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아내를 팔아 말 값을 변상하던 시대
과거 제주 행정은 마정(馬政)이라 할 정도로 제주에서 목마(牧馬)는 절대적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8백 년간 제주는 국영 목장이었다. 제주는 말이 반, 사람이 반이었다. 고려 충렬왕 26년(1300년), 사람이 3만 명이었을 때 말도 3만 필이었으며 원나라 지배 말기에는 사람보다 말이 더 많아져 10만 마리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섬에서 말을 기르는 정책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다. 고려시대 때도 제주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은 목마장으로 활용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주력부대가 4만의 기마부대였을 정도로 과거 이 나라에서 말은 중요한 군사 자원이었다. 하지만 제주에서 말 사육이 본격적으로 성행하게 된 때는 원나라가 제주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켜 직접 지배한 이후부터다. 제주는 원제국의 국립 목장 열네 개 중 하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제주 사람은 해안지대에만 말을 길렀는데 몽골인들이 중산간지대까지 목장을 넓히고 발달한 목마 기술을 도입했다.
조선시대에도 제주는 국영목장이었다. 목자들에 대한 나라의 수탈은 가혹했다. 목자들이 기르던 말이 죽으면 목자에게 변상하도록 했는데 그 책임을 가족들에게까지 지웠다. 목자들은 말 값을 변통할 길이 없으면 아내와 자식, 동생, 자기 몸은 물론 끝내는 부모님까지 팔아서라도 변상해야 했다. 제주의 불교와 무속을 탄압한 것으로 유명한 이형상은 제주 목사 임기를 마치고 쓴 『남환박물』에서 그의 재임시에 말 값 변상 때문에 부모를 판자가 다섯 명, 아내와 자식을 판자가 여덟 명, 동생을 판자가 스물여섯 명, 자신을 판자가 열아홉 명 등 모두 쉰여덟 명이나 됐다고 마정의 가혹함을 개탄한 바 있다.
분재처럼 키워지는 경주마들
경주마는 콧김을 뿜으며 힘겹게 훈련에 열중한다. 말이 뭍으로 나오려고 할 때마다 주인은 “워이~ 쉬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말을 물 가운데로 몰아넣는다. 말은 물질에 제법 능숙하다. 정상적인 말은 하루 30분씩 일주일만 수영 연습을 시키면 된다. 하지만 저 말은 지난 목요일에 경마장에 입소했다가 다리 근육이 뭉쳐서 아팠던 말이라 훈련 시간이 더 길다. 일주일 정도 훈련을 시킨 다음에 다시 경마장으로 보낼 예정이다. 제주마은 장시간을 뛰어도 지치지 않는다. 힘이 세고 질병에도 강하다. 경주마가 될 제주마는 태어난 지 한 달이 될 때 어미젖을 뗀다. 더 이상 키가 자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료로 양분을 조절하며 맞춤으로 키운다. 강제로 말의 키를 제한하는 것이니 멀쩡한 나무를 분재로 만드는 것과 같다.
두 살이 되면 잘 먹여서 ‘빵빵하게’ 힘 있게 만든다. 이때 경주마로 보낸다. 경주마가 상금을 벌면 마주(馬主)와 조교사, 기수 등이 이익을 나눈다. 이기면 이익이고 지면 손해다. 경마가 도박인 것처럼 마주 또한 도박에 생을 건다. 경주마는 저토록 힘겹게 훈련을 받아도 경마장에서 뛸 수 있는 기간은 고작 6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경주마는 키 제한이 있다. 6개월마다 한 번씩 키를 잰다. 앞발부터 등까지 키가 1미터 33센티미터가 넘으면 퇴출이다. 경주마들은 경마장에서 쫓겨나면 도축장으로 보내져 말고기로 판매된다. 내 슬픈 경주마들! 그래도 경주마들의 생애는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날마다 경마라는 도박에 생애를 거는 사람들. 그들은 대부분 가진 것 모두를 탕진하고 끝내는 몸뚱이 하나만 달랑 남는다. 하지만 생의 도축장에서 도살되고 남은 그들의 몸뚱이는 고기값도 받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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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제윤
시인, 1988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1989년 첫 시집을 낸 이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로, 인권운동가로 사느라 오랫동안 글쓰기를 떠나 있었다. 3년 2개월간의 투옥생활 이후 군사정권시대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된 '조작간첩'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인권활동을 했고 이들은 후일 재심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8년 보길도로 낙향한 후에는 보길도 자연하천을 시멘트구조물로 바꾸려는 시도를 저지시켰고 33일간의 단식 끝에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훼손시킬 대규모 댐 건설을 막아냈다. 2005년 다시 고향을 떠나 집 없는 유랑자가 됐다. 10년 동안 한국의 사람 사는 섬 500개 모두를 걸어서 순례할 서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150여 개의 섬을 걸었다. 시인은 여전히 섬을 걷고 있다. 지금은 가장 큰 섬 제주에서 1년 남짓 장기 체류하며 제주 땅과 올레길을 걷는 중이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단지 여행이 아니라 현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연재물은 그동안 제주에서 만난 생각과 사람과 사랑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저서로 『섬을 걷다』, 『파시』,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숨어사는 즐거움』, 『보길도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