후의 격전지다. 원나라를 멸망시킨 명나라는 원나라의 직할지였던 제주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고려 정부에 탐라에 있는 원나라의 말 2천 필을 요구했다. 목호들은 이를 거부하고 항전을 선언했다. 이에 공민왕은 최영 장군에게 토벌을 명령했다. 최영 장군은 전함 3백14척과 병사 2만 5천 명을 이끌고 제주로 진군했다.
전투는 한 달이나 계속됐다. 제주 서쪽 명월포(한림항의 옛 이름)에서 시작되어 어음리, 밝은오름, 금오름, 새별오름, 서귀포 예래동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남쪽으로 쫓기고 쫓기다 목호의 수뇌부가 범섬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 전투를 지켜봤던 ‘하담’이라는 사람은 전투 목격담에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덮고 간과 뇌는 땅을 가렸으니 말을 하자니 목이 멘다”라고 기록했다. 고려 본토가 원의 간접 지배하에 있을 때 몽고는 100여 년간 제주를 영토로 편입시켜 직접 지배했다. 이 반란을 끝으로 몽고의 지배는 끝났다. 하지만 오랜 세월 탐라국이라는 독립국에 살았던 제주 사람들에게 고려군은 점령군이 아니었을까. 몽고든 고려든 삼별초든 그들에게는 모두 외세가 아니었을까. 외부 세력들의 다툼에 짓밟힌 것은 제주 땅이었고 그 와중에 영문도 모르고 죄 없이 죽어간 제주 사람 또한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아니다. 당시 기록에는 제주에 주둔한 몽고군이 1천4백에서 1천7백 명 정도다. 충렬왕 26년(1300년) 제주의 인구가 3만 명이었다. 목호의 난이 일어났을 때도 5만 명 이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고려가 파견한 군사는 2만 5천 명이나 된다. 이를 통해 목호의 난에 가담한 제주 사람의 수를 짐작할 수 있다. 목호의 난에 수많은 제주 사람이 가담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하담은 또 전투 목격담에서 “우리 동족이 아닌 것들이 섞여 갑인의 변을 불러들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반란군 중에 제주 사람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다. 목호의 난이란 실상 목호만이 아니라 제주 사람의 난이기도 했던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싸움에 휘말린 것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은 목호와 함께 원나라도 아니고 고려도 아닌 독립국을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혹 탐라국의 부활을 기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범섬은 제주 창조 신화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제주 창조 여신인 설문대할망은 옥황상제의 셋째 딸이었고 거인이었다. 할망이 치마로 몇 번 흙은 날라다 만든 것이 한라산이다. 흙을 나르던 중 터진 치마 사이로 떨어져서 굳은 것이 오름들이다. 할망의 나막신에 붙었다가 떨어져 나간 흙덩이들도 오름이 되었다. 한라산이 너무 높아 봉우리를 꺾어 던졌더니 산방산이 되었다. 성산일출봉은 할망의 빨래 바구니고 우도는 빨래판이었다. 본래 우도는 제주 본섬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할망이 한번 오줌을 누자 흙이 쓸려나가 그 사이는 바다가 되었고 우도는 섬으로 떨어져 나갔다. 설문대할망이 백록담을 베개 삼아 누우면 허리는 고근산에 걸쳐지고 다리는 범섬에 닿았다. 이때 설문대할망의 발가락이 닿아 뚫린 구멍 두 개가 있다. 이 구멍은 범의 콧구멍을 닮았다 하여 ‘콧구멍’이라 부른다. 범섬의 두 동굴이다.
범섬은 앞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돌섬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를 타고 뒤편으로 오니 주상절리의 절벽이 압도적이다. 어째서 범섬이라 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범의 기상이 느껴진다. 설문대할망의 발가락 흔적이 남은 콧구멍에서는 범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그네는 수많은 섬을 떠돌아다녔다. 여수의 백도나 신안의 홍도, 백령도 두무진은 그 기암괴석의 절경이 찬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나그네는 그 어떤 섬에서도 범섬에서와 같은 강렬한 에너지의 파장을 느껴보지는 못했었다.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범에게 오는 것일까. 설문대할망의 손길이나 발길이 닿은 곳은 모두가 할망의 몸이다. 그러니 에너지는 필시 설문대할망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설문대할망에게는 아들이 무려 5백 명이나 있었다. 하루는 5백 명의 아들을 먹이려고 큰 솥에 죽을 쑤다가 그 솥에 빠져죽었다. 아들들은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죽을 달게 먹었다. 막내아들이 나중에 돌아와 어머니가 죽은 것을 알았다. 아들들은 모두 서럽게 울다가 그대로 굳어서 바위가 되어버렸다. 한라산 영실의 오백장군 바위가 그 아들들이다. 아들들이 흘린 피눈물이 한라산 철쭉으로 피어났다. 예수보다 먼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고 해체되어 대지와 바다에 뿌려진 이집트 신화의 구세주 오시리스처럼 설문대할망 또한 스스로 죽음을 택해 자신이 창조한 제주의 밑거름이 되었다.
죽음 없이 재생은 없다. 씨앗도 죽어서 썩지 않으면 새싹을 틔우지 못하듯 한 생명이 탄생하는 데 한 생명의 죽음은 필수적이다. 할망의 죽음으로 비로소 제주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그러므로 제주 사람들은 신의 자식이고 거인의 후예다. 설문대할망은 창조의 어머니인 동시에 제주 땅 그 자체다. 지구의 여신 가이아가 지구 자체인 것처럼. 신화는 설문대할망의 몸이 곧 제주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므로 제주의 땅을 함부로 파헤치는 행위는 어머니인 설문대할망의 생살을 찢는 무도한 짓이다.
서귀포의 어미섬, 문섬
오늘은 또 서귀포 항에서 낚싯배를 얻어 타고 서동철 형과 함께 문섬으로 건너왔다. 오르는 길은 가파른 절벽이다. 아래에서는 오르기 불가능해 보이는 절벽에도 길이 있다. 절벽에 올라서니 숲길이다. 길섶의 시누대 숲이 바람에 일렁이며 서걱거린다. 서동철 형은 문섬을 서귀포의 어머니 섬이라 부른다. 범섬은 아버지 섬, 섶섬은 아비의 첩 섬이라는 것이다. 문섬은 예부터 어머니 가슴처럼 생겨서 어미 섬이라 했다. 문섬 옆의 작은 바위섬은 딸 섬. 문섬은 여성적이고 범섬은 남성적이라 그런 해석이 가능할 듯도 하다. 문섬 부근의 바다는 세계 최대의 맨드라미 산호(연산호) 군락지다. 바닷속은 꽃 대궐이다. 다이버들이 즐겨 찾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수중 촬영대회가 열리기도 했었다. 서귀포항에서 유도선을 타고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잠수함으로 옮겨가 수중 세계를 유람한다. 문섬이 어머니 섬이니 문섬 바닷속의 산호 군락지는 어머니의 자궁이다. 어미의 자궁에 기대 수많은 물고기와 바다풀과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숲길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20여 분 남짓 문섬의 숲길을 헤치고 가니 길의 끝에 등대가 있다. 등대 아래는 또 다른 절벽이다. 태양의 시간, 등대는 그 품속에 불빛을 감추고 곧 다가올 밤을 예비한다. 등대 위로 참매 한 마리가 상공을 선회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 섬의 주인은 저 매다. 매나 수리 같은 맹금류들이 주로 무인도나 절벽에 둥지를 트는 것은 천적으로부터 자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저 하늘의 지배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천적은 구렁이나 갈매기가 아니다. 사람이다. 옛날 섬사람들은 맹금류의 알을 도둑질하기를 즐겼다. 특히나 참매의 알은 간질에 특효가 있다는 구전이 있어 아무리 험한 절벽이라도 올라가 훔쳐가곤 했다. 서로가 서로의 새끼를 물어다 제 새끼를 먹이는 저 끔찍한 모성의 한낮. 섬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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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제윤
시인, 1988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1989년 첫 시집을 낸 이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로, 인권운동가로 사느라 오랫동안 글쓰기를 떠나 있었다. 3년 2개월간의 투옥생활 이후 군사정권시대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된 '조작간첩'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인권활동을 했고 이들은 후일 재심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8년 보길도로 낙향한 후에는 보길도 자연하천을 시멘트구조물로 바꾸려는 시도를 저지시켰고 33일간의 단식 끝에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훼손시킬 대규모 댐 건설을 막아냈다. 2005년 다시 고향을 떠나 집 없는 유랑자가 됐다. 10년 동안 한국의 사람 사는 섬 500개 모두를 걸어서 순례할 서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150여 개의 섬을 걸었다. 시인은 여전히 섬을 걷고 있다. 지금은 가장 큰 섬 제주에서 1년 남짓 장기 체류하며 제주 땅과 올레길을 걷는 중이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단지 여행이 아니라 현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연재물은 그동안 제주에서 만난 생각과 사람과 사랑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저서로 『섬을 걷다』, 『파시』,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숨어사는 즐거움』, 『보길도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